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저자 : 헤르만 헤세 / 번역 : 전영애
출판 : 민음사 / 발행 : 2009.01.20
되돌아보면 <데미안>을 읽으려고 몇 번이고 시도를 했었긴 했다. 아쉽게도 이 말은 '읽기 쉽지 않았다'라는 말과 동의어일 수도 있겠다. 실제 꽤 오래전에 휴대용으로 작은 사이즈로 출판된 <데미안>을 구입을 했었는데도 읽지를 못하고, (혹은 읽지 않고 있다가), 결국에 ebook으로 구입하여서 끝내 1회 완독을 하게 되었을 때는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랫동안 읽으려고 했던 작품을 읽고 나면 뿌듯해야할텐데, 그렇지는 않았다. 그 책이 무려 그 유명한 <데미안>였는데도 말이다.
<데미안>은 나에게 꽤 어려운 소설이었다. 읽었던 문장을 몇번이고 다시 읽어야 했다. 물론 내가 집중력과 이해력이 부족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인내심과 오기가 필요했던 것이 사실이다. 수많은 상징들에 과부하를 느끼며 그래도 어쨌든 끝까지 읽겠다는 심정으로 읽고 찝찝한 마음으로 덮어두었었다. 읽긴 읽었는데, 누군가에게 자신 있게 <데미안>을 읽었다고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어느 분이 영화 <블랙스완>에 대해 남긴 한 줄 영화 평에서 <데미안>에서 등장하였던 문장을 만나게 되었고, 약 1년 전 <데미안>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 읽었던 것이 복기가 되어, 결국 이 책을 다시 집어 들게 되었다.
물론 두번째 읽는 것임에도 속도를 내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의 모든 문장을 받아들이려고 하다기보다, 마음을 좀 더 가볍게 하고, 그 안에서 나를 멈춰 세우는 문장들에 관심을 기울이자라는 심정으로 읽어 내려갔다. 그런데 흥미로웠던 것은 첫 번째 읽었을 때와, 두 번째 읽었을 때의 감명 또한 달랐다는 점이다.
약 1년 전 <데미안>을 처음에 읽었을 때는, 따뜻한 가정에서 자란 주인공 싱클레어가, 동네 소년 프란츠 크로머의 꾀에 낚여 악의 세계를 깨우치고, 이후 갈팡질팡할 때, 신비하면서 어른스럽고 동시에 압도적인 존재감을 가진 데미안이 등장하여 싱클레어게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있게 용기를 주고, 이에 결국 싱클레어가 크로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이후 데미안은 밝은 세계에서는 숨기고 은폐해야하는 원시적 충동이 자기 자신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자신의 유년의 세계가 붕괴가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도 하며,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나는 것은 죄악이라고 이야기하는 데미안의 말에 자기 자신으로 완전히 기어들어가려고 한다. 마치 거북이처럼.
이러한 싱클레어의 성장 이야기 속에서, 나 또한 몇 살이었는지는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는 어느 시점, 현실 세계와 어른의 세계들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느꼈던 어색함, 허용되지 않은 것을 우연히 보았을 때 보지 못한 척 연기해야 하나 고민했던 날들, 궁금하면서도 동시에 알고 싶지 않기도 했던 복잡한 감정들이 떠오르는데, 이 부분은 분명 어느 독자에게도 묘한 공감을 일으키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두번째로 읽었을 때는, '진정한 연대'에 대한 부분이 의미 있게 다가왔다.
다음은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연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대사이다.
"진정한 연대는 개개인들이 서로를 앎으로써 새롭게 생성될 테고, 한동안 세계의 모습을 바꾸어 놓을 거야. 지금 연대라며 저기 저러고 있는 것은 다만 패거리 짓기일뿐이야. 사람들이 서로에게로 도피하고 있어. 서로가 두렵기 때문이야. (줄임) 그런데 그들은 왜 불안한 걸까?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 그들은 한번도 자신을 안 적이 없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
자신의 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찾고, 다른 사람에게서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충족시켜하는 몸짓. 서로가 서로에게로 도피하는 관계. 그리고 또 동시에 특정 인물간의 친분을 과시함으로 남을 소외시키는 분위기를 탄식해본 적이 많았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국에는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되새겨 보았고, 그렇게 헤르만 헤세가 이야기하는 '나를 위한 길을 걷는 것', '나의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고찰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두번째 읽은 <데미안>은 나에게 큰 물음표를 남겼는데, 그것은 '운명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과 '전쟁에 참전하는 것'을 서로 연관시킨 부분이다.
데미안은 곧 전쟁이 발발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면서, 그것은 낡은 한 세계의 와해이며, 오늘날의 이상이 얼마나 가치 없는지 밝힐 것이기 때문에 헛된 일은 아닐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종말의 시작이 또 다른 세계의 시작인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 그리고 그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본인의 능력을 발휘하고, 세상의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이야기하며,운명을 수용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데미안, 그리고 싱클레어는 자신에게 닥친 운명을 받아들인다. 그것이 참전이다.
"나는 넘치는 만족과 쾌적함 속에서 숨 쉬도록 태어난 사람이 아니었다. 고통과 쫓김이 필요했다. 언젠가 이 아름다운 사랑의 영상에서 깨어나 오로지 고독과 싸움뿐인, 평화나 공존이란 없는 타인들의 차가운 세계 속에서 홀로, 다시 온전히 홀로 서게 되리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줄임) 나는 어쩌면 다시 싸워 나가리라, 그리움으로 괴로우리라, 꿈을 꾸리라, 혼자이리라."
그리고 전쟁에 참전한 싱클레어는 그곳에서 스러져가는 사람들을 보며, 떠올린다.
"근원적인 느낌, 가장 거친 느낌들도 적에게 향해 있지 않았다. 그들의 유혈의 위업은 오로지 내면의, 그 자체 안에서 산산이 파열된 영혼의 발산이었다. 새로 태어날 수 있도록 광분하여 죽이고, 말살하고, 죽으려는 영혼의 발산이었다. 거대한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하고 있었다. 알은 세계였고 세계는 짓부숴 져야 했다."
하지만 나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이야기 되었듯, 전쟁이라는 것은, 인간이 만든 '허구'로 인한 것이며, (물론, 허구를 만들수 있는 것은 인간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다.) 실제 형상이 존재하지 않는 '허구'로 인해서 사람들이 죽음을 당하는 전쟁이라는 것은 백해무익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에, 전쟁의 상황에서 그 안에서 기존의 세계를 짓부수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려는 새를 보았다는 싱클레어의 말에서 거부감이 느껴졌다.
<데미안>. 두 번 읽으면 뭔가 속 시원할 줄 알았는데, 그 예상은 안타깝게도 빗나가버렸다.
(+) 그나저나 <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시리즈의 다음 편은 언제나오나- 목빠지게 기다리고있다.
[책 리뷰] <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Vol 1.인류의 탄생>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를 만화로 만나다 (tistory.com)
[책 리뷰] <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Vol 2.문명의 기둥>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를 만화로 만나다 (tistory.com)
<데미안>은 나에게는 두번을 읽었어도 속 시원하게 다가오지 않는 책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또한 권유되는 것은, 이 문장의 힘이 가장 크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 본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그리고 이 문장이 우리들의 마음을 울리는 이유는 우리들은 모두 투쟁하여, 현재의 위치에서 좀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더 의미 있는 세계로 자신을 이끌고 싶다는 희망과 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혹은 우리가 껍데기를 깨고 나오려고 분투하면서 방황하고 있다는 방증이며, 또한 그들에게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위로와 응원이 되어주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나는 다시 영화 <블랙스완>을 볼 차례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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