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댑테이션> <Adaptation>, 2003
-감독 : 스파이크 존즈
-주연 : 니콜라스 케이지 (찰리 카프만 / 도날드 카프만) , 메릴 스트립 (수잔 올린), 크리스 쿠퍼 (존 라로쉬)
-조연 : 틸다 스윈튼 (발레리 토마스), 카라 세이무어 (아멜리아 카벤), 브라이언 콕스 (로버트 맥키)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장르 : 드라마. 코미디
-러닝 타임 : 114분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를 보았을 때는 내가 블로그를 막 시작했을 때쯤이었다. 그때 당시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영화 <존 말코비치가 되기>가 굉장히 특이하다고 느꼈지만, 그 영화를 제대로 이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후에 영화를 다시 보고, 대사를 곱씹으면서 리뷰를 쓰고 나니 그제야 <존 말코비치 되기>를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영화 <어댑테이션>과 <존 말코비치 되기>가 서로 연관이 있다는 것은 일찍이 알고 있긴 했다. 같은 감독. 같은 각본가. 하지만 앞서 말했듯 <존 말코비치 되기>를 이해하는 것에 너무 많은 힘을 소모했기 때문일까, 바로 <어댑테이션>을 이어서 보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존 말코비치 되기>의 리뷰를 쓴 지 3년 만에 <어댑테이션>을 보게 되었다.
영화는 수잔 올린의 <난초 도둑>이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데, 실제 <어댑테이션>영화에서는 <존 말코비치 되기>의 각본가였던 찰리 카우프만이 수잔 올린의 <난초 도둑>을 각색하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찰리 카우프만은 니콜라스 케이지가 연기한다. 오래간만에 색다르고 독특한 매력이 가득한 영화를 만나 기쁘다.
(+)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 리뷰. 그 당시 나에게 참 어려웠던 영화.
https://with-evelyn.tistory.com/8
줄거리
<존 말코비치 되기>의 대성공에도 불구하고 각본가 찰리 카우프만(니콜라스 케이지)은 자신의 성공을 의심한다. 뚱뚱하고 머리숱도 없는 자신의 외모를 비관하고, 자신의 능력 또한 하찮다고 느낀다. 그래도 그럴 것이,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 세트장에 가도 찰리를 어떤 인물인지 알아보는 사람은 없다. 그는 심지어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긴장하고 눈앞까지 온 기회를 날려버리기 일쑤다. 그는 자신이 무능하고 재치 없는 작가라는 강박증에 사로잡혀있다.
이 대머리 속에 독창성이 존재할까? 내가 부정적이라 머리카락이 도망친 걸까?
살아있어서 죄송하다고 사과해야 할 거 같아. 호르몬 때문인가?
난 여기 왜 있지? 어쩌다 왔을까?
그런 그에게 영화사는 어느 날 베스트셀러 <난초 도둑>의 각색을 맡긴다. <난초 도둑>은 백인 한 명과 원주민 세 명이 동식물을 채취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파카햇치 국립공원에서 멸종위기에 놓여있는 희귀한 난을 훔치려다 체포됐다는 기사를 본 <뉴요커> 기자 수잔 올린 (메릴 스트립)이 플로리다가 가게 되면서 시작된다. 체포된 사람은 존 라로쉬(크리스 쿠퍼)라는 한 난초수집가였는데, 수잔은 그를 취재차 따라다니며 기묘하고 아름다운 난초들과 그것들을 열정적으로 찾으러 다니는 사람들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빠져든다.
한편 할리우드 영화 공식을 따르기 싫은 찰리는 <난초 도둑>을 각색하는 것에 큰 애를 먹는다. 설상가상으로 찰스와 정반대로 대범하고 재치 있어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쌍둥이 동생 도날드가 크게 힘을 들이지 않고 가볍게 쓴 작품이 주목을 받고 신예 작가로 급부상하자, 찰리는 더욱 주눅이 든다. 고심하던 찰리는 마침내 도날드에게 구원을 요청하고, <난초 도둑>의 원작자인 수잔을 만나 각색의 방향의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한다.
뉴욕에 도착한 도날드와 찰리. 그 둘은 수잔을 멀리서 지켜보다가, 수상한 점을 발견하여 그녀를 마이애미까지 뒤쫓는다. 수잔이 간 곳은 존 라로쉬 집이었고, 그곳에서 찰리는 수잔과 존이 내연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과, 그들이 희귀한 난초에서 추출해 만든 마약에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중독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을 숨겨보던 찰리는 존에게 발각이 되고, 마약으로 이미 이성을 잃은 수잔과 존은 으슥한 국림공원으로 찰리를 끌고 가 죽이려고 한다.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다음 날. 찰리와 도날드는 수잔과 라로쉬의 추격을 피해 늪 어딘가에 몸을 숨기지만, 도날드는 주변을 지키고 있던 존의 총에 맞게 되고, 현장을 급하게 벗어나려 하다 교통사고로 결국 목숨을 잃는다. 찰리는 늪으로 도망치지만, 이를 쫓던 존은 악어에 물려 목숨을 잃는다.
적응. 그리고 각색.
영화를 보기 전, 영화 제목인 adaption을 적응의 의미로 해석해야 하는지, 아니면 각색으로 이해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영화는 이 단어의 두 의미를 모두 담았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발음을 한글로 그대로 옮겨 적은 <어댑테이션>으로 한국에 개봉되었던 것은 배급사의 적절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우선, '적응'부터 이야기해 봐야겠다.
뉴요커 기자 수잔이 처음 플로리다에 가서 난초를 훔치려다가 체포된 존 라로쉬를 만나기로 결심했을 때, 저널리스트로써 자신의 본업인 '취재'를 하려는 의도가 컸을 것이다. 실제 수잔 올린은 앞니도 없는 괴상한 외모를 가진 존 라로쉬를 처음 만났을 때, 망상이 지나친 괴짜라고 생각했다.
과거에 존은 한 때 거북이에 미쳐 살다가, 열대어로 그 애정을 옮겨갔다가, 어느 날 갑자기 19세기 네덜란드 거울 수집에 빠지기도 했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처음에 수잔은 마음이 갈대처럼 쉽게 변하는 존이 이상하게만 보였다. 하지만 동시에 정말로 마음을 다해 아낌없이 사랑하고 나면, 미련이 남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진심으로 어느 것에 애정을 다하고, 맺고 끊음을 분명히 할 수 있는 존의 모습을 부러워한다.
게다가 존은 꽃들과 곤충들을 관찰함을 통해서 세상은 의도된 것들에 의해 움직이고, 그러한 움직임은 삶이 이어지게 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에게서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고 이야기한다. 존은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면 되고, 내 꽃을 찾았다면 절대로 포기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이러한 존 라로쉬의 뼈 있는 말들에게서 수잔은 자신의 열정이 결여된 삶, 그저 그럭저럭 유지되고 있는 남편과의 관계 등을 돌아보며 자신의 욕망에 눈을 띄게 된다.
난초 채집은 아주 어렵고 위험한 일이었지만, 수잔은 그러한 면이 존을 사로잡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이 애정하는 것에는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드는 존의 모습에서 감명을 받는다. 존의 모습은 인간과 다르게 잘 변하고, 적응을 쉽게 하는 식물을 닮아있었다. 존은 어느 상황에 놓여있든지 적응할 수 있었고, 어떻게 서든 살아남는 법을 알아내는 생명력 강한 사람이었고, 이러한 모습은 결국 수잔의 마음을 이끌리게 한다.
두 번째로 '각색'이다.
앞서서 잠깐 이야기했지만, 영화 속에서 찰리는 실제 <존 말코비치 되기>의 각본을 쓴 찰리 차우프만이 만든 인물이다. <존 말코비치 되기>로 아카데미 최우수 각본상을 받았지만, 이는 그가 쓴 첫 작품이다. 천재라고 자만해도 부족하지 않을 만한 빛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는 겸손하고, 오히려 자신을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각본가인 찰리는 수잔의 <난초 도둑>을 각색하는 것에 애를 먹는다. 창작하는 것도 어렵지만, 각색하는 것도 창작의 과정이며,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라는 찰리를 통해서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수잔은 자신의 경험을 각색하여서 <난초 도둑>이라는 작품을 창작해 냈다. <난초 도둑>에서 수잔 올린은 라로쉬를 따라서 유령 난초를 보기 위해서 습지에 들어가지만, 결국에 난초를 찾지 못한 실망감으로 마무리된다. 유령 난초라는 허상을 찾아 헤맸던 존의 모습에서 허무함이 느껴지며, 그 실망감에서 안타까움과 애잔함이 밀려온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영화는 인간 삶의 다양한 면을 보여주려 한다. 수잔이 소설에 썼던 내용과는 정 반대로, 실제 수잔은 유령 난초를 찾았고, 유령 난초로 마약을 만들 수 있으며, 존이 그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존 라로쉬의 열정 뒤편에는 어두운 중독과 쾌락의 세계가 있었던 것이었다.
수잔은 변화는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변화가 일어나고 사람은 바뀌는 것을 인정했다. 새로운 환경에의 적응과 변화. 변화에 자신을 맡긴 것이고, 그것이 그녀의 답답한 일상의 숨통을 틔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식물과 자신과 유일한 차이점은 단지 자신이 변화를 숨기려고 했다는 점이라고 이야기했다. 수잔은 책에 거짓말을 쓰고 남편과의 관계가 변하지 않은 척했다. 그리고 찰리에게 자신의 본모습이 드러나자, 세상이 이를 알게 하면 안 된다고 한다. 수잔은 자신의 본모습을 끝까지 알리지 않고 각색한 소설의 모습으로만 남고 싶었다.
나는 '적응'과 '각색'에 '열정'을 더하고 싶다.
각색과 적응. 그 사이에는 열정이 함께했다. 존 라로쉬에게서 느꼈던 열정은, 수잔의 마음속에 갇혀있었던 열정을 깨웠다.
나도 그들처럼 무언가 갈망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건 체질에 안 맞는다. 내가 가진 열정은 단 하나뿐이다. 열정을 품은 느낌을 알고 싶다는 열정.
찰리는 도날드의 말을 통해 남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자신이 누구를 사랑하는 것이 중요한 것을 깨닫고, 자신이 사랑하던 여자에게 마음을 고백하고, 그렇게 교통체증처럼 막혀있던 자신의 각본을 충만한 열정과 자신감으로 거침없이 써내려 간다.
수잔이 <난초 도둑>을 써 내려갈 수 있었던 것도, 물론 그녀가 난초 채집가에게 느꼈던 흥미로움, 그들의 열정에 대한 영감 때문이었다. 그것들이 없었다면, 그녀는 과연 열정적으로 글을 써 내려갈 수 있었을까?
이 영화는 이것은 어떻게 보면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남의 모습 뒤에는 어떠한 진실이 담겨있을지 모른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하며, 그 은밀함 자체. 앞뒤가 다른. 쉽게 믿을 수 없는 변덕스러움이 어쩌면 우리 각자의 인생임을 보여주는 듯하다. 하나의 교훈과 문장으로는 쉽사리 귀결되지 않는 이 영화는 그렇기 때문에 계속 생각나게 하고, 그러기에 충분히 매력적이다.
나는 이 영화에서 어느 캐릭터보다 수잔 올린에게 계속 마음이 쓰인다. 그거는 아마도, 그녀에게서 묘한 연민의 감정과 공감이 밀려오기 때문인듯하다. 우리가 열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것에 이끌리는가. 혹시 열정을 쫓아가다가, 잘못된 길로 이끌리지는 않은가. 이것들은 모두 수잔을 보고 있으면 드는 생각들이다.
혹자는 이 영화가 너무 과대 평가 되어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과연 당신은 이 영화를 어떻게 느낄지 궁금하다.
나는 이 영화가 영화와 닮아있는 현실, 현실과 닮아있는 영화를 보여준다고 생각하며,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원작을 읽고 싶어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니, 국내 번역판이 2017년 절판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큰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도, 내가 이 영화를 애정한다는 증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http://www.yes24.com/Product/Goods/360381
영화 이어 보기
(+) "당신 덕에 난 진정성 있는 글을 쓰게 됐어" 실연은 작가를 한 발짝 더 성장하게 한다 <녹터널 애니멀스>
https://with-evelyn.tistory.com/188
(+) 작가였던 주인공이 뇌를 100% 활용할 수 있는 약을 먹는다면? <리미트리스>
https://with-evelyn.tistory.com/200
(+) 메릴 스트립이 기사로 열연하였던 또 다른 영화 <로스트 라이언즈>
https://with-evelyn.tistory.com/20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