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르> <Love> ,2012
-감독 : 미카엘 하케네
-주연 : 장-루이 트린티냥 (조르주 역), 엠마누엘 리바 (안느 역), 이자벨 위페르 (에바 역)
-등급 : 15세 관람가
-장르 : 드라마, 멜로/로맨스
-러닝타임 :127분
실은 '죽음'은 내가 가장 생각을 피하고 싶은 주제이다. 일상을 살다 보면 뜬금없이 내 주위의 소중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이 몰려올 때가 있는데, 그 생각을 오래 하려고 하지 않고, 다른 생각으로 주의를 돌리려고 한다. 예전에 비해 많이 나아진 건것 같은데도 쉽지 않다.
하지만 동시에 생각해야하는 주제라는 것은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어찌 보면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좋은 영화가 되기 위해선, 내가 보지 못했던 세상에 대해서 보게하고,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생각하게 해야 한다. 물론 불편한 느낌이 뒤따라도 좋다. 대부분 익숙하지 않은 것을 대할 때는 불편한 감정이 따라오는 것이 당연하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 영화가 내가 가장 생각하기를 꺼려하는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게한다는 영화라고 해서, 예외로 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한다.
줄거리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은퇴하고 행복한 노후를 보내고 있는 음악가 부부 조르주와 안느.
함께 아침식사를 하던 어느 날. 안느가 갑자기 몸이 마비가 되게 되고, 경동맥이 막혔다는 진단을 받는다.
수술 실패 확률이 5%밖에 되지 않았지만, 안느는 불행하게도 그 5%에 속해진다.
몸의 오른쪽 부분이 마비된 채 안느는 집에 돌아오고, 안느는 조르주에게 다시는 자신을 병원에 보내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안느의 바람처럼 조르주는 집에서 안느를 보살핀다. 예고도 없이 하루아침에 자신이 갑자기 몸의 한 쪽을 사용하지 못하고, 혼자서는 걷지도, 씻지도 먹지도 못한다는 것을 쉽사리 인정할 수 없었던 안느는 혼자서 움직여보려 시도하지만, 조르주의 걱정만 살뿐이었다.
원래 같으면 반갑게 맞이했을 제자의 방문도 이제 안느에게는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조르주는 혼자서는 안느를 돌보기에 버거워 간호사를 고용하기도 하지만, 모든 간호사가 조르주 마음처럼 헌신적으로 간호하지 않았다. 동시에 조르주 또한 점점 지쳐갔다.
시간이 갈수록 안느는 점점 쇠약해지고, 의식도 약해져 가더니,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러던 어느날. 조르주가 아무리 달래도 안느가 물을 안 먹겠다고 거부한다. 떼쓰는 아이처럼 막무가내로 물을 거부하자 이에 조르주는 분노하여 안느의 뺨을 때리는 일이 벌어지고, 이후 조르주는 결단하고 베개를 이용하여 안느를 질식사 시킨다. 조르주는 시장에 가서 꽃을 사와 그녀의 곁을 장식하고, 방문을 닫고 테이프로 봉하고, 수일이 지난 어느 날. 신고를 받고 경찰들이 조르주와 안나의 집에 출동한다.
현실적인 시선
조르주와 안느는 비록 은퇴는 했어도, 병원에 입원을 하지 못할 정도의 형편은 아니었다고 보여진다.
그러하다면, 안느가 자신의 병을 알고 난 이후 즉시 병원에 입원하였음을 가정해보면 어떨까?
인간은 영생의 존재가 아니므로, 물론 어느 시점에는 운명을 다해야 했겠지만, 그래도 조르주를 덜 힘들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영화에서 말하고자한 메시지와는 거리가 멀 것으로 생각하지만, 나는 매우 현실적으로 내가 비록 병원에 가기가 죽을 만큼 싫어도, 남들을 위해서는 병원에 입원하는 것을 감내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안느는 자신의 아픈 몸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고, 그녀에게 '병원'은 누구에게도 두렵고 싫은 공간이었다. (병원을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그렇기에 그녀는 고집스럽게 병원에 가지 않는 것을 택했다. 안느는 안느 나름대로의 존엄을 지키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조르주 또한 이런 안느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다. 하지만 안느의 의견을 존중해 주는 것에서 파생되는 미래에 자신이 감내해야 할 고통은 물론 알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안느 또한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 입원을 거부했을때도 후에 자신이 조르주에게 얼마나 고통을 주었을지도 모두 헤아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후 안느에 대한 사랑으로, 그리고 그녀가 부탁한 대로 집에서 안느를 정성껏 보살피던 조르주였지만, 아픈 사람을 간호한다는 게 어찌 간단한 일이었겠나. 결국 이미 통제불능이 되어버린 안느의 뺨을 때리는 일로 조르주는 자기 자신이 안느의 존엄을 지켜주려다가 '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 없는 사태'에 이르렀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조르주는 결단을 내리게 되고 우리에게는 조르주의 행위가 과연 정당할까라는 질문이 남았다. 이에 대한 생각을 해보기 전에 우리는 조르주의 모습이 비단 남의 일만이 아니라는 것을 염두해 보자.
짧은 인생. 매일이 폭풍 전야.
하지만 그럼에도 살아가는 것.
어렸을 때는 새롭게 접하는 일들이 많아서, 그 경험에서 오는 자극이 기억으로 남아, 흡사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껴지나, 나이가 들수록 자연스럽게 새로운 자극들이 사라지고, 뚜렷하게 남아있는 기억들이 없어서 이에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 것처럼 느껴진다는 말이 생각난다. 확실히 나이가 먹을 수록 시간이 더 빨리가는 듯하다. 그러기에 인생이 참으로 짧다싶다. 그러므로 더더욱 죽음이라는 것이 남일이 아닌 것 처럼 느껴진다.
지금 어디 딱히 아픈 곳 없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도 모자라겠지만, 인생은 짧기에 어느 순간 내가 늙고 아프고, 쇠약해질 것을 생각하니 순간 두려워진다. 조르주와 안느, 그리고 그들의 딸인 에바 마저 언젠가의 우리들의 모습이겠지.
이전에 블로그에 올렸던 '비극은 분명히 찾아온다' 글을 다시금 읽어본다.
나는 그때 조던 피터슨의 책을 읽고 내 나름대로 언젠가 사랑하는 것들이 사랑하는 이들이 언제든 우리 곁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을 충실히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내 자신이 조금 성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은 아닌 것 같다. 언제쯤 내 마음은 강인해질까.
다만, 어떠한 일이, 언제 어디서 닥칠지 모르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은 분명 의미가 있음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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