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태치먼트><Detachment>,2014
-감독 : 토니 케이
-주연 : 애드리안 브로디 (헨리 바스 역), 마샤 게이 하든 (캐롤 디어든 역), 크리스티나 핸드릭스(사라 매디슨 역)
-조연: 루시 리우 (닥터 도리스 파커 역),제임스 칸(찰스 시볼트 역),사미 게일(에리카 역)
-장르 : 드라마
-러닝타임 :97분
유튜브에서 '나중에 볼 동영상' 기능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을까 모르겠다.
나는 정말로 유용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편인데, 감명깊게 보아서 나중에 또 보고 싶은 동영상도 넣어두기도 하고, 또 당장은 보지 않더라도 나중에 시간을 내어서 보고 싶은 동영상들도 모아두고 있다. 그렇게 모아두면 나중에 그냥 멍하니 어떤 동영상을 볼까라며 무한정 스크롤을 내릴 시간을 줄일 수 있어 좋았다.
며칠 전 보니 그렇게 야금야금 모은 동영상이 그 갯수가 거의 2천 개에 달해 있었다.
나는 리스트를 '오래된 순'으로 정렬해서, 예전에 내가 어떤 동영상들을 다시 보고 싶어 했는지, 혹은 나중에 보려고 했었는지 살펴보았다. 보다 보니 예전에 보았던 동영상들에서 추억이 새록새록 나기도 하고 또 당시에 관심 있어하던 것들에 대해서 상기할 수 있어서 마치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러다가 꽤나 오래전에 영화 <디태치먼트>의 리뷰 동영상을 발견했다. 나중에 보려고 넣어뒀지만, 결국엔 보지 못했던 동영상이다. 그간 영화 제목도 잊고지냈었는데, 이렇게 다시 보게 되니 운명인가 싶었고, 보고 싶은 영화도 없던 참인 데다가, 마침 내가 이용하는 OTT에 있어 보게 되었다.
영화는 알베르 까뮈의 말로 시작한다.
어느 하나에 이러한 깊이를 느끼지 못했고 내 스스로 격리되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느낌이다. -알베르 까뮈
And never have felt so deeply at one and the same time. So detached from myself and so present in the word - Albert camus
까뮈의 문장으로 시작하는 영화라니.. 이 영화가 나에게 참 적시에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줄거리
새로운 학교에 한달간 배치된 임시교사 헨리 바스. 학생들을 다루는 것에 능숙한 그는 정규직으로 일하기에도 충분한 조건을 갖춘 듯하나, 기간제 교사로 살아가는 것이 편하다.
그에게는 할아버지가 있다. 치매가 걸리고 신체도 쇠약해져 요양 병원에서 지내는 할아버지는 자주 소동을 일으켰고, 헨리는 자주 병원에서의 소환 전화를 받아야했다. 그날도 헨리는 늦은 밤 전화를 받고 병원을 찾아가고, 겨우 할아버지를 진정시켜 집으로 돌아가려 하는 길에 만난 병원 관계자에게 똑바로 환자들을 보살피라고 소리 지른 후, 복잡한 심정으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눈물을 터트린다. 거리를 떠돌며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하며 돈을 버는 10대 소녀 에리카는 심각한 표정으로 울고 있는 헨리를 보고 뒤를 쫓지만, 헨리는 에리카를 매정하게 뿌리친다.
헨리가 한달동안 출근하게 된 학교엔 문제 아이들이 모여있기로 유명하다. 아이들은 선생들을 무시하고 반항하고, 그곳의 교사들은 불량한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에 지쳐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엄하게 대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을 이해하려 하고, 깨달음을 주려는 헨리의 모습에 학생들은 조금씩 마음을 연다. 헨리는 어느 학생이라도 다른 학생에게 모욕을 당하는 것을 참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본 학급의 왕따 메레디스는 헨리를 좋아하게 된다.
어느 날 헨리는 에리카를 다시 마주친다. 배고프니 10불을 빌려달라는 에리카.
헨리는 오갈 때 없는 에리카를 자신의 집에 잠시 머물게 하고, 에리카는 헨리의 친절함에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한다. 헨리는 에리카에게 어렸을 적 아버지가 도망치고, 엄마와 할아버지와 살았었으며, 엄마가 약물을 과다 복용하고 세상을 떠났던 과거를 털어놓는다.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헨리는 메레디스나,에리카에게나, 가르침을 줄 수는 있고, 잠시나마 자신의 고민과 과거를 털어놓을 수는 있었으나,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주는 것을 꺼려했으며, 사람들 간의 깊은 관계 또한 기피했다. 메레디스는 헨리와 대화하기 위해서 그를 찾아가지만, 학생과 선생과의 거리를 냉정하게 유지하려는 헨리의 태도에서 상처를 받고 비관하여 자살을 선택하고, 헨리는 에리카를 청소년 보호시설로 보낸다. 하지만, 그는 이후 깨달음은 얻고 에리카를 만나기 위해서 청소년 보호시설로 찾아간다.
우리 모두가 똑같은 인간임을
우리는 일반적으로 교사가 아이들과 학생들을 가르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옛날처럼 선생들을 존경하던 시대는 끝이난 것 같다. 무조건 선생은 아이들을 제대로 자라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 당연한 보편적인 상식으로 여기며, 어느 누구도 진심으로 선생에게 진정으로 고맙다는 말을 건네려 하지 않는 듯하다.
영화는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을 지도할 때 어려움을 겪는 교사들의 상황이 조명되며, 헨리를 포함한 여러 교사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한 인간으로서의 교사를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돌아보면, 누군가를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교사일지언정 인생의 모든 것을 달관하고, 인간이 겪는 문제들을 슬기롭게 헤쳐가는 존재일 수 없자 않은가.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일 뿐이다.
"매일 너 같은 애들을 상대하면서, 내 인생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알아?"
사람들은 누구나 문제가 있다. 저녁엔 집에서 고민하고, 낮엔 일터에서 생각한다. 우리들은 가끔은 밀려드는 바다 한가운데 혼자 표류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교사들은 이런 것에 면역이 되어있다고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오히려 교사들의 삶은 더욱 가혹했다. 그들은 매일 아이들 앞에 나가, 가르치고 계몽하고 좋은 길로 인도를 해야 한다. 자신을 돌보는 것은 자연스럽게 뒷전이 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안에서 아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성장해 나가는 교사 헨리의 모습도 그려진다.
헨리는 불운했던 과거로 인해서,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떠돌이처럼 계속해서 기간직 교사생활을 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하지만, 헨리는 나름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에 열정적이었다. 그것은 마치 자기가 어렸을 때 더 일찍 깨달았었으면 좋았을 것들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헨리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준비가 있어야 하며, 아무나 부모가 될 순 없다고 이야기했다. 이는 아이들을 좋은 부모로 성장시켜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동시에 자신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며 진지한 관계를 피해왔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헨리를 보며, 누군가를 지도하고 좋은 길로 이끄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본인이 그러한 충분한 교육과 이끎을 받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마음이 측은해졌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유는 한 가지예요.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어른이 되기 위해선 가이드가 필요하죠. 복잡한 세상의 이치를 알려주는 것도요. 전 그런 가르침을 받지 못했어요.
그 안에서 연대의 중요성을 발견하게 된다. 문제 아이들을 상담하는 것에 지쳐서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한 선생에게, 다른 동료 선생이 건네는 말에서, 우리는 사람, 그리고 그들과의 교류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이 직업의 가장 나쁜 점은 누구도 고마워하지 않는다는 거야. 내가 여기서 고맙다고 할게. 아무도 널 대신할 수 없어.
헨리도 마찬가지였다. 메레디스는 헨리에게 자신의 대화상대가 되어줄 것을 요청한다. 동시에 메레디스는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는 헨리에게 다가가고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헨리는 우리 모두 혼란한 세상을 살고 있지만 이 시기가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메레디스에게 충분한 위로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헨리는 메레디스의 말을 들어주려 했을 뿐인데, 다른 여선생에게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히고 분노한다.헨리의 모습에서 남들과 관계를 맺는 것에 어려움을 가졌던, 세상에 속해있지만, 동시에 세상에 동떨어져있던 알베르 까뮈 <이방인>에서의 뫼르쇠를 떠올리게 된다. 어느 하나에 이러한 깊이를 느끼지 못했고 나 스스로 격리되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느낌이라던 뫼르소.
https://with-evelyn.tistory.com/175
하지만, 이 영화는 다행히 <이방인>의 뫼르소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헨리는 생각한다. 자신이 조금 더 따뜻한 말을 건넸으면 어땠을까. 혹시 나의 문제가 남에게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았나. 나는 아이들을 좋은 길로 인도하려고 했는데, 그 방법이 잘못되었거나 부족하지는 않았는가. 메레디스의 자살이 비단 헨리 때문만은 아니지만, 헨리는 메레디스에게서 오래전에 약물 과다 복용으로 세상을 떠난 자신의 엄마의 모습을 보았지 않을까. 엄마가 없는 세상에서 살아갔었어야 하는 그 칠흑 같은 때를 떠올리며, 그는 조금 더 자신이 남에게 관심을 가짐으로, 그들은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살아가기에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깨닫게 할 수 있고, 그들과 가까워지고, 보살펴주고 교류하고 의지함으로, 자신 또한 성장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헨리는 자신 스스로를 보호하고 무뎌지는 것과 싸우기 위해서 배워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것이 상상력을 자극하고 의식과 신념을 발전시키기 위해. 이 모든 기술이 필요하지 우리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헨리는 자신이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려고 했던 것이, 바로 자신에게도 부족했었음을 깨닫게 된 듯하다. 그렇게 헨리는 마음의 냉정함을 버리고, 용기를 내어 에리카에게로 간다. 헨리와 그리고 에리카가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상처를 보듬어주며 험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치유의 이름이 되어줬으면 하고 바라본다.
(+) 이어지는 생각들
영화에서는 조지오웰의 소설 <1984>에서 등장하는 Double Think 개념이 소개된다. 몇 달 전 <1984> 영화를 보고 책을 보고 한동안 빠져있었적이 있었는데, 리뷰를 못 남기고 있던 참에 이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1984>를 리뷰하는 것을 늦더라도 절대 스킵하지는 말자라고 다짐하게 되었다. 이제 나도 <디태치먼트>의 리뷰를 다 썼으니,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이 영화를 느꼈는지, 2년이나 '나중에 볼 동영상'에 넣어뒀던 그 동영상을 다시 보아야겠다.
'assimilate'이게 무슨 뜻일까?
-뭔가를 흡수하는 것이요.
훌륭한 답이다. 'ubiquitous '아는 사람?
-언제, 어디서나
그렇다면 두 가지를 합하면? 'ubiquitous assimilate'
-언제 어디서나 흡수하는 것이요.
정답이다. 모든 이미지가 실제로 보이면 어떻게 상상할까?
조지 오웰의 1984 읽은 사람? 잘했다. "Double Think" 아는 사람? 메레디스?
-서로 반대되는 신념을 동시에 둘 다 진실이라고 믿는 거요.
거짓을 믿기 위해선 잘못을 알아야 해. 예를 들어보자. 행복해지기 위해선 예뻐져야 해. 성형 수술이 필요하고, 날씬하고 유명하고 패션감각이 필요해. 남학생들은 여자들은 창녀라고 불러. 더러운 걸레라고 해. 엿같고 재수 없다 하지.
진짜처럼 말하지만 거짓말이야. 하루 24시간이고 삶의 대부분을 죽도로 일하다가 끝마칠 거야.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하고 무뎌지는 것과 싸우기 위해서 배우는 거야. 상상력을 자극하고 의식과 신념을 발전시키기 위해. 이 모든 기술이 필요하지 우리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 영화 이어 보기
엄마가 된다는 것. 그 무거움에 대해서. <케빈에 대하여>
https://with-evelyn.tistory.com/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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