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한가운데><Mitte des Lebens>
저자 : 루이제 린저 / 번역 : 박찬일
출판 : 민음사 / 발행 : 1999.06.25
멀쩡하게 살다가도 가끔 한없이 미래가 불안하여 걱정이 몰려올 때면, 나는 더욱 의식적으로 문학과 영화들 안에서 위로가 되는 인물들을 찾아본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무릅쓰고 인생의 한가운데로 달려 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늘 귀감과 용기가 되기 때문이다.
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는 단연코 내 마음이 갈피를 못 잡고 부유할 때 눈에 띄었다. 원래 알던 작품은 아니었으며, 저자 또한 나에게는 생소했다. 누구의 추천도 없었다. 그냥 읽을 만한 좋은 책이 없을까, 여러 책들을 기웃거리며 연관된 책을 찾아보다가 우연히 발견하였는데, 짤막한 소개글에 매료되어 망설임 없이 구입했다.
확인해보니 종이책 초판 발행 연도는 1999년인데, 전자책은 2019년에 발행되었다. 해외에 사는 나로서는 읽고 싶은 책의 전자책이 있다는 것이얼마나 큰 행복을 주는 일인지 모른다. 한국에 갈 날을 기다리거나, 해외배송 택배도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한번 꽂힌 책은 바로 구매해야 하는 욕구를 빠르게 채워주기 때문이다.
1911년 독일 출신의 작가 루이제 린저의 대표작인 <삶의 한가운데>는 다른 출판사에서 <생의 한가운데>로 번역 및 출판이 되기도 하였다. 책표지의 여인이 바로 작가 루이제 린저(1911-2002) 이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처음 책 표지를 보았을때, 작가인 루이제 린저라고 확신할 수 없지만, 그녀의 얼굴에서 인생을 달관한듯한, 따뜻하면서 강인하고, 동시에 여유 있는 미소를 띤 모습이 좋았던 것 같다.
한 번의 호흡으로 빠르게 읽어 내려가진 못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분량이 많기도 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다름아니라 어느 책보다도 밑줄을 많이 그었기 때문이었다. 너무나 마음에 와닿는 문장들이 많아서, 밑줄을 치는 것에만도 시간을 꽤 쏟았고, 다음 날 회사에 가야 하는 날에는 정말 아쉬운 마음으로 읽기를 중단해야 했다. 그렇게 나는 이 책을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시간이 난 틈을 타 읽어 내려갔다.
<삶의 한가운데>는 니나를 사랑하는 20살 연상의 의사 슈타인의 일기 및 편지, 그리고 니나와 그녀의 언니의 짧은 며칠 간의 만남과 대화들로 구성되어있다. 평범한 일상을 이어가던 의사 슈타인에게 혜성과 같이 '니나'가 등장한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죽음에 대해 동경하는 니나의 활달함과 대담함. 용기에 생에 대한 집요한 호기심. 단호함. 삶의 일부인 죽음까지도 체험하겠다는 그녀에게 슈타인은 순식간에 빠져든다.
"우리가 처음 만난 이후 당신은 내 삶과 떼어놓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내 삶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당신은 내 본질 중 굳어있는 부분을 용해시켰습니다.. (줄임) 당신을 찾으려 나는 거리를 헤맵니다. 당신을 만나야겠습니다"
슈타인은 조용한 세계에서 살고 있었던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니나는 인생의 많은 모험을 무릅쓸 준비가 되어있는, 아니. 무릅쓰고자 하는 여자였다. 그 둘은 마치 밤과 낮처럼 매우 달랐다. 하지만 슈타인은 니나가 가지고 있는 우울함과 고립감을 알고 있었고, 자신은 그녀의 피난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슈타인은 그렇게 당장이라도 쓰러지고 부러질듯했지만, 그럼에도 그 생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자하는, 위험도 부딪쳐 보고자 하는 니나의 삶을 연민하며, 그렇게 언젠가는 그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그리고 그녀가 그에게 의지하러 오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동시에 슈타인은 그둘이 매우 다르다는 점을 알고 있었고, 계속해서 그녀와 어긋남에 따라 상처가 누적된다. 슈타인은 니나를 결코 붙잡아둘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니나를 잊기 위해 그녀에게서 멀리 떨어지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그것은 그의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계속해서 어쩌면 어느날 니나가 자신을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니나는 '자유'를 원했다. 자신 안에 수백 개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여자였다. 하지만 슈타인이 니나를 변화시키려고 했었고, 그것이 니나를 불편하게 만든 것이었다. 니나는 누군가의 영향을 받고 싶지 않았고, 오로지 자신의 모습으로 살고 싶었다. 누군가의 속박은 절대 견딜 수 없었다. 그렇기에 니나는 슈타인이 자신이 가는 길을 방해한다고 느꼈다.
"나는 당신이 쌓은 업적에 대단히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당신의 우정에 대해서도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 곁에 있으면 나는 불편합니다. 당신은 내가 바라지 않는 방향으로 나를 몰고 삽니다. 당신은 나를 수줍은 소녀로 만들고, 어떤 때는 성숙한 여자만이 할 수 있는 결단을 기대합니다. 나는 그중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슈타인은 무려 18년 동안 니나를 지켜본다. 슈타인은 니나에게서 벗어나려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그녀에게로 돌아오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한편 무슨 일이든 견뎌 나가기로 했던,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피하려고 하지 않으려던 니나의 용기는 매 순간 시험 당해졌다. 슈타인은 니나가 다른 남자랑 결혼하나, 그 남자가 아닌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것, 나치와 투쟁함으로 인해 투옥되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살시도를 한 니나를 기적적으로 구해내고 보살펴 주기도 한다.
하지만 니나에게는 여전히 슈타인은 모험을 하지 않고, 삶을 비켜간 사람이었다. 그럼으로 아무것도 얻지도 잃지도 못한 사람. 고상하기 그지없는 사람. 그렇게 그들의 사랑은 결국 미완으로 끝난다.
지금의 나를 돌아보며
작품의 여주인공 '니나'는 한문장으로 형언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니나 자신 또한 한 두문장으로 자신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는 것을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만 같다. 그녀는 생에 대해서 진지한 관심을 가진 인물이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슈타인이 되었다가, 니나가 되었다가를 반복했다. 그 극단의 두 인물을 어느 정도 동시에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엔 용기 있게 살아가려고 했던 니나에 매료되었고 슈타인의 소극적인 태도, 방관자적인 태도에서 답답함을 느꼈으나, 결국에는 니나를 사랑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슈타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사랑이 꼭 이루어진다고 해서 그것이 '운명'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그 둘이 이어지지 못한 것은 안타깝긴 했지만 말이다.
민음사 서평에 따르면,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니나'이라는 인물에 열광하였는데, 작가가 '니나'를 통해서 전후 독일의 암담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참된 삶을 추구하는 여성의 한 전형을 성공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루이제 린저는 이 작품을 통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침체되어 있던 독일 문단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현재까지도 가장 많이 읽히는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실제 루이제 린저는 나치에 비협조적이라는 이유로 국가반역죄에 기소되고, 투옥되기도 하며 험난한 역경을 겪었다.
약 5년 전의 나만하더라도 나는 니나와 더 닮아있었다. 운명의 메시지를 거부하지 않는 사람처럼, 해외에 나왔다. 약간 당시에 뭐에 단단히 홀렸던 것 같다. 그렇게 해외에 산지도 벌써 5년이 되어간다. 지금은 그때의 패기들은 온데간데없고 오히려 슈타인에 가까운 것 같다. 물론 나는 니나도 슈타인도 어느 한 인물의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옹호하지는 않는다. 니나의 용기는 대단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어느정도 자신을 벼락 끝에 몰아 가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다만 인생의 모험을 피해 가고자 하는 생각은 없지만, 그것이 너무나 가혹한 시험이 아니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생에서의 시련은 내가 원한다고 피할 수 없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견뎌야 한다면 나는 그때 대담하게 용기있게 인생을 맞서내려고 했던 니나를 기억해내고자 한다.
시간만 있다면, 이 책을 몇 번이고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다. 다시 읽으면 좀 더 온전한 니나가 되어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나마 천천히 읽어 내려가며 수없이 밑줄들을 쳐놔서 다행이다. 이 책이 정말로 갈급한 순간이 오면 밑줄 친 문장들이라도 빠르게라도 훑어야겠다. 그리고 혹시나 인생의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주변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권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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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나'와는 다르게, '그들만의 방식'으로 나에게 위로와 용기가 되어주었던 소중한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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