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리더들은 왜 직감을 단련하는가>
저자 : 야마구치 슈
출판 : 북클라우드
해외에서 거주하면서 아쉬운 점을 한 가지 꼽으라면, 한국 서적을 많이, 그리고 손쉽게 만날 수 없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예전에는 그래서 한국에 들르게 되면 무리해서 책을 한가득 사고 오곤 했는데, ebook을 읽다 버릇을 해보니 어느새 익숙해져서 이제는 오히려 종이책보다도 더 선호하게 되었다.
어딜 가나 쓸데없는 것들까지 '혹시 필요할지 모르니까' 심정으로 늘 보부상처럼 짐을 꾸려 다니는 나로서는, 조금이라도 물건의 무게를 줄이는 것이 좋기에, 무거운 책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점이 좋았고, 또한, 수권의 책을 한 번에 휴대할 수 있는 효용성도 있으며, '검색' 기능으로 그 책에 담겨있는 문장이나 정보를 좀 더 빠르게 찾을 수 있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책들이 ebook으로 출시되지는 않으니, 읽고 싶어도 읽지 못하는 상황이 존재한다. 그런 책들은 기다리는 마음으로 Yes24에서 'ebook 출간 알림 신청'을 걸어두곤 하는데, 정말 반갑게도 야마구치 슈의 <세계의 리더들은 왜 직감을 단련하는가>의 ebook 발간 알람을 받았다.
야마구치 슈는 철학과 예술에서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찾는 일본 최고의 전략 컨설턴트인데, 한동안 베스트셀러였던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에서 '약한 입장에 있는 사람이 강자에 품는 질투, 원한, 증오, 열등감 등이 뒤섞인 감정'인 '르상티망'이 참 인상 깊었고, 이를 반영하여서, 프랑스와 오종 감독의 영화 <스위밍 풀> 리뷰를 하였었다. <세계의 리더들은 왜 직감을 단련하는가>에서도 새롭고 시각들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며, 반갑고 설레는 마음으로 바로 구매를 하였다.
영화 <스위밍 풀> 내가 시기하는 것은 무엇인가. 프랑수와 오종 감독. 샬롯 램플링 주연. 미스테리 스릴러 영화 추천. Swimming Pool (tistory.com)
"논리적으로 흑백을 가릴 수 없는 문제의 해답을 도출해야 할 때,
최종적으로 의존할 수 있는 것은 개인의 미의식밖에 없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정보처리 스킬'은 특히 회사 생활에 있어 반드시 요청되는 필수 자질인 것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저자는 "비즈니스에서 논리와 이성은 타인과 '똑같은 정답'을 도출해 내는 문제를 낳는다고 이야기하며, 분명한 맹점이 있음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정보처리는 필연적으로 차별화를 소실시키며, 이는 전 세계 시장에서 '정답의 상품화' 현상을 만든다는 것이다. 규격화된 정답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뻔한 곳에 도달하게 하고, 기본적으로 차별화를 추구하는 경영의 의미를 퇴색시킨다.
우리는 어느 때보다 변동성이 크고, 불확실성과 복잡성, 모호성이 지배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데, 여기서 논리와 이성만을 고집하는 것은 사고의 경직을 일으키며, 문제해결력이나 창조력을 마비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렇기에 작가는 우리에게 이 시점에서 '직관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가치가 있음을 상기시킨다.
변화무쌍한 세상의 최전선에 서있는 경영인들은 아무런 과거의 예시나 좋은 본보기를 참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많다. 정량적인 데이터가 없는 상황, 수치화된 정보를 뽑아낼 수 없는 상황, 그리고 논리만으로는 흑백을 분명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문제에 맞서 적시, 적절하게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 그들은 '미의식'과 '감성'을 단련하고 있다. 미의식은 예술가의 관점에서 자신이 몸담고 있는 프로젝트를 작품으로 생각하는 것, 자신의 회사를 자신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포함한다. (물론, 논리와 직감 둘 다 고차원 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지, 직감만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즉, 논리. 분석. 이성에 발판을 둔 경영, 이른바 '과학 중시의 의사결정'으로는 요즘처럼 복잡하고 불안정한 세계에서 비즈니스를 리드할 수 없다. 우수한 의사결정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을뿐더러 오히려 초논리적인 것인지도 모르며, 이러한 초논리는 결국 '직관의 수준'이 만든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책에서는 '직감'을 의사결정의 방법으로 이용한 대표적인 경영자로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스티브 잡스'를 예시로 든다. 그가 켈리그래피를 배웠었다는 것이라던지, 제조 단가나 재고 시뮬레이션을 고려하지 않고, '보기에 좋은 것' '보기에 아름다운 것'을 추구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직감적, 감성적으로 의사를 결정했다. 직감을 통한 직관인 셈이겠다. 지적생산이나 의사결정을 할 때, 논리와 이성을 직감과 감성보다 높게 평가하는 세상에서 그는 많은 영감을 주었다.
* 직관 : 감각, 경험, 연상, 판단, 추리 따위의 사유 작용을 거치지 아니하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작용.
* 직감 : 사물이나 현상을 접하였을 때에 설명하거나 증명하지 아니하고 진상을 곧바로 느껴 앎. 또는 그런 감각.
아쉽게도, 예술이 참패할 수밖에 없는 현실
작가는 예술이 '어카운터빌리티'에서 참패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현재의 시대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이야기한다.
어카운터빌리티는 "왜 그렇게 했는가?" 하는 이유를 나중에 분명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과학, 기술 그리고 예술의 측면에서 왜 이러한 결정을 내리게 되었는가를 물어볼 때, 과학, 기술은 숫자화된 데이터, 정량적 분석 결과를 내세울 것이다. 하지만, 예술은 "아름다우니까"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모호함 때문에, 결국 예술, 과학, 기술을 나란히 늘어놓았을 때, 압도적으로 과학과 기술이 예술보다 설득력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회사생활만 돌아봐도, 여기에 크게 공감할 수 있다. 만약 상사가 왜 이렇게 결정했냐고 물었을 때, "아름다우니까요", "그렇게 직감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에요"라고 말한다면, 어떤 소리를 들을지 암 봐도 뻔하지 않은가.
하지만, 어카운터빌리티에는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맹점이 있는데, 이 책을 통틀어 내가 가장 마음에 새기고자 몇 번을 다시 읽은 문장이다.
어카운터빌리티는 절대적인 선처럼 여겨지지만, '리더십의 포기'라는 부정적인 문제를 잉태한다. 의사결정의 이유에 대해 정량적이고 합리적인 설명만 할 수 있으면, 그것이 결과적으로 잘못되었다고 해도 "그때는 그 판단이 합리적이었습니다"라는 변명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리더의 개인적인 미의식이나 감성은 발동할 수 없고, 나중에 책임을 져야 할 때 변명을 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기준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 이것은 리더십의 포기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어카운터빌리티라는 '책임 시스템'이 오히려 의사결정자가 '책임을 회피하는 방편'이 되는 모순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나도 실제로 이렇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음을 순순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있지 않으면 판단을 유보시켰고, 아니면 무리해서 나의 판단과 결정을 뒷받침할만한 근거들을 나중에 찾으려고 하기도 했다. 나는 이것이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이 동시에 '리더십의 포기' 로도 해석될 수 있다는 것에서 그 감명이 새롭게 그리고 무겁게 다가왔다.
이어서 어카운터빌리티는 '언어화할 수 있다'라는 말과 동일하며, 언어와 할 수 있다는 것은 모두 복제할 수 있다는 의미나 다름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복제할 수 있다는 것은 차별성을 잃는 것, 즉 경쟁력을 잃는 것이다. 어카운터빌리티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우리는 차별됨으로 나아갈 수 없다. 수치화된, 정량화된 정보에 의지하다 보면 우리는 남들이 생각할 만한 것들에서만 그치게 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지 못한다. 그에 반해 애플은 추상적인 이미지에 부여된 세계관과 스토리로 성공할 수 있었다.
궁극적으로 차별됨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계속해서 작가는 논리적, 이성적인 답을 추구하게 되면, 앞서 이야기했듯이 정답의 상품화 현상이 발생하고, 다만 그 도달한 자리에서 싸우려면 오직 속도와 비용을 무기로 직원들을 지치게 만들 수밖에 없는 점을 지적한다. 무모한 수치를 던지고 , 현장을 채찍질하는 경영을 계속한다. 하지만 결국에는 부정, 즉 법률 위반 사례들을 늘린다.
게다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답을 추구하는 것은 인공지능도 해낼 수 있는 점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Chat GPT의 기능에 대해서 놀라움 반 그리고 두려움 반을 가지고 있을 우리 세대들이 꼭 한 번 되새겨 봐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한다.
경영자나 리더가 이론대로 논리적이면서 이성적으로 경영을 한다면 그들이 하는 일은 과연 어떻게 될까?
경영에서 의사결정이 철두철미하고 논리적, 이성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경영 콘셉트와 비즈니스 케이스를 대량으로 기록한 인공지능에게 맡기면 된다. 틀림없이 냉철한 계산을 통해 합리적인 해답을 도출해 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의사결정에는 인간의 미의식이나 직감이 들어갈 여지는 없다. 그런 건조한 계산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경영에서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비전이나 창조성을 크게 꽃 피울 수 있는 이노베이션이 탄생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작가는 강조한다. 불확실성이 높은 의사 결정에 대해서는 논리와 정확도는 제쳐두고, 직감적이고 감성적인, 즉 '미의식'에 바탕을 두고, "근본적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 "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싶은가"라는 것을 생각해야 하는 부분 말이다.
논리적, 이성적인 판단은 획일화된 사고. 이는 시스템을 비판 없이 수용하는 태도와도 쉽게 연결된다. 여기서 우리는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다시금 고찰해 볼 수 있다. 의심하지 않고 시스템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 무차별하게 유대인들을 학살한 '악'이었듯이, 우리가 속해있는 곳의 시스템을 비판의 시각으로 바라보려면, 우리 나름의 미의식을 갖고, 그 미의식에 비춰 시스템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이 미의식을 확립시키는 데에는, 철학, 윤리, 예술이 도움을 줄 것이다.
독서를 멈출 수 없는 이유
나는 이 책을 통해 비록 현재 경영자의 신분은 아니지만,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 좀 더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는 길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분명 나의 일상생활에서, 그리고 사회생활에서 여기서 얻은 지혜를 적용할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책을 읽고 보니, 작년 말에 작가의 새로운 서적이 <비즈니스의 미래>가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계의 리더들은 왜 직감을 단련하는가> 책이 ebook으로 발간되기만을 기다렸을 뿐, 저자의 새로운 책에는 관심이 없었었나 보다 싶었다. 반갑게도 ebook까지 벌써 출시가 되어있다. 책의 간략한 설명을 읽어보았는데, 매우 흥미롭다. 이 작가의 책을 읽고 인사이트들을 담게 될 생각을 하니 설렌다. 요즘 좋은 책들을 많이 읽고 있어 행복할 따름이다. ebook으로 많은 책들이 출간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책을 놓을 수 없는 이유. 독서를 통해 얻는 것들이 많기에. 그 얻는 것들이 세상을 좀 더 의미 있게 살아가게 하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책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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