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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스 워튼 <여름> 뜨거웠던 여름의 끝자락에서 읽은 소설. 줄거리. 감상. 정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추천.

by evelyn_ 2023.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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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Summer>
저자 : 이디스 워튼 / 번역 : 김욱동
출판 : 민음사 / 발행 : 2020.08.14 


 지난 4월 말. 한국에 갔을 때 내가 가장 먼저 간 곳은 서점이었다. 실은 최근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짐들을 보며, 한  때 미니멀리스트를 꿈꿨던 나를 떠올렸고,  한동안 이제 책은 그만 사고, ebook을 읽자라고 다짐하고 실제 실천하고 있었지만, 물리적인 종이책이 주는 느낌은 쉽게 전차책으로 치환되지 않음을 통감하며, 다시 책을 사기로 결심을 해왔던 때였다. 그렇게 서점에서 바리바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들을 구매했고, 그것들은 나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베트남으로 왔다.
 
이 소설을 읽기로 결심한 이유는 단지 책 표지의 색감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특히나,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을 고를 때는 대부분 순전히 '표지가 감각적이다'라는 이유가 대부분인 듯하다. 디테일한 줄거리라던지 리뷰를 보지 않고 읽으면, 그 작품과 내가 운명처럼 만났다는 느낌 받기도하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이렇게 단순하면서 엉뚱한 이유로 책을 고르는 것을 좋아한다. 이는 나의 직감을 믿고 싶은 마음도 있다.
 
**참고로 책 표지의 그림은 프랭크 웨스턴 벤슨의 <여름> 이라는 작품이다.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In_Summer_1887_Frank_Weston_Benson.jpg


1862년 미국에서 출생하여, 1937년에 생을 마감한 작가 이디스 워튼은 꽤 흥미로운 배경을 가지고 있다.

워튼은 뉴욕의 명망가인 존스 가문에서 태어났는데,  그녀는 학교에 다니는 대신 가정교사로부터 교육을 받았고,  아버지 서재에서 문학, 철학, 종교 서적들을 탐독할 수 있었으며, 어려서부터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며 생활했다.

 

1878년에 첫 시집을 출간했으며, 1921년에 출간한 <순수의 시대>로 미국에서 최초 여성 작가로 퓰리처상을 수상하였다. <순수의 시대>가 소설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고만 알고있었지 원작 소설의 작가를 몰랐는데, 바로 이디스 워튼이었던 것을 알게 되어 반가웠다.

 

1885년 13살 연상의 남자과 결혼했지만, 1894년부터 심각한 신경 쇠약을 앓았고, 1913년에 남편과 이혼한 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프랑스에서 살았다고 한다. <여름>은 제1차 세계 대전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던 무렵인 1916년에 쓰였으며, 워튼은 이 작품을 자신의 작품들 중에 가장 좋아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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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미국 뉴잉글랜드의 한적한 시골마을 노스도머.

올해 열여덟 살의 ‘채리티’는 '산'에서 태어나 '노스도머'에서 후견인인 변호사 ‘로열’ 씨의 손에서 자랐다.

 

그녀는 자신이 가난하고 무식한 데다가, '산'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가장 수치스러운 일로 취급받는 노스도머에서 자신이 가장 비천하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후견인 로열씨가 노스도머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에, 작은 마을에서 언제나 여왕처럼 군림해왔다. 

 

로열 부인이 세상을 떠난 뒤 채리티는 기숙사 사립 학교에 갈 수 있었지만, 채리티는 로열씨의 외로움을 동정했고 결국 노스도머를 떠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이후 채리티는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로열 씨에게 청혼을 받고는 그에 대한 경멸과 증오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하는 채리티의 눈앞에 도시 출신 건축가인 ‘하니’가 나타난다. 채리티는 젊고 자유분방한 하니의 모습에서 마음이 설렌다. 하니가 무심하게 책의 위치를 묻다가 채리티와 눈이 마주친 순간, 잠시 할 말을 잃자, 채리티는 그런 그의 모습에서 처음으로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고 인식한다. 채리티는 자신이 산에서 태어난 것에 대해서 부끄럽게 생각했었지만, 그 조차도 채리티의 특별한 이유라고 말해주는 하니에게 다정함을 느끼며 그 둘은 사랑에 빠진다. 

 

서로에게 강력하게 이끌린 둘은 로열씨와 마을사람들의 눈을 피해 밀회를 즐기지만, 채리티는 자신의 지식이 하니가 알고있는 것에 비해 한참 뒤처진다는 것을 깨닫고 주눅이 들기도 했고, 로열 씨가 끼어들어 간섭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고통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채리티는 하니와 보내는 시간이 더 짜릿하게 느껴졌다. 

 
채리티가 당황하던 그 짧은 장면을 되새길 때만큼 삶과 문학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생각이 이토록 무겁게 그녀를 짓누른 적은 일찍이 없었다. 
 
 
 
 하지만 채리티와 하니의 밀회가 로열씨에게 발각되고, 하니는 결국 채리티에게 일을 정리하고 돌아올 테니 그때 결혼을 하자고 이야기하고 마을을 떠난다. 채리티는 그가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지만, 그와의 미래는 이상하리만큼 머릿 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이후 채리티는 하니가 떠나던 날에 애너벨 볼치도 마을을 떠났다는 것을 알게되고, 그 둘이 약혼을 했다는 소문을 듣는다. 채리티는 애너벨 볼치가 하니가 결혼하기에 적합한 부류의 아가씨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담담하게 하니에게 애너벨 볼치와 결혼하려고 했으면 결혼하라고 편지를 보낸다. 채리티는 뱃속에는 하니의 아이가 자라고 있었지만, 이에 대한 이야기는 함구한다. 하지만 하니가 애매한 말들로 채리티를 계속 여러 생각에 빠뜨리자, 채리티는 자신이 태어난 '산'이야말로 도피처라는 생각에 다다른다. 그렇게 그녀는 산으로 향한다. 

지금 채리티에게는 죄의식이 없었지만 무례한 시선으로부터 비밀을 보호하고 마을의 준엄한 규범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속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은 욕망이 간절했다. 그런 충동은 구체적인 생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만 아기를 구하고 어느 누구도 그들을 괴롭히려고 찾아오지 않을 어딘가에 아이와 함께 숨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 뿐이었다.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채리티는 산에 가면 그녀의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산'. 하지만 그곳에서 채리티는 임종한 어머니를 보고 그녀의 장례를 치룬다.

어머니가 없는 '산'. 채리티는 그곳에서도 고독이 있을 것임을, 그리고 그곳의 처참한 생활은 그녀가 아이를 온전하게 키울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곳을 벗어난다.

 

그렇게 어디론가 발길을 향하여 가던 중, 채리티는 로열씨를 만난다. 로열씨는 쉬지 않고 마차를 내달려 채리티를 찾으러 온 것이었다. 로열씨는 아무말도 없이 그녀를 부축하여 마차에 태우고 그녀를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다.  채리티는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낀다. 그 둘은 이후 바로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그리고 채리티는 하니에게 로열씨와 결혼했음을 알린다. 

 
나는 로열씨와 결혼했어. 언제까지나 당신을 기억할게.
채리티 .

 


'채리티'에서 나의 예전 모습을 보다.

 
몇 주간 제대로 책을 읽지 못해서 갈급함이 있던 와중이었어서 그런지 몰라도 첫 장을 편 후 앉은자리에게 거진 다 읽어 버렸다. 나의 갈급함의 정도를 떠나서, 소설의 흡입력이 없었다면 그렇게 단숨에 읽지 못했을 것이니 <여름>은 매력적인 소설임에 틀림없다.
 
<여름>은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를 그렸다. 하지만 이 소설을 무엇보다 빛나게 하는 것은 단조로운 듯이, 마치 어디선가 봤었던 것 같은 이야기 속에 있는 섬세한 감정 묘사일 것이다. 
 
 채리티에게서 어렸을 적, 사랑에 쉽게 빠지고, 쉽게 상처받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늘 사랑을 열병처럼 앓았었다. 오랫동안이나 왜 이렇게 나는 사랑에 매달리고, 상처받을까라고 생각했다. 상처를 받으면서도, 계속해서 사랑을 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이 되어서야 , 마음이 너덜너덜해져서야, 나를 많은 생각에 빠지게 하는 남자, 불안하게 하는 남자, 마음에 대해서 확신을 안 주는 남자에 대해서는 멀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채리티는 나보다 훨씬 야무지고 똑똑한 여자였다. 채리티는 하니가 문득문득 그녀를 묘한 불안한 감정에 몰아넣는 것에서, 이미 그를 안심하고 믿을 상대 아니라는 것을 빠르게 깨달았으니까 말이다. 만약 나였으면, 뉴욕까지 하니를 찾아 가고야 말았을 것 같다. 
 

크레스턴 연못에서 만난 뒤로 줄곧 하니는 이렇게 생각에 잠긴 채 말이 없었다. 말이 필요 없어 침묵을 지킬 때와는 사뭇 달랐다. 그럴 때 그의 얼굴에는 어둠 속에서 보았던 표정이 감돌았고, 또다시 그녀로 하여금 두 사람 사이에 설명하기 힘든 거리감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평소에 하니는 넋 빠진 듯 멍한 표정이다가도 갑자기 폭발하듯 쾌활한 표정을 지었고, 그러면 그녀의 마음이 오싹해지기 전에 어두운 그늘이 달아났다.  

 

 

예상을 빗나갔던. 그래서 색다르게 기억될.

 
이디스 워튼이 상류층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꽤나 나에게 놀라운 점이다. 실제로 가난한 태생으로 실제 궁핍하여 쫓기는 삶을 겪지 않았더라면 이런 글을 쓸 수가 있을 정도로, 감정 묘사가 사실적이면서 구체적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역시나 대단한 작가는 내가 경험한 것, 그리고 경험하지 않은 것 모두를 잘 쓸수가 있어야 하는 것일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채리티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산속으로 갔을 때, 나는 그 산에서 안주하고,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응하며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자신의 뱃속에 있는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그곳에서 즉각 벗어났다. 그 모습에서 채리티의 어머니가 채리티를 노스도머 마을로 내려보냈었던 모습이 상상이 되면서, 채리티의 모습이 그녀의 엄마의 모습과 닮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게다가 나는 다른 방식의 결말을 기대했다. 채리티가 지친 몸을 이끌고 로열씨와 결혼식을 올린 후 호텔로 갔던 장면에서, 나는 그녀가 자신의 인생을 비관하고 그곳에서 투신하여 자신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결말은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즉, 하니와 사랑에 빠지고 밀회를 보냈던 것까지의 이야기는 꽤 예상이 가능했으나, 그 이후 스토리는 예상밖인 점이었던 점이 이 소설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채리티'를 마음에 기억하며 . 

 
일 년 내내 여름인 나라에서, 그야말로 <여름>이라는 제목을 가진 소설을 읽었다. 우연일지, 의도적이었을지는 모르지만, 이 책의 발행일도 한 여름인 8월 13일이었다는 것이 인상 깊다. 마냥 싱그러운 표지에 청량한 이야기들이 담겨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안에는 톡 쏘는 맵쌀함이 있었다. 소설이 주는 밝지만 어두웠던, 불안했지만 안정되는 분위기에 심취해서, 다 읽고 난 다음에도 그 잔상이 이어졌고, 다시 그 책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출판사 서평에 따르면 미국 문단에서 여성의 성적 열정을 다룬 최초의 본격 문학이라고 소개되어 있는데,  채리티가 지금 시대에서는 굉장히 파격적인 인물은 아니기 때문에 <여름> 발간 이전에는 소설 속의 여성들의 모습이 어떠했을지 예상할 수 있다.이디스 워튼과 같은 작가가 있었기 때문에, 현재의 개방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었을 수 있었을 것이기에 고마움을 느낀다. 
 
그나저나, 채리티는 뱃속의 아이를 누구의 아이로 이야기했을까? 그녀는 결혼한 후에 행복했을까? 그녀의 그 이야기가 궁금하다. 상상은 독자들에게 맡겨졌다. 가련하면서도, 똑똑하고, 그 성품이 착하였던 채리티. 그녀를 이 뜨거웠던 여름 끝자락에서 만나게 되어 더 아련하게 기억된다.  난 그녀가 세상에 타협했다고, 결국 포기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아이가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제 나는 그녀의 또 다른 책 <이선 프롬>을 읽고 싶다. 1911년과 1917년에 출간된 <이선 프롬>과 <여름>은 작가 워튼에 의해 자매편으로 간주되면서 흔히 문학적 쌍둥이로 불린다고 한다. 4월 말. 서점에서 <여름>과 <이선 프롬> 두 권을 모두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이디스 워튼 작품은 처음 읽는 것이라서 한 권 먼저 읽어봐야지 싶어 좀 더 끌리는 <여름>만을 구매했지만 이제야 후회가 몰려온다. 우선 사온 다른 책들부터 읽고, 다음 한국 방문 기회를 노려야겠다 :) 
 

이선 프롬 : 네이버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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