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양>
저자 : 다자이 오사무 / 번역 : 유숙자
출판 : 민음사 / 발행 : 2018.09.21
오구리 슌 주연의 영화 <인간 실격>을 리뷰한 지 벌써 1년이 조금 넘었으니,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을 읽고 싶다는 나의 바람 또한 약 1년 만에 이루게 된 것일 테다.
일전의 포스팅에서도 언급을 하였듯, 영화 <인간 실격>에서 다자이 오사무가 당시 애인이었던 오타 시즈코와의 사랑을 통해 소설 <사양>을 집필하여 출간하는 것이 그려지는데, 이를 통해 소설 <사양>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으며, 그 배경이 꽤나 흥미롭기 때문에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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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안보신 분들을 위해서 짧게 이야기하자면, 영화 <인간 실격>은 다자이 오사무가 쓴 소설 <인간 실격>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영화가 아니라,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실제 생애에 관해서 그린 영화이다. (그러므로 영화에서는 소설 <인간 실격>의 그 유명한 '요조'가 등장하지 않는다.) 다자이 오사무와 그의 아내, 그리고 다른 두 명의 여자들 사이의 이야기가 그려지며, 그 안에서 오사무는 <사양>, <인간 실격>을 집필하여 탈고한다.
영화 <인간 실격>은 <사쿠란>,2007 의 니니가와 미카 감독이 소설을 바탕으로 7년 동안 구상한 영화이며, 무엇보다 색채가 그림처럼 아름다운 영화이다. <사쿠란>의 화려하면서 감각적인 색채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인간 실격>은 나름의 취향 저격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감히 기대한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하신 분들을 위해서 아래 포스팅 링크를 덧붙인다.
<인간 실격> 오구리 슌 , 사와지 에리카 주연 영화. <인간실격>의 탄생 실화. 다자이 오사무, 줄거리, 결말, 감상. (tistory.com)
<인간 실격> 오구리 슌 , 사와지 에리카 주연 영화. <인간실격> 의 탄생 실화. 다자이 오사무, 줄
, 2019 -감독: 니나가와 미카 -주연 : 오구리 슌 (다자이 오사무 역), 미야자와 리에 (츠시마 미치코 역) 사와지리 에리카 (오타 시즈코 역), 니카이도 후미 (야마자키 토미에 역) -등급: 15세 관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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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은 기우는 해'라는 뜻으로, 전쟁에서 패한 일본 사회의 혼란한 현실을 배경으로, 한 귀족계급이 몰락하면서 마주한 비극을 그리고자 했다. 하지만 그 비극 안에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려는 여인 가즈코가 그려지는데, 자살을 선택한 다자이 오사무와, 그리고 그의 소설 <인간 실격> 속에서의 패배주의적인 '요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라 인상 깊었다.
1947년 11월. 다자이 오사무와 오타 시즈코 사이에서는 딸 하루코가 태어난다. 오사무는 시즈코의 일기장을 빌려, 그녀의 에피소드를 부분적으로 소설에 반영했고, 그해 12월에 <사양>을 간행시키게 된다. 이후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사양족'이라는 단어를 유행시키며 인기 작가가 된다.
줄거리
패전 후 빠르게 몰락해 가는 귀족 집안의 장녀 가즈코는 몸이 쇠약해진 어머니를 모시고 도쿄를 떠나 이즈의 산장으로 거처를 옮긴다. 귀족의 기품을 갖춘 아름다운 어머니지만 경제력에는 무방비 상태로, 삼촌의 도움을 받는 처지라 달리 방도가 없다.
마침 소식이 끊겼던 남동생 나오지도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오지만 급변하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설가 우에하라와 함께 어울리며 술과 마약에 빠져 넉넉하지 못한 집안의 돈을 탕진할 뿐이다. 가즈코는 우에하라를 사모하고 있었는데, 도쿄에 있는 그에게 서신을 보내 마음을 적극적으로 고백한다.
제가 처음 당신을 만난 지 어느덧 6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그 때 저는 당신이라는 사람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었습니다. 그저 남동생의 선생님, 더구나 다소 탐탁잖은 선생님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줄임)
그러다가 동생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당신의 저서를 동생한테서 빌려 읽고, 재미있는 듯 재미 없기도 해서 그다지 열렬한 독자는 아니었지만 6년 새, 언제부턴가 당신이 안개처럼 가슴에 스며들었습니다. (줄임)
저는 소설가를 동경하지 않습니다. 문학소녀쯤으로 생각하신다면 저도 당황스럽습니다.
저는 당신의 아기를 갖고 싶습니다. (P86-87)

몸이 계속 약해지던 가즈코의 어머니는 결국 세상을 떠나지만, 가즈코는 이후 삶에 대한 욕구를 더 강하게 느낀다. 그런 그녀의 의지는 우에하라에 대한 사랑 또한 강렬한 사랑으로 표출된다. 우에하라한테 답장이 오지 않지만, 그녀는 끊임없이 서신을 보내고, 그를 만나기 위해 도쿄로 찾아가기에 이른다.
하지만 나는 살아가야 한다. 아직 어린애인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응석만 부리고 있을 수는 없다. 나는 이제부터 세상과 싸워 나가야만 한다. (줄임)
천박해 보인들 상관없어. 나는 살아남아 마음먹은 일을 이루기 위해 세상과 싸워 나가련다.
결국 어머니가 돌아가신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나의 로맨티시즘과 감상 따위는 점차 사라지고 어쩐지 나 자신이 방심할 수 없는 교활한 생물로 변해가는 기분이었다. (P118-119)
전투, 개시
언제까지나 슬픔에 잠겨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에게는 무슨 일이 있어도 쟁취해야 하는 것이 있었다. 새로운 윤리. 아니, 이렇게 말하는 건 위선이다. 사랑. 그뿐이다. (P123)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 태어난 거야, 신이 벌하실 리가 없어. 난 털끝만큼도 잘못한 게 없어. 진짜 좋아하니까 대놓고 당당하게, 그 사람을 한 번 만날 때까지 이틀밤이건 사흘 밤이건 들판에서 지새우더라도, 기필코. (P128)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동생 나오지는 기다렸다는 듯, 귀족으로 태어났지만, 귀족들 사이에서의 자신의 정체성의 혼란과, 사회의 부조리함, 역겨운 위선, 거짓등에 견딜 수 없어하다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어머니에 이어 동생까지 먼저 보낸 가즈코. 동시에 가즈코는 사랑하는 우에하라 사이에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다. 아이를 맞이하며, 그녀는 우에하라에게 편지를 보낸다. 가즈코는 아기는 자신이 주체적으로 선택하였으며, 이 자체가 낡은 사회에 대한 '투쟁의 방식'이라는 점이라는 점을 이야기하며, 삶에 대한 의지를 결연하게 내비친다.
전 이겼다고 생각합니다. 마리아가 비록 남편의 아이가 아닌 아이를 낳는다 해도 마리아에게 빛나는 긍지가 있다면, 바로 성모자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낡은 도덕을 태연히 무시하고 좋은 아이를 얻었다는 만족이 있습니다. (줄임)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저의 도덕 혁명의 완성입니다. (줄임)
제 가슴에 혁명의 무지개를 걸어주신 건 당신입니다. 살아갈 목표를 주신 건 당신입니다.

소설 <사양>에서의 가즈코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갖고 싶었다는 점에서, 영화 속의 오타 시즈코를 닮아있었다. 다만 오타 시즈코는 정말로 다자이 오사무를 사랑하기에, 그의 아이를 갖고 싶었지만, 소설 <사양> 속의 가즈코는 사랑도 사랑이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의식하지 않은 채, 귀족도 평민이 아닌 오로지 '가즈코' 자신으로 살아가려고, 오로지 자신의 의지로 아이를 낳아서 키우며 삶을 개척해 나가겠다는 결심을 표명하는 수단으로 아이를 갖기를 선택했다는 점 차이가 느껴졌으며, 그런면에서, 소설 <사양> 속의 가즈코가 더욱 실존적인 모습을 띄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처한 비극적인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이를 박차고 나와, 자신의 인생을 독립적이고 주도적으로 살아가려하는 강인한 여자의 모습이 내 마음에 파장을 일으켰지만, 아직 나의 경험이 넓지 않아서인지. 가즈코라는 캐릭터가 좀 독특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생명을 잉태하려고 하는 의지. 아이를 혼자서 키우는 것도 두렵지 않은 담대함. 그것이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싶었다. 그녀의 의지에 찬사를 보내거나, 경이롭다고 표현하기는 아직 내 마음이 충분하게 동요하지 않는 듯하다. 일반적으로 남녀 둘 사이에서 미래에 대한 계획에 따라 아이를 가지고, 함께 보살피며 키우는 것. 그러면서 아이에 대한 책임감이 생기고, 그러기에 아이를 위해서 힘들어도 경제적인 활동에서 일어나는 스트레스들을 감내하며 강해지는 모습이 보통이지 않은가. 안타깝게도 아무래도 나는 가즈코가 말한 '낡은 도덕'의 일부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 보았다.
실은 작가 다자이 오사무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물론 우선적으로 간결한 문체, 그리고 잘 읽힌다는 점에서, 소설을 읽는 한 독자로써 그의 '소설 자체'를 좋아하나, (물론 내가 원작을 읽는 것은 아니고, 번역본을 읽는다는 점을 어느정도 감안을 해야겠지만) 그가 결국에 스스로 목숨을 끊음을 택했다는 것에 대해, 아직은 어쨌거나 인생은 '살아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믿는 나로서는 마음 놓고 좋아할 수 없는 벽에 늘 부딪치고 말기 때문이다.
<사양>을 쓰고 1년 후 <인간 실격>을 집필한 다자이 오사무는 끝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인간 실격>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사양>에서 느껴지는 생명감은 감히 오사무가 결국 자살을 택했다는 것에 의아함을 느끼게 한다. 우에하라는 가즈코에게, 그리고 다자이 오사무는 오타 시즈코에게 소망과 바람을 이룰 수 있게하는 한 ‘수단’임에 불과한 것이었으려나. 아니면, 여자들의 수단으로써의 본인 자신.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느꼈을 수도.. 그렇게 그 이상의 바랄 것이 없던 그가 결국 미련없이 세상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찾아보니, 일본에서 방영된 드라마 <사양>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척이나 보고싶다.
볼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다면, 영화 <인간 실격>이라도 한 번 더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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