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 <The Name Of The Rose>,1989
-감독 : 장 자크 아노
-주연 : 숀 코네리(윌리엄 역), 크리스찬 슬레이터 (아드조 역)
-등급 : 청소년 관람 불가
-러닝 타임 :130분
-장르 : 스릴러
영화 <장미의 이름>은 1980년 이탈리아에서 출판되었던 움베르토 에코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였으며, 중세 시대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다.
정확한 시점이 기억이 안 나지만 한 십 년 전쯤에 이 영화를 보았었고, 그 내용을 전부 이해하지 못했었지만, 이 영화가 주는 신비스럽고 미스터리 한 분위기가 좋았었다.
그랬기에 이후에 한동안 자주 가던 헌책방에서 <장미의 이름> 1편을 발견하고, 책도 읽어야지라는 심정으로 고민도 없이 냅다 구매를 했었다. 하지만, 그 책은 아직도 한번도 나에게 제대로 읽히지 않은 채 여태껏 본가 책꽂이에 꽂혀있는데, 이렇게 안 읽은 책이 있는데도, 계속해서 욕심스럽게 책을 사들였더니, 결국에는 아마도 분명히 <장미의 이름>을 당장은 읽을 일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계기로 나의 무계획적이고 탐욕스러운 책 욕심에 대해서 반성하게 됐기도 하다.
하지만 문득문득 예전에 봤던 영화의 일부 장면들이 회상됐지만, 그 줄거리가 뚜렷하게 기억이 안나는 아쉬운 마음에 책은 당장에 못 읽더라도 영화는 다시 보자는 생각을 했다.
'영화'가 있어서 어찌나 새삼스럽게 감사한 마음이 드는지.
물론 원작 소설을 읽는 것에 비교하면 그 깊이를 감히 비교할 수 없겠지만,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보고나면, 내 상상력은 감독이 연출한 스크린 안에 갇혀 좁아지는 듯한 기분도 들지만,
무엇보다 빠르게 그 내용을 알 수 있으니 매우 유용하고 실용적인 매체(?)라고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영화 같은 경우 속도는 그렇게 빠르게 진행되지는 않으나, 등장인물도 많고, 이름 또한 생소하여 생각보다 그 흐름을 이해하기에 쉽지 않다. 대략적인 배경을 알고 시청한다면, 훨씬 수월하게 영화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니, 아래 내용을 잠깐이라도 확인하고 보는 것을 추천드리고 싶다.
당시는, 교회의 청빈을 주장하는 파와, 교회의 청빈에 반박하는 교황청 및 다른 교단들의 반목이 심화된 상황이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베네딕트 수도원에 각 교단이 모여 토론을 하기로 한 상황이다.
프란시스코 수도회의 수사인 윌리엄은 자신의 수련 제자인 아드조를 데리고 베네딕트 수도원에 들른다. 그들은 당시 교회의 청빈을 주장하는 프란시스코 수도회 소속이었다. 영화를 시청할 때 그 두 등장인물이 허름하고 검소한 복장을 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보자.
줄거리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327년. 이탈리아 북부 외딴 곳 베네딕트 수도원.
그곳에 윌리엄 수사(숀 코네리) 와 그의 젊은 제자인 아드 조(크리스천 슬레이터)가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사절단으로 도착한다. *수사 (修士) : 청빈, 정결, 순종을 서약하고 독신으로 수도하는 남자.
그곳에 도착한 윌리엄은 단번에 최근에 누군가가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파악한다.
안타깝게 죽음을 맞이한 사람은 다름아닌 사본 채식사인 아델모였는데, 그 사건 이후에 수도원은 두려움과 불안으로 술렁이기 시작했음을 토로한 베네딕트 수도원 원장은, 혜안이 있는 윌리엄에게 이 사건을 해결해 달라고 요청한다.
*채식사 (彩飾師) : 아름다운 빛깔을 칠하여 꾸미는 일을 하는 사람.
윌리엄이 본격적으로 수사를 시작도 하기 전, 그리스어로 쓰여진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들을 번역하는 것에 전문이었던 번역가 베난티오가 죽음을 당한다. 윌리엄은 이에 장서관의 사서와 보조사서의 행동이 수상하다고 느끼고, 모두가 잠든 시간 필사실로 들어가는데, 그곳에서 수상한 메모가 적힌 양피지를 발견하게 된다.
이후 보조사서인 베렝가리오도 죽음을 당하고, 죽은 시체들에서 동일하게 혀와 손가락 끝에 검은 잉크자국이 배어 있다는 점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사서 외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는 필사실 위에 위치한 장서관에 영적으로 위험한 책들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직감한다.
장서관 사서들인 세베리노와 말라키아 역시 차례로 시체로 발견되고, 살인 사건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게다가 두 수도승이 이단 심문에서 유죄로 받고, 마을 처녀 또한 마녀로 선고된다. 그들은 결국 화형 선고가 예정되고, 세 사람의 온몸이 꽁꽁 묶이고 발아래 장작이 쌓인다.
한편 윌리엄과 아드소는 혼란한 틈을 타 장서관으로 잠입에 성공하고, 여러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그 '금서'에 다다르게 되지만, 그곳에는 이미 지름길을 알고 있는 나이 많은 호르헤 수사를 만난다.
그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책은 바로 희극을 진리의 도구로 설명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부였다.호르헤 수사는 신의 존재가 부정될 수 있는 '희극'이란 것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독이 묻어있는 책을 차라리 씹어 삼켜버리는 것을 택한다. 그리고 남은 책들과 기록들도 유출되지 않도록 장서관에 불을 질러버린다.
인간의 전유물. 웃음
호르헤 수도사가 자신의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절대적으로 숨겨야 했던 금서의 정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2부 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2부에는 어떤 내용이 적혀있었던 것일까?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있을 뿐, <시학>2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시학>2부가 있었다면 어떤 일이 있었을까라는 움베르코 에코의 상상으로 <장미의 이름> 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듯, '비극'을 집중적으로 탐구한 책인데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있듯, 감정의 정화를 의미하는 '카타르시스'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했다) , 원작 소설 작가인 움베르코 에코는 <시학>2부는 비극의 반대인 '희극'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을 가정했다.
호르헤 수도사는 '웃음'은 두려움을 없애기 때문에 두렵다고 했다.
악마에 대한 두려움이 없으면 신은 필요하지 않으며, 따라서 신앙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웃음에 관대한 윌리암과 프란체스코회에 대해서 호르헤는 이를 못마땅해하며, 윌리암과 논쟁을 벌인다.
"웃음은 악마의 바람으로 얼굴의 근육을 일그러뜨려 원숭이처럼 보이게 하지요. "
"원숭이는 안 웃습니다. 웃음은 인간의 전유물입니다."
<장미의 이름>의 배경이 된 14세기는 중세시대로 종교로 인해 인간성이 억압되던 시대였다. 당시 그리스도교에서 신은 우주의 창조주로서, 인간이 감히 대적할 엄두도 못 내는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악마에 대한 두려움, 신에 대한 경외감을 없앨 수 있는 '웃음'이라는 것 또한 부정적인 것으로 치부되었다.
이후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14~16세기에 드디어 종교에 억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고 말살되었던 인간성을 되찾으려고 하였던 르네상스 운동이 서유럽에서 나타났다. 마지막 수도원과 장서관이 타버리는 장면 또한 이후 어떤 시대로의 변화가 있었을지 예상할 수 있으며, 원작 소설의 마지막 문장인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에서, <The Name Of Rose>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다.
전지전능한 신을 섬기지만, 웃음이라는 행위를 '인간의 전유물'로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는 것.
하지만 과거에 자신이 종교 재판관이 있을 때, 고문을 받고 나서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었으며, 결국에는 신을 거부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장미로 이름 지어진 종교의 권위가 덧없어지기 전, 중세와 근대 사이에 있던 윌리엄에게서 그 시대 중심에서 신과 인간. 두 모두를 있는 그대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려 했던 한 지식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드 조가 베네딕트 수도원을 나와 스승 윌리엄과 함께 어디론가 떠나면서, 소녀를 우연히 만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그 여자는 자신의 몸을 팔아서 수도원에서 먹을 양식들을 구해갔던 가난한 집의 딸이었다. 아드 조는 그 소녀를 사랑하고 그녀를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었지만, 결국 그 소녀의 옆에 남는 것이 아닌, 자신의 스승을 윌리엄을 따라가기로 결심한다.
아드소는 그때의 그의 결정으로 많은 지혜와 진리를 배웠으니 후회한 적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그의 마지막 말이 아련함을 남긴다. 종교는 덧없는 이름만 남았지만, 아드소에 기억에는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속세의 사람의 이름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 애잔함이 당시 시대상 안에서 희미하게 빛난다.
" 속세의 내 유일한 사랑이었던 그녀. 그럼에도 지금까지도 그녀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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