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파파야 향기>_The Scent Of Green Papaya _1993
-감독 : 트란 안 훙
-주연 : 트란 누 엔케 (무이, 20살역), 만 상 루 (무이, 10살 역)
-등급: 12세 관람가
-러닝타임 :104분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줄거리
1951년 베트남 호찌민. 이 영화의 주인공인 "무이"라는 이름을 가진 7살 여자아이가 자신의 집을 떠나 도시의 한 가정의 하녀로 일하기 위해서 늦은 밤 어느 집에 도착하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무이는 그 집에서 오래 일해오던 그 집의 남자 주인의 무책임한 행실로 인해 집안이 여러 차례 불행했었음을 알게 되었고, 그래도 이제는 그 불행이 반복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찰나에 남자 주인이 전 재산을 빼앗아 가출 함으로 다시 한번 위기를 맞는다. 이후 여주인은 자신의 시어머니와 세 아이와 어렵게 살아가게 된다.
10년의 세월이 흘러 성장한 무이는 원래의 여주인 집의 가세가 계속 기울고 하녀를 계속 데리고 있을 형편이 되지 않자, 여주인 가족의 지인 이었던 피아니스트 쿠엔의 집에서 일하게 되고, 그는 무이가 어렸을 적부터 연모하던 인물이었다.
쿠엔은 약혼자가 있었지만 결국은 무이에게 끌리게 되고, 둘의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된다.
야무지고 기특한 무이
처음에 일을 배우기 시작할 때 혹여 실수하지 않을까 영화를 보면서 조마조마 했는데, 열 살도 되지 않은 아이가 자기 팔뚝만한 칼을 가지고 작지도 않은 파파야를 익숙하게 썰었다. 여자 주인이야 워낙 좋은 사람이었으니 무이같지 않은 하녀에게도 친절하게 대해줬을지 모르지만, 무이가 야무지게 일을 잘했기에, 살아 있었다면 무이와 동갑이었을 자신의 딸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커졌을 것이다.
호기심 가득한 무이의 시선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많은 사람들이 매료되었던 부분은 무이의 호기심 가득한 시선이었을 것이었으리라. 파파야를 손질한 마음 남은 부분을 어떻게 할까요? 물으니, 버리라는 말도 그냥 넘기지 않고, 파파야를 반을 썰어본 다음 그안에 가득한 씨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는 모습. 개구리, 귀뚜라미 등 모든 자연을 사랑스럽고 신기하게 바라보는 무이의 시선이 잊혀지지 않는다. 자신의 가족들과 떨어져서 어느 집의 하녀로 일한다는 것이 쉬운일이 아니었을 텐데, 때 묻지 않은 시선으로 모든 것들을 호기심과 애정 가득한 모습으로 바라 모습에 나까지도 정화가 되는 기분이 들었고, 무이의 시선을 따라 나도 마치 무이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가스라이팅인가.
아들이 집을 나간 것을 며느리의 잘못으로 돌리는 시어머니와 그 말에 마음 아파하며 흐느끼는 장면에서 저것이 바로 '가스 라이팅'이지 싶었다. 처음부터 자신의 아들과 며느리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였다며, 아들이 집을 나가게 된 것도 며느리의 잘못이라고 이야기하는 시어머니. 분노했을 법한데, 그래도 며느리 (여자 주인)은 그 말에 마음 아파서 흐느껴서 울며, 시어머니가 건강이 안 좋아서 사경을 헤매는 와중에도 지극 정성으로 보살핀다.
결국에는 가세가 기울어져 무이를 쿠옌의 집으로 보내기로 결정한 이후, 무이가 집을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통곡하던 모습이 마음이 아팠다. 남편도, 어찌 보면 미워했었을 수도 있는 시어머니도, 그리고 무이 마져도 떠나보내야 하는 그녀의 슬픔이 감히 상상하기 어려웠다. 무이를 떠나보내야 했던 것도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지. 그렇게 생각하여서 고통스러웠지 않았기를 바랄 뿐.
무이에게 글을 알려주는 쿠옌
아이에게 글을 알려주듯이, 순수한 무이에게 글을 알려주는 쿠옌의 모습에서 그녀를 많이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글을 읽을 수 있게 된 무이는 얼마나 더 다채로운 시각과 이해로 세상을 바라봤을지 궁금하다.
원래 나는 영화 속의 인물들 간의 대화 안에서의 핑퐁대는 서로의 케미스트리를 느끼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 영화는 한 편의 그림을 감상한 듯, 대사는 많지 않았지만 영상에 담겨있던 청량하고 맑은 분위기가 인상 깊었고, 영화를 본 다음에도 여운이 길게 남았다. 특히, 새소리, 피아노 소리, 바이올린 소리 등 다채로운 음악들과 그 안에 무이가 바라본 순수한 모습들이 영화에 대사가 채우지 못하는 공간을 가득 채웠다.
어느 혹자는 이 영화의 결말이 너무나 뜬금없고,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냥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무이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으로 마무리되어서 기쁘고 오히려 그래서 더 여운이 많이 남았다. 나에게 오랫동안 정갈하고, 청량하고 아름다운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무이의 반짝이던 눈이 분명히 그리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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