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틀담의 꼽추> <The Hunchback Of Notre Dame>,1996
-감독 : 게리 트레스데일, 커크 와이즈
-주연 : 톰 헐스 (콰지모도 목소리 역), 데미무어 (에스메랄다 목소리 역),
토니 제이 (프롤로 목소리 역), 케빈 클라인 (피보스 목소리 역)
-등급 : 전체 관람가
-장르 : 가족, 드라마, 애니메이션
-러닝타임 :90분
어렸을 적 보았던 애니메이션 중에, 이상하리만큼 충격적인 이미지로 내 기억에 오랫동안 남아있던 <노틀담의 꼽추>를 최근에 다시 보았다.
이 애니메이션이 개봉했을 때가 1996년이니, 초등학생도 되기 전인데, 언제 내가 이 애니메이션을 시청했는지는 분명하게 기억나지 않는다만, 아무래도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것 같다. 몇몇장면들이 꽤나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 분명한 것은 당시 감동을 받았다거나, 아름다워서 그 장면들이 뇌리에 박혔다기보다, 뭔지 모르게 기묘하다고 느꼈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구체적인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아무래도 애니메이션 속에 '콰지모도'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등이 굽고 기괴한 얼굴을 하고있는 꼽추때문이었을 것이라는 결론인데, 어렸을 적에는 뭣도 몰랐으니, 등이 이상하게 굽어있는 모습과 그의 외모가 충격적이었고 이를 무섭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실제로 애니메이션에도 그를 '괴물'이라고 부르는 장면들이 많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문득문득 내 기억 속에 무서움으로 기억되던 그 꼽추를 다시 보고싶었던 것은 내가 왜 무서워 했던 것이며, 지금은 나에게 이 애니메이션이 어떤 감상을 남길까에 대해서 궁금했기 때문이다. 내가 가지고 있던 무서움의 감정은 실은 별것이 아니었다라는 꽤 높은 확률의 확신도 한 몫 했다.
<노틀담의 꼽추> 프랑스의 작가 빅토르 위고가 1831에 발표한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15세기 프랑스의 사회상을 묘사하고 있다. 빅토르 위고의 유명작이라고 하면,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는 <레미제라블>을 꼽을 수 있겠다. 나는 원작 소설인 <파리의 노트르담>을 읽지는 않았지만, 위키백과 등을 통해 소설과 애니메이션의 이야기는 그 차이가 매우 큰것으로 확인하였다.
줄거리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파리의 영주 겸 판사인 프롤로는 집시들을 이단으로 간주하여 이를 소탕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 어느 날, 한 여자 집시가 파리에 몰래 들어오려고하다가, 프롤로에게 발각되어 도망치다가 프롤로의 발에 걷어차여 죽고 마는데, 프롤로는 그 집시가 안고 있던 것이 흉한 모습의 아이였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를 우물에 던지려고 하나, 부주교가 나타나 집시를 죽인 것도 모자라, 아이까지 죽이려고 하는 프롤로를 나무라고, 속죄의 의미로 그에게 그 아이를 키울 것을 명령한다. 그렇게 프롤로는 그 아이의 이름을 반만 인간이라는 뜻의 콰지모도라고 짓고, 노르트담 대성당의 종탑에서만 살게 한다.
이로부터 20년 후. 이러한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지 못하는 노틀담 대성당의 종지기 콰지모도는 단 한 번도 대성당을 나가본 적이 없다. 프롤로가 어렸을 적부터, 성당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못생긴 그를 학대할 것이므로 절대 나가면 안된다는 말을 귀에 못 박히게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의식중에 세뇌당한 그는 성당에서 성당밖의 행복한 사람들의 모습을 동경하는 눈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그러던 콰지모도는 파리에서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축제에 구경 나와서 아름답고 친절한 집시 에스메랄다에게 첫눈에 반한다. 그러나 그 축제에서 콰지모도가 분위기에 휩쓸려 바보들의 왕을 뽑는 행사에서 왕으로 뽑히고, 하지만 처음에 즐거워하던 사람들도 콰지모도를 공격하나 에스메랄다가 위기에 처한 콰지모도를 구해준다.
이를 모두 지켜보고 있던 프롤로는 콰지모도가 성당을 벗어나 밖에 나왔다는 것에 분노하고, 최근에 전쟁을 마치고 돌아온 군인 피버스에게 에스메랄다를 체포할 것을 명령한다. 에스메랄다는 병사들을 피해 성역인 노트르담 사원으로 들어간다. 피버스는 프롤로의 명령을 받았지만, 한편 에스메랄다의 매력에 반한 상태였고 그녀를 쫓아 노트르담 사원으로 들어왔지만, 뒤따라온 프롤로 때문에 피버스는 그의 명령에 따라 에스메랄다가 성역인 성당에서 나가면 바로 생포하기 위해 주변에 경비를 세운다.
콰지모도는 에스메랄다가 성당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한편 프롤로는 에스메랄다에게 욕망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런 욕망은 불경스러운 마음이며, 자신이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두려워하는데, 에스메랄다가 도망쳤다는 것을 알고, 그녀를 찾기 위해서 파리의 집과 건물들을 불태운다. 프롤로의 목적은 그녀를 무릎 꿇게 하거나, 반항하면 화형을 시켜버릴 생각이었다.
무고한 백성들을 죽일 수 없다고 프롤로의 명령을 거부하고, 가까스로 에스메랄다의 도움을 받고 도망가지만 화살에 맞고 강에 빠지게 된다. 다행히 에스메랄다가 그를 구조하여, 그를 데리고 성당으로 와서 콰지모도에게 피버스를 숨겨달라는 부탁을 한다. 콰지모도의 도움으로 성당에 숨을 수 있게 되었지만, 피버스와 에스메랄다가 키스하는 모습을 보고 에스메랄다를 사랑했던 콰지모도는 큰 슬픔에 빠진다.
하지만 슬픔에 빠져있을 시간은 없었다. 콰지모도와 피버스는 프롤로가 집시의 은신처, 즉 기적의 궁전의 위치를 알아냈고, 다음날 새벽에 천명의 군사를 데리고 그곳에 쳐들어 갈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에스메달라를 구하기 위해 기적의 궁전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그들은 프롤로의 첩자로 의심받고 사형에 처할 위기에 처하지만, 에스메랄다가 적시에 나타나 그들이 무고하다는 것을 알린다. 하지만 콰지모도를 미행한 프롤로와 군사들이 들이닥치고, 그들과 집시는 체포된다.
다음 날 프롤로는 에스메랄다에게 자신과 화형 중에서 선택하라고 했지만, 에스메랄다가 프롤로를 선택할리가 없었다. 결국 에스메랄다 다리 밑에 쌓인 장작은 불타고, 그 모습을 보고 콰지모도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밧줄을 타고 날아가 극적으로 그녀를 구한다. 그리고 성역인 성당으로 데리고 간다. 프롤로는 그녀를 죽기기 위해 성당으로 들어오지만, 결국 성당에서 추락하여 죽음을 맞이한다.
그렇게 파리는 평화를 되찾고, 콰지모도는 에스메랄다와 피버스의 관계를 축복해준다. 콰지모도는 에스메랄다의 도움으로 용기를 내어 성당 밖으로 나가고, 그곳에서 따뜻한 관심을 받는다.
편견 깨부수기
평생을 세상을 어둡고 잔인한 곳이라고 프롤로에게 세뇌, 즉 소위 말해 '가스 라이팅'을 받고 자란 콰지모도가, 당차고 아름다운 집시인 에스메랄다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세상이 아름다운 것임을 자각하고, 안타깝게도 짝사랑하는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에 슬픔도 겪지만, 이를 통해서 성장하여 자신이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서 만들어진 '세상은 잔인한 곳'이라는 편견을 깨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영화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괴물과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괴물은 누구이며, 사람은 누구인가?
꽤 오랜 세월 후에 영화를 다시 보니 내가 어렸을 적부터 콰지모도에게 가지고 있던 무서움이라는 감정도 단지 '편견'이었던 것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아이들이 나와 같을 수야 없겠지만, <노틀담의 꼽추> 애니메이션은 조금 큰 이후에 보면 더 좋을 것 같다는 것이 개인적인 의견이다. 물론 나와 같은 어른들이 정의로운 사회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애니메이션으로, 이를 아이들에게 권유하고 싶어질 수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순수한 아이들에게는 혼란스러움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전체 관람가라고 하지만 말이다. 물론 어렸을 적에 느꼈던 나와 비슷한 공포감에 대한 감정에 의문을 품고 시간이 흘러 이 애니메이션을 다시 보고 그 편견을 깰수도 있겠지만, 모든 사람에게 그 시간이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세상에는 볼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쉬이 다시 보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혹시 나와같은 사람이 있다면, 조금 수고스럽더라도 이 애니메이션을 다시 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영화 이어보기
(+) 괴물은 누구이며, 사람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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