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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 존 쿠삭, 카메론 디아즈, 캐서린 키너 주연. 나는 과연 나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가. Being John Malkovich

by evelyn_ 2019.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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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말코비치 되기 <Being John Malkovich>, 1999

-감독 : 스파이크 존즈

-주연 : 존 쿠삭 (크레이그 슈와츠 역), 카메론 디아즈 (로테 슈와츠 역), 캐서린 키너 (맥신 런드 역)

-장르 : 판타지, 코미디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러닝타임: 112분


 

인형 조종사인 ‘크레이그’는 꼭두각시 인형을 만들고 인형을 조종하는 재주가 뛰어나지만, 꼭두각시 인형극이 인기가 없어진 세상에서 생계를 유지하면서 사는 것이 어렵다. 그녀의 아내 ‘라티’는 애완동물 가게를 운영하며 동물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사람이지만 크레이그로부터의 사랑과 관심은 결핍되어 보인다. 크레이그는 인형극으로 돈벌이가 어려워지자 취직을 결심하고, ‘레스터 기업’을 찾아간다. 그 회사는 특이하게도 뉴욕시의 한 빌딩의 7과 1/2층(7층과 8층사이)에 위치해있었는데, 그곳에서 크레이그는 ‘멕신’이라는 여자를 만나 첫눈에 반하게된다. 하지만 멕신은 그가 인형 조종사라는 것을 알고 그를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크레이그는 우연히 사무실에서 유명 배우 ‘존 말코비치’의 뇌로 가는 문을 발견한다. 그 문을 통과하면 15분 동안 말코비치의 뇌속에 머물 수 있고, 그의 감각을 모두 느낄 수 있게 되는데, 크레이그는 라티와 멕신에게 이 문의 존재를 알리게 되고, 사업수완이 좋은 멕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말코비치가 될 기회를 파는 사업을 만들게 된다. 

 

 한편 말코비치가 된 라티는 말코비치가 된 자신을 자유롭다고 느끼며, 멕신을 사랑하게 되고 멕신도 ‘라티가 들어간’ 말코비치를 사랑하게 된다. 이렇게 멕신과 말코비치가 된 라티 서로를 원하게 되니, 크레이그는 자신의 아내 라티를 가두고 멕신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자 한다. 크레이그는 꼭두각시 인형을 매우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이라 그런지, 다른 사람들은 말코비치의 내면에 들어가게되면 말코비치의 행동을 ‘지켜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지만, 크레이그는 말코비치의 행동을 ‘조종’할 수 있게 되고 말코비치의 몸에 자신이 원하는 만큼 머물러 있는 방법을 터득한다. 멕신도 말코비치의 몸에 들어간 사람은 라티가 아니라, 크레이그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크레이그가 존 말코비치의 육체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된 그녀는 크레이그와 말코비치가 교묘하게 섞여진 그를 매력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사랑하게 된다. 

 

  라티는 크레이그가 가둔 감옥에서 탈출하여 레스터 박사를 찾아가게 되고, 말코비치가 될 수 있는 그 문에 대한 정체를 묻게된다. 그러다가 레스터 박사의 내면에 있는 사람은 레스터 박사가 아니었으며, 말코비치가 44살 생일이 되는 순간 그의 몸으로 들어가면 그의 육체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 계획을 실행시키기 위해 지금 잠시 레스터 박사의 몸으로 살고 있는 머틴 선장이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레스터 박사는 라티에게도 자신과 함께 그 계획을 실행할 것을 권유한다. 또한 그 계획이 어긋나서 타이밍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말코비치의 내면으로 갈 수 없고, 새로 잉태되는 아기의 육체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그 아이의 육체안에 종속이 되고 죄수처럼 숙주의 뇌 속에 갇히게 되어 아무것도 통제하지 못하고 영원히 타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밖에 없게 된다는 것을 알게된다.  

  이후 말코비치가 된 크레이그는 멕신과 함께 인형극을 유행시키게 된다. 크레이그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인형극은 퇴물로만 취급되었었는데, 말코비치가 인형극을 하니 그 영향과 파급력이 어마어마했다. 모든 사람들이 무엇인가에 홀린 것처럼 말코비치가 인형극을 한다는 것에 대단한 의미를 찾아냈고 찬양했다. 하지만 8개월 후, 멕신은 자신이 말코비치의 육체만을 사랑했을 뿐 자신이 진짜 사랑한 사람은 라티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크레이그의 44살 생일이 다가오자 레스터 박사와 라티는 말코비치 내면에 들어가있는 크레이그를 밀어내고 말코비치 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지만 크레이그가 말코비치의 내면에서 나오려고 하지않아, 둘은 멕신을 납치 하여 크레이그를 협박하여 말코비치 육체에서 나오도록 한다. 레스터 박사는 기다렸던대로 말코비치의 내면으로 들어가 말코비치의 육체에서 살게 되고, 멕신은 라티와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여 더 이상 말코비치가 되지 않으려고 한다. 한편 크레이그는 멕신에게 납치된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 말코비치의 내면에서 나왔다고 말하지만, 자신이 진정 사랑했던 사람은 라티였다는 깨달음을 얻은 멕신은 그를 무시한다. 크레이그는 다시 말코비치의 몸으로 돌아가서 멕신의 사랑을 얻으려고 하지만 이미 레스터 박사가 말코비치를 점령한 이후였다. 그래서 그는 새로 잉태되는 아이의 몸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 아이가 바로 멕신과 말코비치가 된 라티가 만든 아이였고 그 아이의 눈을 통해 크레이그가 멕신을 바라보며 자신을 봐달라고 간청하지만 그 내면의 목소리는 멕신에게 들리지 않는다. 

 

나는 나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가 
 

 이 영화의 스토리만 정리하는데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 상상력 가득한 판타지가 섞인 충격적인 코미디 영화로 규정을 지으면 간단할 지도 모르나 그렇게 간단하게만 이 영화가 다가오지 않았고 생각 할수록 어려웠다. 

 

   멕신은 사람을 내면이 아닌 외적인 요소로만 평가했다.멕신은 말코비치가 된 라티를 사랑하나, 말코비치의 모습이 아닌 레티는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크레이그와 라티는 멕신의 사랑을 받기위해 자신을 포기하는데에 전혀 아쉬움이 없이 존 말코비치가 기꺼이 된다.인형 조종사였던 크레이그를 거들떠도 보지 않던 멕신은, 말코비치가 된 크레이그를 사랑한다. 라티와 크레이그는 멕심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했으나, 말코비치의 모습이 아니면 그녀의 관심조차 받을 수 없었다. 존 말코비치의 내면으로 들어간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고 왜곡된 자아를 만들었다. 비단 이들 셋 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아닌 존 말코비치라는 남이 되기 위해서 7과 1/2층에 길게 줄을 선다. 말코비치가 된 크레이그가 인형극을 하니, 갑자기 인형극이 남들이 알아주는 예술로 인정받는다. 우리는 왜 남의 모습으로 살고자 하는가. 우리가 타인을 얼마나 외적인 요소로만 판단하는지에 관해 많은 생각을 던져줬다.

 

 

그렇다면 과연 내가 타인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되는 문을 발견하게 되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누구에게 사랑받기위해서 다른 누군가가 되는 크레이그와 라티같이 되지 않으리라 자신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타인의 외적인 것만 사랑하는 멕신이 되지 않으리라 자신하기도 어렵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남에게 알릴 수 있는 정말 효과적인 수단은 실은 외적이라는 메세지가 무겁게 다가온다. 많은 책과 영화에서 사람의 내면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 영화는 외적인 요소가 얼마나 우리의 삶의 결정에 지배적으로 자리하고 있는지 표현한다. 다만 그러한 시대적 분위기를 맹목적으로 찬양하지 않는다. 존 말코비치는 배우로써 연기를 잘 해서 유명인이 되었다. 배우라는 직업도 남이 되어 남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흉내내야 한다. 한편 인형조종사는 어떤가? 인형을 신처럼 조종할 수 있다.  크레이그는 말코비치가 되어 말코비치를 조종하였고, 인형을 조종하였다. 그는 말코비치의 몸이 되어서야 유명세를 얻었지만, 말코비치 몸에서 벗어나면 무의미한 존재였고 멕신의 사랑을 얻는 것에도 실패했다. 결국 그는 껍데기와 내면이 다른 허무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연 우리의 인생을 온전히 살고있는가? 나와다른 어떤 타인의 삶이 되려고 우리의 주체성을 쉽게 포기하고 있지 않는가. 어떤 타인의 삶으로 내 삶이 영감을 받고 긍정적인 자극을 받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내 자신을 버리고 남의 모습의 가면을 쓰고 유명세와 사랑을 얻는 것은 과연 진정한 의미가 있을까. 내 자신의 인생을 충분하게 살지 못하는 사람은 꼭두각시나 다름없지 않을까? 내 자신을 내가 사랑하고 아껴야 나의 존재가 의미있으며, 남도 나를 사랑할 수 있음을. 그리고 외적인 요소에 쉽게 현혹되지 않게 늘 경계하는 자세가 필요함을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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