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Why Fish Don't Exist>
저자 : 룰루 밀러 / 번역 : 정지인
출판 : 곰출판 / 발행 : 2021.12.17
이 책의 존재를 알았던 것은 작년 4월에 한국에 갔을 때였다. 서점에서 이 책을 보고, 책 표지에 마음을 잠시 뺏겼었다. 하지만, 당시 고대하던 <본즈 앤 올>을 사려고 갔던 것이었이기도 했고, 원래 같았으면 여러 책을 샀을 테지만, 비행기를 곧 타야 하는 상황에서는, 당시 이 책의 두께마저도 큰 짐으로 다가왔어서 결국에는 구매하지 못했었다.
<본즈 앤 올> 먹으면 안 되는 것을 먹는 소녀 이야기. 티모시 샬라메 주연 영화 개봉 예정. <Bones and all> (tistory.com)
이후 이 책을 지나친지 꽤 한참이 지났고, 내 기억에서도 꽤나 멀어졌었다.
그러던 와중. 우연히 유튜브에서 이동진 평론가가 이 책에 대한 리뷰를 한 것을 보고 (단지 썸네일만 봤을 뿐이었다.) , 약 1년 전에 이 책을 놓친 것에 대한 실수(?)를 만회라도 하려는 듯이 바로 ebook으로 구매를 하였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리뷰를 쓰려는 지금까지도 아직 이동진 평론가님의 리뷰는 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혹시나 평론가님의 코멘트와 감상들이 마치 내 감상인 것 마냥 섞일까 봐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선 나만의 감상을 적고, 그다음에 이 영상을 보고자 한다. 어쩌다보니 빨리 이동진 평론가님의 리뷰를 보고 싶어서, 빨리 내 블로그의 리뷰를 써야 하는 상황에 처해버렸는데, 이렇게 내 자신을 나름대로 쫓기는 환경에 처하게 하는 것도 일종이 자극이 되어주니 좋은 듯하다.
혹시나, 환상적인 표지 삽화에 잠시 소설이 아닐까 착각할 수도 있다. (나처럼 말이다.)
하지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기이자 회고록이자 과학적 모험담을 담은 '논픽션'임을 미리 밝혀둔다.
https://youtu.be/kq4-7aGoUno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네이버 도서 (naver.com)
혼돈에 반격하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분류학자였다. 그의 전문 분야는 어류. 그는 새로운 종들에 이름을 붙인다. 지구의 혼돈과 싸우며, 질서를 부여했다. 그는 수년, 수십 년에 걸쳐 일했고, 자신이 발견한 어류 표본들을 높이 쌓아갔다. 하지만, 1906년 어느 봄날 아침, 예기치도 않게 닥친 지진으로 그가 수집한 표본들이 바닥으로 내농댕이 쳐졌다. 그렇게 그가 이름과 질서를 부여한 그 물고기들이 모두 미지의 존재들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았다. 그는 바늘에 실을 꿰어, 그 잔해에서 정체를 알아볼 수 있는 물고기들을 찾아 이름표를 다시 찾아 붙이기 시작했다. 그에겐 다음번 혼돈의 공격에는 더 이상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도전적인 소망이 있었다.
지진이 전하는 명백한 메시지, 즉 혼돈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서 질서를 세우려는 모든 시도는 결국 실패할 운명이라는 메시지에 그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한편 저자는 불행한 가정환경에서 방황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후 자신의 삶이 끝났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혼돈과 시련에 자신이 무너져 내리던 그때 때마침 저자는 혼돈에 맞서 싸우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알게 되고, 그의 모습에 매혹되어 그의 삶을 추적해 나가기 시작한다. 그의 발자국을 따라가 보면 자기 자신도 언젠가 희미한 빛을 발하는 삶으로 되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말이다.
<종의 기원>과 자기 기만이 만나면
다윈의 <종의 기원> 은 지금에야 많은 사람들에게 반박할 수 없는 과학적 정설로 알려져 있지만, 처음 <종의 기원>이 세상에 나왔을 때,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성경의 내용과 반대되는 내용들로 가득하여, 당시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종의 기원>은 분류학자에게도 심란함을 끼쳤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타격이 컸던 것은 아무래도 종들이 그 본성상 변경할 수 없이 확고한 범주가 아니라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자. 내가 분류학자인데,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연구하는 대상이 무작위성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떨까.
분류학자였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 또한 고민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다윈과 의견을 달리하기로 한다.
데이비드는 자기 자신이 어떤 논리로도 자신이 설득되지 않게끔,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생각을 끝까지 관철시키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낙천성의 방패'로 무장했다. 즉, 견고한 자기 확신으로 자신을 방어한 것이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겸손하려는 노력보다 남들의 말을 무시하고, 자신에게 해가 되는 정보를 삭제하고 편집했고, 자기가 원하는 것들만 받아들였다. 자기기만의 껍데기에 자신을 숨긴 것이었다.
영화 <찰스 다윈 : 종의 기원>. 자연선택설에 따른 종의 기원. 폴 베타니. 제니퍼 코넬리. 베네딕트 컴버배치. 줄거리. 결말. 감상 (tistory.com)
점점 더 드러나는 어두운 면들
데이비드는 정신적, 육체적 장애를 지닌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도시인, 이탈리아 알프스의 아오스타라는 마을에 몇 차례 다녀온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도와주며 존엄을 누리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것에 반해, 데이비드는 그곳에서 '퇴화하고 있는 새로운 인간의 종'의 모습을 보았다고 이야기한다.
알고 보니 데이비드는 1993년 찰스 다윈의 고종사촌인 프랜시스 골턴이 만든 '우생학'을 열렬하게 옹호했던 지지자였다. 그는 우생학의 영향을 받아, 장기적으로 한 생물에게 도움을 주면 그 결과가 신체적으로나 인지적으로나 쇠퇴하게 된다고 믿었는데, 그러기에 아오스타에서 벌어지는 자선과 호의가 부적합자의 생존을 초래하므로, 이 '백치들'을 몰살하는 것이 전 세계에서 인류의 쇠퇴를 예방할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게 '우생학'이라는 단어는 데이비드의 도움에 힘입어 원래는 미국에서 인기가 없는 단어였음에도, 널리 보급되게 된다.
데이비드는 부적합자들을 박멸을 하려는 방법으로, 그들의 생식기를 그냥 잘라내는, 즉 불임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제안을 한다. 끔찍한 것은 실제로 데이비드의 영향으로 이후 미국 전역의 뒷골목에서는 불임화 수술이 은밀히 행해지고, 때로는 처형까지 자행되었다고 한다. 저자 룰루밀러는 자라오면서 받은 전체 교육 과정가운데에서 자신의 나라인 미국이 우생학 운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을 전혀 배우지 못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어한다.
다양함과 공생하기
다윈은 분명하게 '동질성의 위험함'을 설파했다. 그는 한 종에서 돌연변이와 특이한 존재들을 모두 제거하는 것은 그 종이 자연의 힘에 취약하게 노출되도록 만들어 위험을 초래하기에, 다윈은 <종의 기원>의 거의 모든 장에서 "변이"의 힘을 칭송했다. 하지만, 데이비드와 프랜시스 골턴과 같은 우생학자들은 이러한 다윈의 주장을 무시하고, '다양성'을 말살시키려 했다. 상황에 따라 잡초가 되기도 하고, 약초가 되기도 하는 민들레에서만이라도 볼 수 있는, 단순한 상대성 원칙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저자 룰루 밀러는 깨닫는다. 자신이 모델로 삼으려 했던 자가 악당이었다는 것을.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자기가 원하는 것은 다 옳은 것이라고 자기 자신을 설득시키고, 자신의 뜻과 반대되는 것들을 무참히 짓밟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말이다. 그가 저질렀던 끔찍한 만행들에도 성공한 인생을 산 인물로 역사의 한 이름을 남겼다는 자체에서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해보게 한다. 심지어 한 부인의 사망에 관련해서, 여러 정황들이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매우 큰 확률로 그 사망 배후에 얽혀있을 것임을 알려주었지만, 그의 명성, 권력은 그를 보호했다.
어떻게 우리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저자는 이야기한다. 우리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의 중요성을. 데이비드처럼 자신이 대단한 존재라도 되는마냥, 자신의 존재를 과대 해석하는 순간, 자신의 우월성에 대한 터무니없는 믿음으로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명민하고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호흡, 모든 걸음마다 우리의 사소함을 인정해야 한다."
인간. 그 이기적인 존재.
저자는 데이비드를 통해서 무엇을 지나치게 확신하는 것에 커다란 맹점이 있음을 깨닫고, 이어서 '어류'라고 우리가 통칭하는 것은, 물고기처럼 보이는 것을 한 집단에 몰아넣겠다는 고집을 가지고, 그들의 미묘한 차이들을 무시하고, 지능을 깎아내리기 행위이기에 실은 경멸적인 것임을 강조한다.
이 세계에는 우리가 이름을 붙여주지 않아도 실재인 것들이 존재한다. 이름이 있는 없든 그것들은 실재한다. 하지만 저자는 지적한다 우리 인간은 물고기처럼 보이는 것을 손쉬운 방법으로 범주화시키고, 우리에게서 멀리 떼어놓음으로, 인간이 우월한 존재임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단어들을 늘 신중하게 다루는 것을 제안한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 다면 우리는 또 무엇을 잘못 알고 있을까? (줄임) 내가 물고기를 포기할 때 나는 과학 자체에도 오류가 있음을 깨닫는다. 과학은 늘 내가 생각해 왔던 것처럼 진실을 비춰주는 횃불이 아니라, 도중에 파괴도 많이 일으킬 수 있는 무딘 도구라는 것을 깨닫는다."
(+) 다음 백과에 올라와 있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설명.
조든 - Daum 백과
가히, 삶의 질서를 담고 있는 책.
나는 이 책에서 다윈의 <종의 기원>을 만나게 될지, 프랜시스 골턴의 '우생학'을 만나게 될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그동안 인간이 인간의 한계를 규정했을지도 모른다는 시각을 안겨준 영화 <루시>, 언어가 인간의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는 영화 <컨택트> , 그리고 다윈이 자연선택설을 세상에 내놓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뇌가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던 영화 <종의 기원>에서 느꼈던 것들이 종합적으로 정리된 책이라고 느꼈다. 이 책을 알게 된 것이 얼마나 반갑던지.
하지만, 이 책이 다른 작품들과 구분되어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나 스스로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획일화하려는 시도와 사고들을 늘 경계해야 한다는 것은 의식적으로 되뇌고 있었지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통해서 그동안 내가 '인간의 입장'에서만 좁게 사고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점이다.
나는 늘 인간 중심적으로 사고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인간만을 바라보던 나의 시야를 확장시킬 수 있었고, 이제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과의 연계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영화 <컨택트> 다른 나라의 언어를 공부하며 .드니 빌뇌브 감독, 에이미 아담스 주연 <Arrival>,2017 (tistory.com)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말. 나는 예전에 이 말에 대한 회의가 있었다. 인간은 그래도 실수를 통해서 배우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변화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구나라는 것에 대해서 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에도 멈추지 않고 있는 전쟁을 보더라도 참담하기 그지없다. 자신의 신념에 항복하지 않으려는 어느 누군가의 그릇된 판단으로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지 않은가. 다만, 이 책을 통해서 나의 예전 사고 안에는 내가 인간의 존재를 너무나 대단하다고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이에 반성이 뒤따라 오게 됐다.
이 책을 읽고 조금 더 다르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어 고맙다. 영어 제목을 그대로 해석하면, 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을까? 일 것이다. 그 이유를 알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가 만들었던 범주 밖에 훨씬 더 놀랍고 경이로운 세상을 마주하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 이 순간 앞으로 만나게 될 세상에 대한 설레는 마음이 가득하다. 마지막으로, 이동진 평론가님 덕분에 스쳐 지나갈 뻔했던 이 책을 읽을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이다. 나의 리뷰가 어느 누군가에게도 좋은 작품을 접하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루시> 스칼렛 요한슨, 모건 프리먼, 최민식 주연 영화. 인간의 한계는 누가 정하는가 <Lucy> 2014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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