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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요하네스 베르메르가 전한 평범한 삶의 진정한 의미

by evelyn_ 2019. 2. 8.
 
인터넷의 세상 

 

우리는 핸드폰으로 터치 몇 번이면 한참 멀리 떨어져있는 곳의 풍경을 보고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세상에 살고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 태어났더라면 나는 과연 무엇을 볼 수 있었을까? 내가 사는 곳의 모습과 이야기들만 알고 생을 마감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나 당연하면서도 동시에 섬뜩하게 느껴진다. 이렇듯 인터넷은 우리들에게 방대한 간접경험을 빠르고 쉽게 전달하며 우리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준다. 인터넷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장점 중 하나일 것이다. 지구 반대편의 소식이 얼마나 즉각적으로 전파가 되는지. 세계의 여러 스타들의 사생활이 얼마나 빠르게 퍼져나가는지. 모두 인터넷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래서일까. 우리들은 너무나도 쉽게 특별하고 화려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너무나 쉽게 들을 수 있게 되었고, 동시에 우리들은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호화로운 삶과 우리들의 삶을 너무나도 쉽게 “비교” 할 수 있게 되었다. 

 

 

 

 책과 영화 속에서의 요하네스 베르메르

 

 반쯤 돌아서서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지만 망설이고 있는 듯한 표정. 살짝 벌린 입술. 소녀가 쓴 터번의 색깔과 귀에 걸려있는 반짝이는 진주 귀고리.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작품에서는 뭐라고 명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애뜻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나보다도 더 이 그림에 매료되었었을 "트레이시 슈발리에" 는 이 그림에 영감을 받아 <진주 귀고리 소녀> 라는 소설을 만들었고, 이를 원작으로 하여 "피터 웨버” 감독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라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책과 영화 모두 베르메르와 그림 속 소녀와의 애뜻한 감정을 감각적이고 섹슈얼하면서 위태롭게 잘 그려냈다. 뿐만 아니라 베르메르가 자신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그림을 빨리 그려야만 했고,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는 후원자들에게 요청받는 그림을 그려야 했던 불행한 삶도 보여준다. 거기에 더해서 베르메르는 그러한 자신의 삶을 버리지 못하고 결국 소녀와도 함께하지 못한 다소 소극적인 화가라고 그려진다. (이러한 미완의 사랑은 이 책과 영화의 이야기에 더욱 더 신비한 느낌을 더한다.) 하지만 실은 그 두 작품으로도 베르메르가 실제로 어떤 화가였는지를 알기에는 어려웠을 것이다. 

 

 

 

 실제로 베르메르는 평범한 삶을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본 위대한 작가였다. 

 

 베르메르 이전의 문학작품과 회화작품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담는 것보다는의 권력에 대한 예찬이나, 귀족들의 호화로운 생활이나 혹은 종교의 위대한 가치처럼 위대하고 특별한 것들을 담았었다. 하지만 이 <우유를 따르는 여인> 작품은 그 시대의 화풍과는 거리가 멀지만, 맑고 부드러운 빛과 색의 조화 속에 일상의 조용한 정취를 섬세하고 치밀한 묘사와 완벽한 구성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이 작품에서 보여지는 평범한 일상에 대한 느낌은 조용하고 숭고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베르메르가 일상이라는 것 자체를 누구보다 따뜻하고 아름답고 섬세하게 바라봤다는 것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덧붙이자면 이 여인의 치마에 쓰인 색은 청금석으로 만든 울트라 마린이라는 색으로 매우 값비싼 안료였다. 베르메르는 이렇듯 자연스러운 빛과 아름다운 색들로 한 여인의 일상을 아름답게 담아내었다. 

 

 

 

 

 

이스를 뜨는 여인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머물러있고, 집중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조용히 숨죽이고 바라보게 한다. 단순하다고 할 수 있는 레이스를 뜨는 일을 하는 여인을 묘사하였지만 그가 이 회화에 담은 빛과 안료들의 색깔들과 분위기에서 차분하고 아름답고 조용한 어느 낮을 느낄 수 있다. 이렇듯 <레이스를 뜨는 여인>에서도 어느 여인의 일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베르메르를 느낄 수 있다. <진주 귀고리 소녀>의 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 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베르메르 집의 하녀로 설정한다. 실제로 그 작품의 소녀가 누구인지는 알려진 바 없다. 하지만 작가도 베르메르가 평범한 삶들의 아름다움을 포착할 수 있는 작가였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 주인공을 하녀로 설정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녀였던 그 소녀가 보여준 순수한 노동의 모습과 베르메르는 아름다움을 느꼈을 테니 말이다. 

 

 

 

평범한 삶의 의미 

 

평범한 일상과 삶은 그 가치를 작게 생각하기에 쉽다. 하지만 그 하루들이 모이면 어떠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기틀이 된다. 평범한 하루하루가 모여서 우리들은 가치있는 것들을 축적할 수 있으며, 그렇기에 그 하루하루는 하나같이 모두 숭고하다. 무엇인가 대단한 것을 목표에 두지 않더라도 어쩌면 대부분의 것들은 평범한 하루들이 모여서 실현된다. 누군가와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 반복되는 지루한 일을 해내는 것, 재미가 없지만 책임을 지고 기꺼이하는 것, 근면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는 것 등.. 별거 아니라고 치부해버릴수 있는 일들은 실은 쉽게 해낼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베르메르의 그림은 그러한 평범한 일상의 가치를 전달해주며 알 권리를 보장받았지만 동시에 비교의 포화 속에서 제대로 된 가치를 구분할 수 없게된 우리들에게 많은 메세지를 준다.

 

  우리는 특별한 인생을 존경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가치를 절하하고자 하는 위협들로 가득하다. 우리의 인터넷이라는 편리한 통신망을 가지게 되었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삶의 의미가 변화하지는 않았다. 매일 특별한 날들일 수 없고 늘 좋은 일들만 일어나는 인생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특별한 순간들과 장점들로 가득한 인생들을 쉽게 접하고 우리의 삶과 비교한다. 르네상스 시대에 종교에 대한 경외로움이 표현된 작품들과, 왕과 귀족들의 호화로운 삶을 보여준 여러 작품들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않다. 하지만 베르메르는 우리가 종종 무시하는 것들은 평범하면서도 동시에 멋지다고 조용하게 그리고 혁명적으로 전했다. 평범하다는 것과 보잘 것 없다는 단어는 같은 말이 아니다. 오히려 해내기가 어렵고 숭고한 것이 우리들의 일상일 것이다. 베르메르의 메세지는 400년이 지난 오늘도 유효하다. 우리는 스스로가 우리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 그의 메세지를 되뇌어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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