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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리뷰] <타인의 삶> 몰랐던 내 모습을 타인의 삶에서 찾다.

by evelyn_ 2019.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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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의 삶 The Lives Of Others,2006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5년 전. 


 1984년, 동독. 동독은 자신들이 행하던 폭력적인 통치 방식이 문학 작품을 포함한 여러가지의 형태로 해외로 알려져서, 동독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일을 필사적으로 막기위해서, 비밀경찰로 하여금 수많은 사람들을 감시하고 통제하고자 한다. 이러한 “강압적인 체제” 안에서 국가에 대한 맹목적인 신념을 지녔던 비밀경찰 “비즐러”는 동독 최고의 극작가 “드라이만”과, 그의 애인인 여배우 “크리스타”를 감시하는 임무를 맡게 되어, 드라이만의 집에 도청기를 설치하고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게 된다. 


 비즐러는 사람을 심문하는 것에 매우 능숙한 냉철한 사람으로, 대학에서 심문하는 방법에 관한 강의까지 하는 능력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비즐러는 드라이만을 도청하면서, 순수하게 문학을 사랑했지만, 동독의 강압적인 체계로 궁지에 몰려, 몰래 예술활동을 하는 그의 삶을 안타까워하게 되고, 국가로부터 부당하게 예술활동을 저지당한 드라이만 주변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비논리적인 체제의 문제점을 목격하게 된다.  또한, 예술활동을 계속하고 싶으면 자신을 만나야한다고 협박하는 총리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크리스타도 안타깝게 생각하고, 더 이상 총리라는 스폰서에 끌려 다니지 않도록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크리스타에게 용기내어 다가가, 그녀는 그녀 그대로 아름다운 배우라는 것을 말해주며, 크리스타가 총리에게서 벗어날 용기를 내게끔 독려한다.




 비즐러는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의 삶을 지켜주기 위해서 도청 내용을 각색하여 보고하게 되고, 드라이만은 그러한 비즐러의 도움에 무사히 서독에 책을 출판하게 된다. 곧이어 이 책이 서독에서 반향을 일으키자, 동독 경찰들은 그 책의 작가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게 되고, 비즐러는 드라이만의 타자기를 숨겨서 그가 잡히지 않게 도와주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크리스타가 안타깝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비즐러는 비밀경찰의 직무에서 면직되어, 우편물을 감시하는 직원으로 강등되게 된다. 이후 통일이 되고, 드라이만은 자신이 독일이 분단되었을 당시 정부로부터 감시를 당했었고 ,비즐러라는 비밀경찰이 자신을 지켜주었다는 것을 알게되어 그를 만나기위해 찾아가지만, 가는 도중에 되돌아와, 그 당시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게 된다. 통일된 베를린에서 우편 배달부로 살아가는 비즐러는 서점에서 드라이만이 쓴 책을 발견하게되고, 그 책을 구입하며 마무리된다. 





과연 나는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있는가?


 드라이만과 크리스타는 “체제” 안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비즐러는 그러한 그 둘의 삶을 지켜보며, 자신도 그들과 똑같이 “체제”가 만든 불쌍한 꼭두각시와 다름없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자신의 역할은 감시자였지만, 그도 똑같이 정부의 “체제”안에서 비밀경찰로써, 남들과 자유롭게 관계를 맺지 못했다.  영화에서는 비즐러의 가족도 비추어지지 않고, 일적인 관계외의 친밀한 인간관계가 전혀 그려져있지 않다. 자신의 존재가 알려지면 안 되었을 비즐러는 “투명인간” 같은 삶을 살지 않았었을까? 그는 지독하게 외로웠을 테지만 그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도 없었다. “체제”안의 비밀경찰이라는 신분은 그를 고립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동독의 체제 안에서 비즐러는 그저 감정없이 기계처럼 사람을 심문하는 냉혈한으로 자랐다. 그가 동독이 아닌 다른 환경에 있었다면 그렇게 냉철한 인간이 되었을까? 



 

 드라이만의 집에서 몰래 가져온 시집을 읽는 비즐러의 입가에 번진 미소와, 드라이만이 연주한 ‘아름다운 영혼을 위한 소나타’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비즐러의 모습에서 “체제” 속에서 문학과 음악과도 강제로 멀리 지냈어서 척박했을 그의 삶이 상상된다. 결국 그는 타인의 삶에서, 냉철하고 외롭게 자란 꼭두각시와 같은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다. “타인의 삶”에서 “자신의 삶”을 찾은 비즐러. 그는 용기를 내어 드라이만과 크리스타를 지켜줌으로써, 감사의 표현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용기에는 본인이 과거에 냉철하고 비인간적이게 남들을 심문 했던 것에 대한 자기반성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이렇듯 자신의 삶을 알게된 비즐러가 서점에서 드라이만의 책을 구입하며 “저를 위한 책입니다”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그가 드라이만을 만나기 전까지 몰랐었던 자신의 삶을 이제는 “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는 몰랐던 자신만의 삶의 모습을 찾은 것이다. 


 동시에,  자신의 행동이 알려졌을 때에 어떠한 보복을 당할 것인지 충분히 알았을 비즐러가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의 삶을 지켜주는 용감한 모습은 많은 감명을 준다. 부당한 행위에 대해서 분노 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 분노에서 그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뿐 용기내어서 변화를 위해 행동으로 나서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비즐러의 용기는 동독의 부당한 체제에 대해, 소극적인 감상을 넘어 용기있게 본인이 목소리를 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과연 나는 비즐러와 같은 상황일 때,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의 삶을 지켜주기 위한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다만 무엇보다도, “체제” 속에서 문학과 음악도 자유롭게 듣지 못했을 비즐러가 안타깝게 느껴지며, 사람을 비인간적으로 만드는 감시와 통제의 상황이 되풀이 되지를 않기를 바라본다. 과연 우리가 사는 곳의 “체제”와, 그 안의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 생각해본다. 과연 우리는 자유롭게 생각을하며 의견을 내고 , 다양한 문학과 음악을 통해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충분히 사유하고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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