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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리고 영화 <이수>. Goodbye Again

by evelyn_ 2023. 1. 29.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 저/김남주 역
민음사 / 2008년 05월 02일
원서 : Aimez-vous Brahms...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처음 알게 되었던 날


몇 주 전, 20대 초반에 샐러드 가게에서 일하면서, 당시 가게 사장님을 통해 '한나 아렌트'를 알게 된 계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번에도 또 아르바이트와 관련된 일화를 소개해야겠다.

영화 <한나 아렌트>. 나의 사고의 지평을 넓혀준 철학자 한나 아렌트. "악의 평범성" Hannah Arendt (tistory.com)

 

영화 <한나 아렌트>. 나의 사고의 지평을 넓혀준 철학자 한나 아렌트. "악의 평범성" Hannah Arendt

, , 2012 -감독 : 마가레테 폰 트로타 -주연 : 바바라 수코바 (한나 아렌트 역) -출연 : 자넷 맥티어 (메리 맥카시 역), 줄리아 옌체 (로테 쾨흘러 역), 니콜라스 우데스 (윌리엄 숀 역), 악셀 밀베르크 (

with-evelyn.tistory.com


대학시절. 홍대와 신촌 사이에 한 카페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
북카페라고 불리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책이 참 많은 곳이었다.
실제 책장의 책들을 유심히 살펴보거나, 그 중 보고 싶은 책을 꺼내 읽는 손님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 많은 책들은 카페 운영을 위해서 사장님께서 따로 구입하신 것이 아니고, 사장님이 원래부터 직접 소유하고 계시던 책들이었다. 책들, 그리고 책들이 가득 찬 책장은 그 카페를 상징하는 아름답고 독특한 인테리어이기도 했다.



나는 주로 오후에 출근해서 마감 타임을 담당하였다.

그날도 여느날 처럼 홀에 손님들이 아직 있었지만, 마감시간이 다가왔으므로, 커피 기계를 세척하고, 설거지를 하는 등 가게문을 닫을 준비를 서서히 하고 있었던 차였다.

그러던 중, 한 여자 손님이 사장님께 조심스럽게 다가와 책 한권을 빌려 갈 수 있겠냐고 물었다.
'카페에서 책의 앞부분을 조금을 읽었는데, 너무 재밌다. 계속 읽고싶은데, 곧 카페 마감시간이라 아쉽다. 혹시 집에 가서 이어서 읽어도 되겠느냐'라는 것이었다. 본인은 카페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살고 있음을 강조하고, 잊지 않고 꼭 돌려주겠다고도 덧붙였다.

당시 사장님은 손님의 부탁을 끝내 거절하셨다.

물론 빌려주는 거가 뭐가 어려웠겠냐만은, 아무래도 한명의 손님일 뿐이더라도 예외를 만들고 싶지 않으셨던 것 같다.

책을 불출하지 않는 것. 그것이 카페를 운영하시면서의 본인 나름의 철칙이셨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실제 많은 책들이 도난되기도 했다. 카페에서 읽는 척하면서, 실수던지 의도했던지, 그대로 집에 가져가 버리는 것 같았다. 이에 많이 속상해하시기도 했다.) 나는 사장님의 결정을 이해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 분이 그렇게 사장님께 부탁을 하면서까지 빌려가서 읽고 싶었던 책은 무엇일까가 무척 궁금했다.
그 책이 바로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였고, 그렇게 나는 이 책의 존재를 알게되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네이버 도서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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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부터 끌림을 강하게 느꼈던 나는 직접 이 책을 서점에서 구입하기에 이른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경험 또한 말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원래 거의 모든 책의 서두부분이, 읽는 사람의 인내심을 테스트하듯 한다고 느끼는 것에 반해 (그 인내심 테스트가 짧거나 길거나가 다를 뿐), 이 책은 그런 인내심도 전혀 요구하지 않는 듯했다.

그렇게 단숨에 읽어버리고 나자, 만약 내가 그 카페 손님이었다면, 나 또한 용기를 내어 혹시 하루만 이 책을 빌려주실 수 없겠냐라고 물어봤을 것 같았다. '우연하게' 카페에서 이 책을 열어보았지만, 끝까지 읽을 수 없던.. 끝끝내 대여부탁을 거절당한 그 손님이 내가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이던지 싶은 심정마저 들었다. 

구매한 날짜를 알고싶어 스탬프를 보니 2011년이다. 이 책을 만난지도 10년이 넘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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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0년 후,
영화 <이수>를 만나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원작으로 한 영화가 있다는 것을 최근에 알고 내가 참 무관심했던 것 같아 놀랐다. 영화는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이수>였으며, 1961년에 개봉한 작품이었다. 이 영화의 존재를 알게 됐을 때, 나는 마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처음 읽었을 때처럼 설레었다.



<이수> <Goodbye Again>, 1961
-감독 : 아나톨레 리트바크
-주연 : 잉그리드 버그만 (폴라 역), 이브 몽땅 (로제 역), 안소니 퍼킨스(필립 역)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 120분


영화는 꽤나 충실하게 원작 소설의 스토리를 따라간다.
다만 그렇더라도 나는 누군가가 <이수>를 볼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을까를 고민하고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으세요" 말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소설이 원작이 되어 영화화된 작품을 시청하고 나면, 꽤나 만족스러웠어서 영화와 책 둘 다 애정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안타깝게도 <이수>는 나에게 또 하나의 영화화된 좋은 작품으로써는 포함되지 못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출처 : 다음 영화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는 미묘한 남녀 사이의 감정이 세밀하게 표현된 것에 대해서 큰 감명을 받았었는데,
영화를 보고나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프랑수와즈 사강이 썼기 때문에 재미있는 소설이었지, 다른 작가가 썼으면 같은 시나리오더라도 재미가 없었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말하면, 너무 잔인할까. 

영화 <이수>에서는 사강이 세심하게 선택했을 단어들이 그 자취를 감취었고, 소설 속에서 느껴지던 특유의 느긋한 분위기도 없었다. 영화는 소설의 스토리를 따라가지만, 소설보다 더 빠른 템포로 진행된다고 느껴졌고, 결국 이것이 나를 사강의 원작 소설에 대한 그리움으로까지 번지게 만들었다.

근데 영화와 소설의 표현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소설을 읽는 내내 "아 나도 저런 느낌을 느껴본 적이 있었는데, 말로 표현을 못했었네"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는 다름 아니라, 프랑수와즈 사강이 남녀 사이의 감정을 너무나 직설적이면서도, 그러면서도 우아하게, 참신하면서도 허를 찌르듯이 묘사했기 때문인데, 영화에서는 관람자가 그세사람의 감정을 어느정도 화면을 통해서 예상하고 읽어내리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므로, 동시에 이것은 영화가 소설만큼의 디테일을 담을 수가 없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영화 상에서 폴라의 대사를 통해 (민음사 번역본에서는 '폴'로 소개된다.) 브람스의 음악은 프랑스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어서, 브람스 연주회에 초대할 때 '브람스를 좋아하냐'고 묻는 것이 필수가 되었다는 것이 간단히 설명된다.

하지만 소설이 끝난 후 이어지는 '작품 해설' 파트를 읽고서, 브람스와 클라라 슈만의 관계에 대해서 까지 알게 된다면, 더욱 이 소설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다.

 

또한 독자는, 역시 열네 살이나 연상이었던 클라라 슈만을 평생 마음에 품었던 요하네스 브람스를 떠올리게 되는데, 대개의 프랑스인들이 브람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한 브람스 전기 작가의 말에 따르면, 프랑스 대중으로 하여금 브람스에게 흥미를 갖게 만드는 건 거의 절망적인 시도라고 한다. 그래서 프랑스에서 브람스의 연주회에 상대를 초대할 때는 이 질문이 필수라는 말도 있다.)을 떠올리면, 이 제목은 "모차르트를 좋아하세요"와는 다른 울림을 갖는다.

 

출처 : 다음 영화


결론적으로, 나는 영화 <이수>에서 꽤 실망을 했는데,
이 때문에 소설에 대한 애정은 더 깊어졌고, 사강에 대한 동경심 또한 더 커지게 되었다.

되돌아보면, 나는 사강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세상에 내놓았을 때의 나이쯤 (그녀 나이 스물 네살) 이 책을 접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나이에 어떻게 이렇게 미묘한 남녀 사이의 감정을 담아내는 소설을 만들었을까라는 것은 아직도 놀랍다. (물론, 김난주 번역가님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가 더욱 천재적이라고 느껴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앞으로 만나게 될 여러 책들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대체할 수 없는 존재로 내 곁에 있을 것이 분명하지 않을까.

사강은 두번에 걸친 결혼과 이혼, 알코올과 마약, 도박 중독 등으로 많은 사람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노년에 이르러 "지금 유일하게 안타까운 것은 읽고 싶은 책들을 다 읽을 시간이 없다는 것뿐"이라고 했다는 점에서, 그저 순수한 한 인간이라는 점을 느끼며, 나는 아무래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 대한 애정, 그리고 사강에 대한 애정을 더욱 멈출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출처 :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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