<잉글리쉬 페이션트><The English Patient>,1997
-감독 : 안소니 밍겔라
-주연 : 랄프 파인즈 (알마시),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캐서린 클리프튼), 줄리엣 비노쉬 (한나), 윌렘 데포 (카라바지오)
-조연 : 나빈 앤드류스 (킵), 콜린 퍼스(제프리 클리프튼)
-러닝타임 : 162분
-장르 : 드라마, 멜로/로맨스, 전쟁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이 영화가 굉장히 좋은 평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랄프 파인즈,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줄리엣 비노쉬, 윌렘 데포, 콜린 퍼스 까지.. 너무나 좋아하는 배우들이지만, 그것보다 전반적인 평 자체가 좋았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본 것이고, 그 안에 담긴 절절한 로맨스에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조금 다른 감상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나는 나 자신이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 정서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어서 이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안에 그려져 있는 로맨스에 마음이 아팠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나는 이 영화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영화가 끝나고 어벙벙했다.
아무래도 이 영화도 원작이 있는 작품이고, 또한 원작을 봐야지만 제대로 그 배경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을테지만 (스리랑카 출신 캐나다 작가 마이클 온다치가 쓴 동명 소설을 영화화했다.) 그래도 나가 영화를 이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하는가에 대해서 내 자신에게 실망했다. 이 영화를 더 이해하기 위해서, 나의 부족한 이해들을 메꾸고 채우기 위해서 리뷰를 작성해 본다.
격추된 비행기에서 극심한 화상을 입은 환자가 이탈리아의 야전 병원에서 어디론가 이송 중이다. 굉장히 몸 상태가 악화되어 가던 그가 헌신적으로 간호해주는 캐나다인 간호사 한나는 그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트럭으로 계속 이동하면 그의 상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생각해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에서 그를 보살피기로 한다.
그 '화상입은 환자'는 자신의 나라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는 사고에 의해서 충격을 받아서 안타깝게 과거의 기억이 상실되었구나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관객들은 그가 꽤나 명료한 정신상태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즉, 그는 자신의 국적과 이름을 밝히고 싶지 않아 했던 것이고, 사람들은 그저 '영국인 환자'라고 불렀던 것이었다. 우리는 이어서 영화 속에 교차되는 과거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그가 과거에 탐험하며 지도를 만들었던 '알마시'라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배경은 1944년 10월로 2차 세계 대전이 아직 끝나지 않았을 때이다. (전쟁은 유럽에서 1945년 5월에 막을 내렸고, 태평양에서는 9월에 종전했다.) 이탈리아의 경우, 전쟁 초기에는 독일과 일본과 함께 추축국의 일원으로 전쟁에 참여했었으나, 1943년 9월, 이탈리아는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고 연합국 측으로 전환했다. 따라서 1944년 10월 시점에서 이탈리아는 연합국의 일원으로 간주되며, 전쟁의 종결을 향해 함께 싸우고 있었습니다. 알마시는 '영국인 환자'로 여겨졌고, 따라서 이탈리아로 이송될 수 있었다.
"전쟁 중이라 출신이 중요할 때예요"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알마시'라는 이름이 어떤 국적을 연상시키는 가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다. 처음부터 영화 제목이 '잉글리쉬 페이션트'였고, 랄프 파인즈가 연기한 '알마시'가 당연히 영국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알마시'라는 이름 자체가 영국인이 아니면 안 되는 이유도 어색하게 느껴져야 한다는 느낌도 받지 못했다. 부다페스트, 헝가리에 대한 언급은 있었지만, 알바인가.. 나는 그의 정확한 국적에 대해서는 영화가 제대로 제공해주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떨까.
아무튼 나는 랄프 파인즈의 억양, 그리고 외모 조차 영국인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는데, 아무튼 결론적으로 이런 나의 확증 편향 때문에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만약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이었다면, 이 영화 속의 랄프 파인즈의 영어연기가 과연 원어민이 아니라, 제2외국어로써 이야기하는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전쟁이 시작되자 국적이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졌다. 그전까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국적을 따지지 않았다.
"영국 아랍 헝가리 독일 그게 무슨 상관이야 ? 우리는 더 숭고한 것을 추구했지"
영화 속에서는 외모로 그 사람이 어디 출신인지, 어떤 사람인지를 평가하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한나를 찾아온 폭탄 제거 전문가 킨 중위는 터번을 쓰고 있었는데 따라서 한나는 그를 인도인이라고 생각하고, 알마시는 이를 반박하는 것은 아니나 '터번을 썼으면 시크교도'라고 이야기한다.
투부르크. 1942년 6월. 사막을 세세하게 기록한 지도가 알마시에 의해서 독일군에게 넘어갔다. 이로 인해 카이로에는 독일 스파이들이 가득해졌다. 윌렘 데포가 연기한 카라바지오는 이탈리아계 캐나다 인으로, 전직 도둑이자 연합군의 정보원으로 활동했는데, 투부르크를 빠져나가기 위해 줄을 서 있을 때 부상입은 여자가 등장하고, 그녀가 영국인인지 묻는데 이 장면은 전쟁 상황에서 국적에 따른 신분 확인이 생사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였음을 드러낸다. 당시 사람들은 국적에 따라 적군으로 간주되거나, 특정한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물론 킨이 자신의 동료에의해 영국인들을 다시 보게 됨을 그리고, 킨과 한나의 사랑. 카라바지오가 이탈리아 로컬 사람과의 사랑으로 영화 자체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만나고 사랑하면서 그 국적이라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알마시와 매독스는 국제탐험을 하며 사막 지도를 만드는 것에 열중이다. 하지만 전쟁이 발발하고 1939년 5월까지 모든 국제 탐험을 중단하라는 영국 정부의 지시가 떨어진다. 사막을 차지해야 북아프리카를 손에 넣을 수 있었기에 적국들도 충분히 탐낼 자료였고, 따라서 그들의 지도는 영국 정부의 소유로 철저하게 관리되어야 했다.
제프리는 자신의 아내와 알마시가 불륜 관계라는 것을 알게되고, 캐서린과, 알마시와 함께 자살 시도를 하지만 실패한다. 비행기 추락에 제프리는 목숨을 잃고, 캐서린은 온몸 곳곳의 뼈가 부러져서 일어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알마시는 캐서린을 동굴에서 쉬게 하고, 사람들의 도움을 구하기 위해 3일간 사막을 가로질러서 영국군인들을 만나지만, 영국군들은 그를 독일인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체포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인 동굴에서 죽어가고있는데 국적을 묻는다니... 알마시가 얼마나 억장이 무너졌을지..
극적으로 알마시는 영국군인들에게서 빠져나오지만, 결국 독일군에게 탐험지도를 내어주고서야 동굴에 갈 수 있게 된다. 영국의 적에게 지도를 넘기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캐서린은 그를 기다리다가 동굴에서 죽음을 맞이했고, 알마시는 그녀의 시신을 발견한 후 깊은 슬픔에 빠진다. 그리고 캐서린의 시신을 태우고 비행하던 중 독일군에게 격추당하고 추락하여 심한 화상을 입는다. 알마시는 이후 영국인을 배신한 사람이지만 그는 '영국인 환자'로 이탈리아로 이송된다.
그 당시 알마시에게 독일에게 지도를 넘긴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캐서린을 살리는 것만이 중요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파장을 낳을지는 당시 깊이 생각하지 못한 듯하다. 왜냐면 알마시는 카라바지오에게 매독스가 알마시가 배신을 했다는 것을 알고 권총 자살했다는 알게 되고 충격을 받는 모습이 비치기 때문이다. 알마시는 캐서린을 구하기 위해서 다른 건 중요하지 않았으며, 수천 명이 죽었어도 나에겐 타인일 뿐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매독스는 타인이 아니었지 않은가. 그는 자신의 절친한 친구였다.
"그녀는 나 때문에 죽었소. 내가 사랑했기 때문에.. 나의.. 별난 이름 때문에.. "
만약 알마시가 캐서린이 싫어한다던 거짓말을 했더라면.. 자신의 이름을 영국인과 같은 이름으로 속였더라면.. 캐서린을 구할 수 있었지 않을까? 한편 캐서린은 알마시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가장 먼저 '물'이라고 답하며, 그의 남편 제프리도 그녀가 수영하는 것을 즐긴다고 이야기했다. 물, 식물들을 좋아하던 캐서린이 사막에서 자신의 고향인 영국을 그리워하며, 특히 크리스마스 때에 더 향수병이 진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렇게 '물'이라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가 사하라 사막에 '헤엄치는 사람들의 동굴'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은 아이러니하다. 동굴에 헤엄치는 사람들의 그림이 있고, 그녀가 물을 좋아한다고 했을 때부터 이 비극적인 결말을 눈치챘을만한 사람이 있었을까?
마지막 캐서린이 동굴 속에서 알마시를 기다리면서 쓴 편지에는 "경계가 없는 대지"에 대한 묘사가 나오는데, 캐서린과 알마시가 만나는 것에 있어서 국적이라는 것이 크게 걸림돌로 작용했지 않아서, 왜 이런 언급을 한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으나 (마치, 캐서린은 알마시가 그의 국적으로 인해서 자신을 구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결말을 미리 알고있었던 것 같은 편지 내용이다.), 국적을 가르고 싸우는 전쟁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 또한 전쟁 자체로의 비극이었을 것이라는 건 분명하다.
우린 진정한 국가예요. 지도에 그려진 경계도 없고, 강한자의 이름도 없는. 당신이 와서 날 바람의 궁전으로 데려가겠죠. 그것만 소망합니다. 그런 곳을 당신과 함께 친구들과 걷기를. 지도가 없는 대지를.
매혹적인 사막, 신비로운 동굴, 이탈리아 수도원의 싱그러움, 가브리엘 야레드의 아름다운 음악들.. 영화는 많은 것을 갖추고 있었고, 비극적인 두 주인공의 사랑이야기에 마음이 아팠지만, 영화는 내가 생각보다 산만했다. 평점을 보았을 때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 영화'라고 남아있겠지만, 내가 이 영화의 배경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그리고 스토리 파악능력 또한 부족했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킨과 한나의 사랑이야기를 좀 줄인다거나, 그들의 에피소드에 대한 묘사를 줄였으면 캐서린과 알마시의 슬픈 사랑이야기에 더 이입될 수 있었지 않을까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해 본다.
아직도 세계 어느 곳에서 사람을 국적으로 나누어서 싸우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현실같지 않게 느껴진다. 조심스럽지만, 이 영화는 슬픈 로맨스 영화로 강조되기보다는, 개인이 전쟁에 속에서 어떻게 휘말리는지, 전쟁이 얼마나 숭고한 것을 파괴하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떻게 자신의 삶을 지키려 하는지.. 또한 전쟁 속의 '국적'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영화로 더욱 알려지면 좋겠다고 생각해 보며 리뷰를 마친다.
영화 이어보기
가브리엘 야레드(Gabriel Yared)가 사운드트랙 작곡에 참여한 영화들을 더 보고 싶다. 개인적으로 그가 작곡한 <연인>(The Lover)의 OST를 좋아한다. <잉글리쉬 페이션트> 사운드트랙도 두고두고 듣게될 것 같다.
https://with-evelyn.tistory.com/126
킨을 연기한 나빈 앤드류스는 영화 <다이애나>에서 매력적인 의사 히스낫 칸으로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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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독스와 알마시가 거트루트 벨의 지도에 대해서 말하는 장면이 나와 반가웠다. 거트루트 벨의 인생을 그린 영화 <퀸 오브 데저트>.
사막의 풍경, 아름다운 음악이 <잉글리쉬 페이션트>와 닮아있다.
https://with-evelyn.tistory.com/235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가 출연한 또 다른 영화 <다키스트 아워>, <벨아미>, <사막에서 연어낚시>, <인 더 하우스>
그녀를 보고 싶다면 위 영화들을 보면 되나, 개인적으로 <잉글리쉬 페이션트>에서만큼 비중이 높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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