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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씨 인사이드> 하비에르 바르뎀 주연. 의무가 아닌 권리로써의 진정한 삶의 의미 Mar Adentro

by evelyn_ 2019.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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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인사이드> <Mar Adentro>,2004 

-감독 :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주연: 하비에르 바르뎀 (라몬 삼페드로 역), 벨렌 루에다 (줄리아 역)

-등급 : 15세 관람가 

-장르 : 드라마

-러닝타임 : 125분 


 

* 이 글에는 본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배 정비사였던 ‘라몬 삼페드로’ (하비에르 바르뎀)는 자신의 직업 덕분에 19살 때 부터 세계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었지만, 수심이 얕은 바닷가에서 다이빙을 하다 머리를 부딪치는 사고로 사지가 마비되어, 이후 약 30년을 침대에서 누워서 지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라몬은 자신의 삶은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여 개인의 권리를 위해 노력하는 단체 소속인 ‘즈네’에게 자신이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찾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즈네는 직접적으로 라몬을 죽게 도와줄 수는 없지만, 심리적 도움과 합법적 지원을 해주는 것을 결정한다. 그를 도와주는 변호사도 나타나고, 스페인의 국민 약 60%가 안락사를 지지하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라몬의 안락사 요청은 형식상의 결함을 이유로 법정에서 기각되며, 라몬과 같은 사지마비자인 프란시스코 데 갈다르 신부는, 라몬 주변의 사람들이 라몬에게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라몬이 죽고 싶을 것이라며 폭언하기까지 한다. 결국, 라몬은 마지막으로 세상에 전할 메세지를 녹화한 후 청산칼리를 마시고 죽게되는데, 이 영화는 라몬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죽을 권리를 찾고자하는 라몬의 투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해서 보여준다. 이들에 대한 이해가, 라몬에 대한 이해로 자연스럽게 확장되어진다. 

 

 첫째로, 로사. 

 절임 공장에서 일하면서, 보이로 지방의 라디오 프로인 ‘라디오 보이로’의 사회를 맡고있는 ‘로사’는 남편과 헤어지고 혼자 두 아들을 돌본다. 그녀는 우연히 라몬이 안락사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방송을 보게되고, 다음 날 라몬에게 찾아간다. 로사는 라몬에게 자신의 삶이 힘들지만 행복하다고 하며, 그와 친구가 되어 그에게 살 이유를 주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라몬은 그녀에게 말한다. 나와 친구가 되고 싶다면, 일단 나의 의지를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라몬에게 삶의 이유를 심어주고 싶던 로사는 결국 자신이 라몬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위한다면 라몬의 생각과 라몬의 결정을 존중해주는 사람이 되어야함을 깨닫게 된다. 

 
 
두 번째로, 줄리아. 

라몬을 도와주려는 변호사인 ‘줄리아’도 나타난다. 줄리아는 퇴행성 질환을 가지고있어 목발에 의지하여 걸어다녀야 하는 상태였다. 그녀는 판사를 설득하여 라몬이 그토록 소망하는 ‘죽음’, 즉 ‘안락사’를 도와주기 위해서 라몬의 인생 이야기부터 알고자 하며, 라몬이 쓴 이야기들을 책으로 발간하고자 한다. 

 

“왜 죽으려고 하죠?”

-내가 죽으려는 건 이런 삶이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삶이 가치 없다고 말하면 다른 사지마비자에게 상처를 줄 수 있겠지요.
하지만 난 누구도 비판하지 않습니다. 내가 뭔데 살려는 사람들을 비판하겠습니까? 그러니 나와 나의 죽음을 도와주는 사람도 비판하지 말라는 겁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줄리아의 병은 더 심해지고, 결국 다리가 퇴화되어 더 이상 쓰지 못하게 된다. 2년 전에 이미 자신의 병에 대해서 알았지만 남편에게 이야기하지 못했을 정도로 자신의 병을 받아드릴 수 없었던 그녀는 점점 더 퇴화될 자신의 신체를 받아 드려야 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녀 또한 라몬 같이 자신의 삶은 의미 없으며,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줄리아는 라몬에게 자신도 당신과 같이 삶을 끝내고 싶다고 하고, 책이 출판되는 날, 초판을 들고 라몬으로 올테니 함께 삶을 마감하자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날 결국 줄리아는 나타나지 않는다. 줄리아는 마지막 순간 죽음이 무서웠을수도 있고, 자신을 보살펴주는 남편에게 미안했을 수도 있다. 라몬은 이에 좌절하지만, 줄리아의 결정 또한 자신이 비난할 수 없다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호세와 마누엘라. 

 라몬은 사고 이후 그의 형인 ‘호세’의 집에 지내고 있다. 호세는 죽음을 원하는 라몬의 생각은 자유지만, 이성적으로 옳은일이 아니라고 완강하게 반대한다. 그는 절대로 라몬을 죽게 내버려둘 수 없다고 소리친다. 한편, 라몬의 형수인 ‘마누엘라’가 보여주는 보살핌은 대단하다. 불평 한 번 하지 않고 라몬을 보살피며, 시동생이 죽으려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는 줄리엣의 물음에, 자신의 생각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한다. 라몬이 죽고 싶어하기 때문이니까. 라고 답한다. 이 말은 곧, 라몬의 인생은, 라몬에게 맡겨져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누구보다 마누엘라는 라몬의 생각을 깊이 존중해주었던 사람이었다. 

 

의무가 아닌 권리로써의 삶.

 어렸을 적부터, 어려운 상황이지만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교과서와 매스컴을 통해 많이 들었었다. 나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에게 감동과 위로를 받았다. 그들의 삶을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은 그들을 모범적이게 평가했다. 하지만 어찌보면 반대라고 할 수 있는 라몬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지금까지 알지 못했었던 죽음에 대한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 삶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생각해보면, 남이 살아야한다고 이야기한다고 해서 내가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어떤 사람이 자연스럽게 나에게 삶의 의지를 깨우쳐 줄 수는 있겠지만, 남의 인생을 억지로 바꾸고자 하는 것은 굉장한 실례이고 위선이다. 그냥 각자의 삶이 있고, 개개인은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갈 권리가 있다. 그렇기에 어느 모습이던지 존중받아야하지 않을까?  

 

 바다는 젊은 시절 라몬에게 세계 곳곳의 다양한 사람들과 풍경을 마주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바다는 라몬에게 침대에서 꼼짝달싹도 못하는 이전과는 180도 다른 삶을 주기도 하였다. 자신에게 삶을 주었고, 그리고 앗아갔던 바다. 그 아이러니함에 대해서 수도 없이 생각했을 라몬이 느꼈을 절망스러웠을 감정들. 침대에 누워서 수백 번 수천 번 수만 번 자유로운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동시에 절망했을 라몬이 버텨야 했던 슬픔과 나락의 감정은 거대한 파도와도 같이 다가온다. 자신을 보살펴주는 가족들에게 자신이 짐이 된다는 점이 너무 미안하여 죽고 싶었을지 모를 그의 마음을 생각하면 나조차도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으로 가라앉는 느낌이 든다. 담담하게 죽고 싶다고 이야기하던 라몬은 실은 죽고 싶다는 결정을 하기 전까지, 그리고 그 결정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노력할 때라도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을까. 그러한 고통스러움이 그의 결정에 합리적인 증거가 될 지는 모르겠으나, 어찌되었던지 증거가 있던 없던지, 라몬의 결정은 라몬 스스로의 인생에 대한 결정인데, 이를 비난할 수 있을까. 나는 라몬이 되지 않았는데, 어찌 라몬의 삶을 함부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즈네가 이야기 한다.  “우리가 지지하는 건 자유에요. 살려는 사람들과 죽으려는 사람들의 자유.

 

 너무나도 쉽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코멘트 하려고 한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그 사람의 인생을 비판하는 것은 과연 옳을까? 어떤 사건과 이야기들에게 자유롭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좋으나, 그러한 목소리가 정말 합리적인 판단에 근거했는지, 다양하게 생각해 보았는지 다시금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라몬과 같은 상황에 닥쳤을 때, 어떤 사람은 살고자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라몬 처럼 죽고 싶다고 할 수도 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권리’인 것처럼 받아들이면서, 왜 라몬의 선택은 쉽사리 존엄하다고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라몬의 선택은 실존주의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죽음이라는 것은 우리의 삶과 매우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개념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느순간부터 죽음이라는 것을 무섭고, 기쁘지 않고, 숨겨야하는 것들로 개념으로 ‘개조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조차도 죽음이라는 것이 나의 인생과는 크게 관련 없는 것이고 불결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모두 죽음이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었으며, 피할 수 없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우리의 인생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결국엔 우리 모두 죽습니다. 우리 모두. 죽음은 우리의 일부입니다. 내가 죽고 싶다고 하니까 다들 왜 그렇게 놀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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