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한국인> 대한민국 사춘기 심리학
저자 : 허태균
출판 : 중앙북스 ㅣ 2015.12.07
좋아하는 책이지만, 그 두께와 무게 때문에 한국 본가에 남겨두고 왔던 책들이 있다. 물론 '읽었던 책'이라는 이유로 본가에 남겨져 있었어야 했기도 했다. 읽고 싶은, 그리고 읽어야 하는 '새 책'들 또한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한국 방문 시에는 무조건 꼭 가져와야지 하는 책이 있었는데, 바로 허태균 저자의 <어쩌다 한국인>이었다.
이 책은 당시 내가 일본 여행을 몇 차례 다녀오고 나서 한국과 일본이 이렇게 다르구나에 대해서 놀라고 있던 차에, 한국을 더 이해하기 위해서 읽게 되었다. 일본에 갔었을 때 느꼈던 감정, 생각들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일본이 한국과 굉장히 비슷한 모습을 띄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공항에서 도쿄 시내로 오는 길에서부터 그 다름에 대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똑같이 생긴 집들이 가득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어딜 가나 영업을 한지 오래된 가게들이 많았다.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한 곳에서, 대를 이어가며 장사를 할 수 있는 건지 궁금했다. 한국은 조금만 장사가 안되면 새로운 가게로 바뀌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곳을 가던지, 공사하고, 인테리어를 새로 고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일본에서는 그런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다. 물론 일본의 그 모습들이 마냥 좋다기보다는, 한국과 일본이 어떻게 이렇게 다른 모습을 갖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 너무나 궁금했었다. 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나에 대해서, 나의 나라에 대해서 더 잘 알아야 했다.
저자는 현재의 한국 사회에는 과거에 대한 평가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채워지지 않는 현재의 욕구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차있으며, 미래에 대한 불안에 짓눌려 있다고 이야기하며, 이는 사춘기 청소년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한 국가의 발달과정을 심리학적 관점을 통해 한 인간의 발달과정으로 이해해 보려 있음을 밝혔다. 사춘기를 어떻게 겪느냐에 따라 멋진 청년으로 성장할 수도 있지만 그에 반대로 성장할 수 있듯, 저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나도 현재 대한민국은 결정적이고 중요한 순간에 놓여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2015년에 쓰였지만, 2023년인 현재도 사춘기 단계를 거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주체성, 가족확장성, 관계주의, 심정중심주의, 복합유연성으로 한국인을 설명하고, 모든 장이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어느 순간 책이 정곡을 찌른다는 느낌이 들면서 부끄러워지고, 또 이렇게 정확하게 간파할 줄이야 하면서 저자의 관찰력과 이해력에 대단함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모든 내용들이 감명을 주지만, 가장 인상깊었던 몇 장을 꼽아서 소개하면서, 이를 기록하며 동시에 복기하고자 한다.
팁 문화
언젠가 한국에 거주하는 미국인이 한국에 팁 문화가 없는 것에 대해서 매우 만족한다고 이야기한 동영상을 보았던 기억이난다. 미국에 있을 때는 팁을 무조건 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부담이 많았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서비스도 안 좋은데, 팁을 줘야 했었던 적도 많았어 서서, 돈이 아까운 적이 많았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그럴 싸했었다. 한국은 팁문화가 없으니, 오히려 돈을 아낄 수 있는 장점이 있겠구나, 이 부분을 외국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기도 하겠구나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한국 사회에는 강한 감정노동과 갑질 공격에 비례하는 더 큰 보상이 일반적으로 없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당연한 감정노동을 기대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진심을 담은 상대방의 서비스와 응대를 기대 한다. 하지만, 그 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주고 있지는 않다. 감정 노동을 더 열심히 한다고 특별히 얻어지는 것은 없는데, 안 하면 처벌은 가혹하다. 우리들은 정해진 가격에 진심이 담긴 감정노동이 당연히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혹시나 진심이 느껴지지 않거나, 불친절하다고 느끼면 자기가 무시를 당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한국인은 존재감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렇기에 자신의 존재가 중요한 만큼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한다고 하면 어떨까? 저자는 이 물음이 너무 천박한 것이 아닐까 염려하지만, 나 또한 한국에서 팁을 주는 문화가 생긴다면 어떨 것인가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사법부를 비난하는 우리들
우리나라 대부분의 국민들은 사법부의 무능함을 비웃는다. 나 또한 이렇게 생각했던 적이 꽤나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왜 사법부는 늘 국민에 상식에 어긋나는 판결을 내리는 것인지에 대해서 분노했고, 그들의 능력과 존재 이유에 대해서 의심을 품었던 적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내가 잘못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정의롭다고 믿기 때문에, 정의를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하는 사법부 또한 자신이 생각한 바와 같게끔 판결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상식에서 벗어난 판결을 사법부가 내리면, 가차 없이 비난한다. 하지만, 사법부는 상식을 다루는 기관이 아니다. 하지만, 사법판단의 본질은 얼마나 진실과 상식에 부합하느냐에 있지 않고, 그 판단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는데, 모든 사건이 100퍼센트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은 정도로 확신이 있냐의 여부에 따라서 무죄, 유죄가 갈려진다. 즉, 사법부는 불확실성의 상황에서 어떤 판단오류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결정해야 한다.
한국인의 심리적 특성 중 하나인 복합유연성은, 서로 상충하는 가치들이 상존할 수 있고, 실제로 그 가치들이 본질적으로는 상충하지도 않는다는 변증법적인 사고를 뜻한다. 이는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양립하는 가치들이 존재하며, 그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그 선택을 통해 무엇인가를 얻는 대신, 다른 하나를 잃게 된다는 것을 상대적으로 쉽게 받아들이는 것에 반해, 동양의 가치관은 음양의 조화, 태극의 의미, 윤회설등과 같이 극단의 개념이 화합되고 조화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굳이 하나를 선택할 필요를 없게 만들고, 결국 선택을 즐기지 못하는 심리적 특성을 만들어 낸다.
그러기에 한국인들은 진짜 법인을 처벌할 확률을 100퍼센트로 만드는 동시에, 무고한 사람이 처벌받을 확률 또한 0퍼센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고, 한쪽으로 쏠리는 상황을 '선택'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한국인의 주체적 특성은 사법부의 판단을 그냥 믿고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믿게 만든다.
가족확장성
우리나라와 일본이 노약자석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다른 것을 혹시 알고있었던 사람이 있을까? 일본의 지하철에도 노약자나 임산부를 위한 자리가 있지만, 그게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우선석에 앉는 젊은이들은 그 앞에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서있어도 꼼짝도 안 한다고 한다. 왜? 우리 할머니가 아니니까. 한국에서 이런 일이 있다고 하면, 바로 SNS에 퍼지고도 남을 일 아닌가.
여기서 저자는 한국인들이 다양한 인간관계를 너무나도 쉽게 혈연관계를 환원하는 '가족확장성'을 가지고있는 것을 이야기한다. 한국에서 가족의 개념은 유교의 효 사상에 근거한 동양적인 수직적인 특성을 넘어서, 가족 개념의 사회적 확장이 일어나는 것이 특징이라는 것이다. 즉, 다양한 인간관계를 너무나도 쉽게 혈연관계로 환원해 버린다. 식당에서 종업원분들을 이모, 언니라고 불렀던 내 모습을 기억해 본다.
한국인들은 또한 지도자마저도 어진 어버이와 같은 모습을 기대한다. 무조건 희생하고, 착하고 진실되기만을 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지도자의 모습이 무조건 좋을까? 물론 진실되고, 믿을 수 있고, 인자한 지도자도 좋지만, 복잡한 국가 정세 속에서 자신의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라면 강단 있고 소신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분명 있지 않을까.
군대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저자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군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누구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운 한국의 현실이라고 꼬집는다. 현재 인권으로 군대의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하는 모습이 마냥 옳을까? 가족 같은 군대가 가능할까?라고 질문한다.
군대에서 더 이상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병사들의 자율성을 키워주고 인권 교육을 강화시키는 것 민아 해결책은 아니며, 무엇보다도 참된 군인의 모습과 행동이 무엇인지를 정립시켜야 하는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우리들은 의무의 공평성에만 집중되어, 모두 군대에 가야 한다는 것, 어떻게 하면 빠지는 사람 없이 모두 군대에 가도록 할까만을 고민해 왔다. 나 또한 군대는 위험한 곳, 허송세월을 버리는 곳, 나쁜 것만 배우고 오는 곳이라는 생각 했다. 하지만, 진지하게 돌아보니 군대가 아니더라도 유사한 사건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일어나고 있었으며, 오히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군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너무 늦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하지만, 애초부터 참된 군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였으면 어땠을까. 물론, 부당한 폭행등의 기본적인 윤리를 벗어나는 것은 합리화될 수 없는 것이야 당연하다.
이 책을 처음 만난 건 2018년 알라딘 중고서점이었다. 이를 구입하여 당시 합정역에 있는 이동진 평론가가 만든 '빨간 책방'이라는 카페에서 이 책을 읽었던 때가 생각이 난다. 아쉽게도 빨간 책방은 문을 닫았지만.. 참 좋아하던 공간이었다. 벌써 이 책을 4번이나 읽었다.몇 번이고 더 읽고 싶은 책이 있다는 것은 참 심적으로 의지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을 만나게 되어 나도 많이 성장했다. 중고서점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얻은 것 치고는 (?) 너무나 많은 유익한 나용들을 알게 되었다.
1년 후. 2019년에 베트남에 왔으니, 베트남 오기 직전에 읽었던 책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이 책은 내 자신을 이해하는 것에, 그리고 한국을 이해하는 것에 큰 도움을 주었다. 베트남에 산지도 4년이 넘은 지금. 다시 이 책을 읽고 베트남에 살고 있는 한국인으로서의 나의 모습을 바라보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베트남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에 더 도움이 될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베트남으로 돌아오는 5시간의 비행에서 나의 든든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아쉽게도, 2015년에 <어쩌다 한국인> 출간 이후에 다른 출간 소식은 없지만, 유튜브에 몇 개의 동영상이 보인다. 다만, 코로나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사회의 큰 변화를 이끌었었던 것만큼, 팬더믹에서 우리나라 사람들만의 구분되는 특이한 점은 없었는지, 그리고 팬더믹이 휩쓸고 간 자리는 무엇이 남았는지에 대한 저자의 의견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 주말은 허태균 저자의 최근 동영상들을 보며 시야를 넓히는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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