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프> <Proof>,2005
-감독 : 존 매든
-주연 : 기네스 펠트로, 안소니 홉킨스
-출연 : 홉 데이비스, 제이크 질렌할, 게리 휴스턴, 콜린 스틴톤
-장르 : 드라마
기네스 펠트로, 안소니 홉킨스, 제이크 질렌할이 출연한 영화지만, 대중들에게 그렇게 알려지지 않은 영화가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오늘 리뷰할 영화 <프루프>는 놀랍게도 다음 포털 사이트를 포함하여 몇몇 유명 포털 사이트에서도 그 리뷰를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네이버에는 아무런 평점도 남겨져 있지 않다. 하지만 이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아하는 세 명의 배우가 출연을 한다는 것, 그리고 이 영화의 짤막하지만 매력적인 시놉시스는 나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이 영화를 본 지 실은 몇 달이 지났다. 이 영화를 본 당시에는 왠지 모르게 좋기는 하였으나, 말하는 바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기 어렵다고 느꼈다. 하지만 묘한 매력이 있어 늘 언젠가는 리뷰해야지 하던 영화 중에 하나였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던 와중에, 최근에 제이크 질렌할이 출연한 영화 <소스 코드>를 보고 감동받아 그의 영화들을 더 리뷰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 우선 봤지만 리뷰를 미뤄왔던 <프루프>부터 다시 보고 리뷰를 끝마쳐보려고 한다.
영화는 젊은 시절 위대한 학문적 업적을 남긴 수학자 로버트가 나이가 들어 정신병에 걸리게 되는데, 아버지의 정신병을 혹여나 물려받지는 않을까 두려워하는 그의 딸 캐서린의 이야기를 그렸다. 비상한 두뇌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지 않은가?
영화는 극작가 데이비드 어번의 연극 <프루프>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연극 <프루프>는 2001년 퓰리쳐상을 수상했는데, 무엇보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천재수학자 ‘존 내쉬’를 모티브로 했다는 점이다. 2001년 초연 당시에 토니상, 뉴욕 드라마 비평가협회상을 포함 8개의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면서 작품성을 인정받아 전 세계적으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유명 배우들에 의해서 몇 차례 공연된 적이 있다.
(+) 연극 <프루프> 관련 기사
http://www.isportskorea.com/culture/life/?mode=view&no=20080716123320544&field_date=0&field=&keyword=
http://www.kdpres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0400
(+) 천재 수학자 존 내쉬의 삶을 그린 영화 <뷰티풀 라이프>
https://with-evelyn.tistory.com/40
줄거리
천재 수학자 로버트 르웰린은 스물두 살의 젊은 나이에 학계가 깜짝 놀랄 수학적 업적을 남겼지만 정신병에 걸려 말년에는 혼란의 시간을 보내다 동맥류로 63세에 운명을 다하게 된다. 로버트의 딸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촉망받는 수학도였던 그의 딸 캐서린은 이런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서 학업도 포기하고 약 5년간 그를 간병한다. 동시에 캐서린은 자기 자신도 아버지의 정신병을 물려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극도의 신경 불안 증세를 보인다.
그러던 중 아버지의 대학 시절 제자 할이 그녀를 찾아와서 아버지가 남긴 노트를 보아도 되겠냐고 제안한다. 로버트는 말년에 하루에 20시간씩 글 쓰는 것에 보내기도 하며 열정을 불태웠었다. 마치 정신병이 싹 나은 것 처럼 말이다. 그가 쓴 공책만 해도 수십 권이었다. 할은 로버트가 비록 정신분열증을 앓았지만 그의 천재성에 비추어 볼 때 새로운 수학적 증명을 남겼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할은 수십 권의 노트에서 아무런 수학적 증명을 발견하지 못했다.
할은 캐서린을 오래전부터 짝사랑하고 있었다. 할은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캐서린 또한 그동안 아버지를 돌보고 또 그를 떠나보내느라 힘들었던 것을 위로받는 듯했다. 처음에 캐서린은 할이 아버지의 증명을 검증하겠다는 빌미로 결국 아버지의 업적을 자신의 연구에 이용하려는 속셈으로 그녀에게 다가왔다고 생각하며 그를 믿지 않았지만, 결국 캐서린은 할에게 자신의 아버지 방의 서랍의 열쇠를 건넨다. 그곳에 있는 수첩에는 수학계를 뒤흔들만한 증명이 적혀있었다. 놀랍게도 캐서린은 자신이 그 증명을 썼다고 이야기한다.
할은 캐서린을 사랑했지만, 로버트 방의 서랍 안에 공책에 적혀있던 수학계를 뒤흔들만한 그 획기적인 증명이 캐서린에 의해 쓰여졌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그것은 첫째로 교수님 필체로 쓰였었기 때문이고, 둘째로 캐서린은 정식적인 수학교육을 받은 거라곤 고작 몇 개월이 다였기 때문이다.
"교수님은 최고셨어요. 우리 세대엔 그런 분조차 없어요. 그는 22살이 되기 전 굉장한 고난도 증명을 해냈어요. 당신이 했을 수가 없어요. "
캐서린은 할이 자신을 믿지 못한다는 것에 크게 실망한다. 또한, 캐서린은 자신의 언니가 뉴욕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벌 때, 로버트를 돌보기 위해서 학업을 그만두고 보살폈는데, 이제와서 언니가 자신에게 아버지를 정신병원에 데려갔었더라면 좀 더 나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니, 이는 캐서린에게 큰 상처가 된다.
"아버지 돌아가시니까 이제야 날아와서 돕고 싶다고? 지난 5년 동안 어디 있었어? "
"일했잖아. 하루에 14시간 일했어. 아버지는 환자였고 병원에서 전문적인 도움을 받았어야 옳았어. 네 손이나 빌리면서 음침한데 있는 것보다. 너도 더 나았겠지. 넌 아주 뛰어난 아이 었어."
처음엔 언니를 따라 뉴욕에 가기를 거부했지만, 캐서린은 할마저도 자신이 쓴 증명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자, 자신의 언니를 따라가 뉴욕에서 새 삶을 살아보려고 한다. 하지만 캐서린은 뉴욕행 비행기에 탑승하기 직전, 할에게로 간다.
증명에 매몰되지 말 것.
그럼에도 동시에 증명하고자 애쓸 것.
자신이 젊었을 시절에 수학계를 뒤흔들만한 대단한 증명을 발견했지만, 나이가 들고 정신병이 걸리면서 로버트는 그 명민함을 잃게 된다. 그를 바라보는 딸 캐서린의 마음은 얼마나 무너졌을까.
"천재성을 잃은 천재는 존재 의미가 없으니까요. 그저 늙은이에 불과할 거예요."
캐서린은 본인이 현재 자신의 아버지가 혁신적인 업적을 남긴 나이보다 많은데, 뚜렷한 성과를 이룬 게 없으니 좌절감을 느끼기도 한다. 자신의 아버지가 가르치는 대학에서 강의를 듣는 것도 부담스러워한다.
하지만 알고 보니, 다른 학도들도 마찬가지였다. 학문에 몰두하고, 괄목할만한 성과를 낼 수 있는 때는 젊었을 때라고 생각하며, 그 시절을 지나 보낸 학자들은 고뇌했다. 이제는 더 이상 획기적인 것을 증명할 수 없을 거라며.. 골든타임을 놓쳤다며.. 그런 마음을 술과 마약으로 달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로버트도 자신이 젊었을 때 이룬 성과를 뛰어넘지 못하니, 좌절했었던 적이 많았을까? 어떻게 보면 젊은 날의 성공만큼 불행도 없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23살 이후엔 내리막길 이란 두려움이 있거든요. 아버지도 그러셨어요. 사실 많은 업적들이 젊은 친구들한테 나오죠. "
캐서린은 아버지의 정신병을 물려받을까 두려워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재능에 대해서 믿지 못한다. 하지만 결국은 캐서린은 자기 자신을 믿는 것으로 결심하고, 자신에 능력에 대해서 증명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다.
영화를 통해서 증명 가능한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크게 세상에는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증명할 수 없는 것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영화에서는 하지만 증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 있으며, (가령 예를 들어캐서린에 대한 할의 사랑 같은 것) 그러므로 증명이라는 것에 너무 매몰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이를 초월한 '신뢰'가 중요한 것이란 메시지를 얼핏 주는 듯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에서 동시에 역설적으로 증명하기 어렵더라도 증명해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 또한 의미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물론 증명하는 것은 비단 수학 공식만이 아닌, 여러 가지 수단을 활용할 수 있다. 가령 예를 들면, 영화 마지막 장면의 할이 말했던 것처럼, 대화. 즉,이야기로도 말이다.
"나한테 신뢰를 회복하는 문제가 아직 남아있는 거 알고 있죠? 내가 썼다는 걸 증명할 것도 없잖아요. "
"이야기를 나누면서 판단할 수는 있겠죠."
만약 캐서린이 자신을 믿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자신을 능력을 설명하려고 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과연 행복했을까? 남들이 알아주기만을 바라면서? 아니면 증명할 방법도 마땅치 않으니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살면서? 정성적이던지, 정량적이던지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증명해야 하는. 즉, 끊임없이 나에 대해서 설명해야 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니면, 굳이 설명해야하는지도.
불완전한 캐서린은, 불완전한 인생 자체를 살며, 그리고 불완전한 관계 속에 속해있었지만, 결국 자기 자신을 믿고 자기 자신을 증명하려고 했다. 그리고 혹시 똑같은 삶을 다시 살 기회가 주어진다면, 좀 더 잘 살아보고 싶은 의지까지도 내비쳤다. 그렇게 영화는 내게 마음가짐에 따라 달리 살 수 있다는 메세지를 남겼다.
시작한 곳으로 되돌아간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줄 한 줄 되짚어가면서 더 짧은 길을 찾을 수 있다면. 조금 더 나은 길도 찾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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