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클로> <Cyclo>, 1995
-감독 : 트란 안 홍 (Trần Anh Hùng)
-주연 : 양조위 (Tony Leung Chiu Wai), 트란 누 옌케(Trần Nữ Yên Khê), 르 반 록 (Lê Văn Lộc)
-장르 : 드라마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러닝타임 : 120분
언제 끝날지 그 끝이 안보이던 코로나. 그 때문에 꽤 오랫동안 내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베트남 호치민에서는 여행을 온 외국인들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금년 초부터 베트남 정부가 입국자들에 대한 모든 규제와 요구사항을 완화시키면서 호치민은 다시금 코로나 이전에 활기를 되찾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이를 확신할 수 있는 것 중 한 가지는 도심에 '씨클로'가 다시 등장했다는 것이겠다.
3륜 택시를 뜻하는 Cyclo는 베트남어로는 그 원래 단어의 소리를 본따서 xích lô라고 불리는데, 자전거처럼 페달을 밟아 운행하는 베트남식 택시라고 생각하면 된다. 과거에 씨클로는 베트남의 중요한 이동 수단이었지만, 현재는 많이 남아있지 않고, 관광 상품으로써 외국인들의 수요에 의존하고 있다.
실제로 베트남의 명물이라고 불리기도 하여, 여행자들이 한 번쯤 체험해보았으면 하는 것 중에 하나인데, 물론 다른 교통수단보다 빠르게 이동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고, 뜨거운 햇빛에 쉽사리 용기가 안 날 수도 있지만, 베트남의 풍경을 감상하며 이동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그 자체로 이색 체험이기에 여행객의 관심을 끄는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바가지요금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는 후기를 전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영화 <씨클로>는 씨클로를 운전하는 베트남 빈민층 소년의 눈을 통하여 현대화에 가려진 1990년 대 베트남 사회의 어두운 면을 그리고 있다. 실제 씨클로가 교통 수단이었던 시절의 모습을 볼 수 있고, 개봉한지 약 17년이 된 작품이기는 하나, 호치민의 현재 모습을 아는 분들이라면 이보다 훨씬 더 전 영화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처럼 호치민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고 ‘교통 수단’으로의 씨클로는 거리에서 사라진지 오래긴하다.
1995년 제52회 베네치아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을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이지만, 개봉 당시 자국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했다 하여 베트남 정부로부터 상영금지를 당하였었다고 한다.
★★★★
* 포스팅하는 날짜 (22년 10월 7일) "키노 라이츠" 앱 기준
시네 폭스에서 구매 가능
줄거리
아들아. 인력거는 우리의 밥줄이었다. 난 밤낮없이 열심히 일했지. 페달을 밟는 게 삶의 전부였어.
아침에 못 일어날 정도로 등이 아픈 적도 있었지만, 정처없이 달리는 게 바로 내 삶이었단다.
난 너한테 물려줄 거라고는 없구나. 그래도 네가 가치있는 일을 찾게 되길 바란다.
부잣집 마님에게서 빌린 씨클로로 돈을 벌고, 일정 금액을 매일매일 마님에게 상납하며 살아가는 18세의 소년(르 반 록).
씨클로를 끌다가 트럭에 치여 세상을 떠난 아버지는 소년에게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았지만, 그는 그의 아버지를 이어 씨클로를 운전하며 시내를 누빈다. 소년의 어머니도 그를 낳다가 세상을 떠나, 소년은 자전거 바퀴를 수리하는 할아버지, 구두를 닦는 여동생, 낮에는 공부하고 저녁에는 일하며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는 누나(타란 누 옌케)와 함께 살고 있다.
어느 날. 소년은 자신의 유일한 생계수단인 씨클로를 건달패에게 속수무책으로 빼앗기고, 마님으로부터 자신의 씨클로를 잃어버린 대가로 자신의 수하에 있는 시인(양조위)과 일할 것을 요구받는다.
소년은 황당하게도 씨클로를 훔쳐간 건달 또한 마님 수하에 있는 일원이었으며, 이 모든 것은 마님이 꾸며낸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던 그는 결국 시인 갱단의 심부름을 하기 시작하게 된다. 마지못해 협조하던 소년이었지만, 씨클로 운전사를 했던 경험을 살려, 지름길로 잘 도망 다니며 시인 갱단의 임무들을 성공시키자,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위험한 범죄의 세계에 점점 빠져든다.
한편 가난과 절망이라는 갑갑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범죄의 길을 택한 시인은, 소년의 누나를 사랑하지만 한편으로는 돈을 벌기 위해 그녀에게 다른 남자들의 즐거움을 충족시켜주는 일을 하길 권유한다. 다만 절대로 정절을 잃어서는 안 됐다.
이런 선을 넘은 요구에 소년의 누나는 시인을 떠나도 모자랄 지경이었지만, 소년의 누나는 시인에 대한 순수한 사랑 때문에 그가 알선하는 일을 거부하지 못하고, 오히려 진퇴양난의 현실 속에서 괴로워하는 시인을 위로하고 감싸준다.
동시에 계속해서 범죄의 세계로 빠져들던 소년은 아버지가 트럭에 치이게 되는 꿈을 꾸고, 가치 있는 일을 찾길 바란다는 그의 말을 떠올리기라도 한 듯, 마님에게 찾아가 갱들과 협조하여 돈을 버는 것이 아닌, 예전처럼 씨클로를 몰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불행하게도 시인은 자신이 알선한 일로 인해 자신이 사랑하는 소년의 누나가 다른 남자에게 순결을 잃자, 이에 비관하여 방화를 저지르고, 그 화염 속에 몸을 내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운명의 장난처럼, 마님의 아들 또한 동네 어린아이들의 장난에 놀라 찻길로 달려 나가게 되었다가, 시인이 지른 불을 끄러 가던 소방차에 치여 목숨을 잃는다.
그렇게 자신의 아들과 시인을 잃은 마님이 소년을 놓아주게 되고, 자신이 바라던 대로 갱단에서 벗어나게 된 소년은 다시 씨클로 운전사로 도시를 누빈다. 자신의 아버지가 죽기 전까지 페달을 밟았던 것처럼.
성장의 이면
쇄신이라는 뜻을 가진 '도이 머이(Đổi mới)' 정책은, 1986년에 베트남 정부가 시작한 개혁 개방으로, 이 때를 기점으로 베트남은 실제로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씨클로> 영화는 1990년대 초 베트남을 배경으로 한다. 따라서 당시라고 하면 베트남에서 도이머이 정책이 시행이 된 이후이다. 이를 대변하듯 영화 속 호치민 시의 거리에는 씨클로, 오토바이, 자전거, 차가 모두 등장한다. 당시 베트남이 겪고 있던 과도기적인 사회의 모습을 단면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그러한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소년, 소년의 누나, 시인. 그들은 셋은 자의적이던지, 아니던지를 떠나 모두 도덕적이지 못한 방법으로 돈을 버는 경험을 한다.
간혹 어렸을 적에 코피를 자주 흘리는 아이들이 있는데, 크고 난 다음에는 그 증상이 자연스럽게 없어진다는 것은 여러 사람에게 보편적인 정설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어렸을 적부터 코피를 자주 흘리던 시인은,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자주 코피를 흘리는데, 이것은 바로 생물학적인 나이는 어른이지만, 자기 스스로 정당한 방법으로 돈을 벌지 못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여인도 사랑을 빌미로 하여 돈벌이 수단으로 몰아넣었던 시인이 미성숙한 어린아이와 다름없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시인이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인 소년의 누나를 한 술집의 남자에게 넘겨주는 장면에서 흘러나오던 Radiohead의 <Creep> 노래의 "난 겁쟁이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But I am a creep. I am a weirdo) " 가사에서, 돈이라는 유혹에 빠져 타락하고 말았던, 우매하지만 동시에 애처롭고 가여웠으며, 비틀비틀 위태로웠던 시인의 자조를 듣는 듯했다.
시인은 자신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비관하여 목숨을 끊었지만, 그 덕분에 소년과 소년의 누나는 가까스로 사회의 어두운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무래도 분명한 것은,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간 소년과 소년의 누나는 다시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하루살이와 같은 삶을 다시 시작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들은 끝없이 죄의식과 자기 비관, 그리고 수치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어둠의 세계에서 벗어났다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더 성장한 모습으로 일상에 복귀했다는 점일 것이다. 어디론가 갑자기 사라졌던 고양이가, 더 멋진 모습이 되어서 돌아온 것처럼 말이다.
어제 고양이가 돌아왔다. 죽은 줄만 알았는데. 전보다 더 멋진 모습으로. 몰라보게 달라져서...
가능성의 이면
우연히 최근에 한 유튜버가 왜 한국인들이 '돈'에 집착을 하는지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분석한 내용을 담은 동영상을 보았다. 그 유튜버는 그 이유가 바로 한국은 아직 계층이동의 기회와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아등바등 노력하고 있는 것이고, 그것이 돈에 대한 집착으로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돈에 집착하는 것을 무작정 나쁜 현상이라고 규정할 필요도 없는 게, 그것이 바로 아직까지는 계층을 이동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사회라는 반증이기도 하다는 말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가능성을 쟁취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들이 떠오르면서, 한편으로 인생에서 소소하게 누릴 수 있는 행복들을 유예시키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걱정도 들었다. (비단 나조차도 그러고 있으니까 말이다. ) 게다가 그렇게 손에 잡힐 듯한 가능성은 계속해서 끊어내지 못하는 희망고문을 불러일으키고, 또한 우리들을 쉽게 유혹과 시험에 빠져들게 하지 않는가.
영화 <씨클로>에서 과도기적이고 역동적인 베트남 사회 분위기 속에서, 기회와 가능성을 잡고 돈을 벌어보고자 하다가, 정당하고 깨끗하지 못한 행위지만, 쉽게 돈을 버는 유혹에 빠져들었던 젊은이들을 보았다. 하지만 이것이 비단 베트남 사회의 문제뿐이었을까? 아니면 지금 현재도 이러한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가능성이 열려있는 사회, 발전하는 사회는 그만큼 위험한 세계로 발을 헛디디기가 쉽다는 이면이 있다. 어떤 사회던지 이러한 모습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유혹에서 빠져나온 사람, 그리고 자멸한 사람이 있다. 그들에 대한 판단과 감상은 우리들의 몫으로 남았다.
영화 더 이해하기
(+) 양조위가 10월 6일 부산에서 열린 BIFF에 방문했다고 하고, 이는 18년 만의 방문이라고 한다.
실은 양조위가 부산에 오는 소식은 미리 알지 못했는데, 그가 약 20년 전에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인 <씨클로>를 리뷰하다 보니, 그의 한국 방문 소식이 더 반갑게 느껴진다. 영화 속에서 양조위는 베트남 사람으로 등장할까 궁금했었는데, 실제로 베트남인으로 연기하며, 베트남어 또한 구사한다. 대사는 굉장히 적은 편이지만, 듣기에 굉장히 자연스러웠는데, 어떻게 습득했을까 궁금하다.
(+) 영화 속에 등장하는 소년, 소년의 누나 그리고 시인은 모두 '돈'의 노예나 다름없다. 이렇게 가난 때문에 처참하게 타락해가는 안쓰러운 인생을 보고 있으면, 영화 <연인>에서의 소녀가 떠오른다. <씨클로>나 <연인>이나 두 영화 모두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명확하게 거론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 <씨클로> 영화는 <그린 파파야 향기>로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세자르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베트남 출신 프랑스 영화감독 트란 안 훙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나에게 <그린 파파야 향기>는 영화는 '싱그러움 그 자체'로 기억되는데, 영화 <씨클로> 속의 음울한 분위기는 이와 너무나 대조적이라 같은 감독의 작품이 맞는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트란 안 훙과 트란 누 옌케는 <그린 파파야의 향기>를 찍으면서 사랑에 빠져 결혼했으며, 트란 안 훙 감독의 또 다른 영화 <여름의 수직선에서>도 베트남을 배경으로 담고 있는데, <그린 파파야 향기>, <씨클로>와 함께 베트남 3부작으로 불리며, 세 영화에서 모두에서 트란 누 옌케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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