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저/박병덕 역
민음사 / 2002년 01월 31일
원서 : Siddhartha
그럴 때가 있다.
무엇인가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성과는 없는 것 같고, 아무것도 제대로 끝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때.
아마도 각자가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러한 정체기를 극복하는 방법이 있을 텐데, 나는 부담스럽지 않은 두께의 책을 구매하여 그 책을 빠른 시간에 독파하는 방법으로 태세를 전환해 보고자 한다. 얄팍한 책일지라도, 다 읽고 나면 성취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성취감은 다시 긍정적인 기운을 부르니까 말이다. 그렇게 어떤 작은 것이라도 끝내 보고 싶었던 과거 어느 날. 나 자신을 위한 선물처럼 <싯다르타>를 구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책의 두께만 보고 무턱대고 골랐던 것은 아니다.
당시 비문학이 아닌 소설. 특히 고전 소설들에 한창 매료되어있을 때였는데, 그중에서도 개인의 영적인 성장 과정을 묘사한 헤르만 헤세의 작품들이 궁금해하던 차였다.
<싯다르타>는 헤르만 헤세가 1922년 발표한 일종의 종교적 성장소설이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서 제1계급에 속하는 성직자 계급의 아들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출가하는데, 이후 먼저 해탈에 경지에 오른 불교 창시자 석가모니를 만나 그의 깨달음에 균열이 있음을 인지하고, 수행이 아닌 다양한 인생 경험을 거쳐 깨달음을 얻는다는 내용이다.
싯다르타는 세계의 단일성을 깨닫는다. 단일하기에 대립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이 단일성의 한 극으로서 똑같이 긍정된다고 이야기한다.
지금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
"이 돌멩이는 돌멩이다. 그것은 또한 짐승이기도 하며, 그것은 또한 신이기도 하며, 그것은 또한 부처이기도 하다. 내가 그것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까닭은 그것이 장차 언젠가는 이런 것 또는 저런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이미 오래전부터 그리고 항상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
싯다르타는 세계가 단일하다고 인식하는 것은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구별할 필요성’을 초월하게 하고, 그렇게 어떤 것이든 나와 동류라는 인식을 생기게 하며 이로써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고 이야기한다. 즉, 단일성을 완성하는 것은 사랑이라고 이야기하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으로 여긴다.
그 사물들이 나랑 동류의 존재라는 사실, 바로 이러한 사실 때문에 나는 그 사물들을 그토록 사랑스럽게 여기는 것이고 그토록 숭배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기는 거야. 그 사물들이 나와 동류라는 사실 때문에 나는 그것들을 사랑할 수 있어. -- 이 세상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일, 이 세상을 설명하는 일, 이 세상을 경멸하는 일은 아마도 위대한 사상가가 할 일이겠지. 그러나 나에게는,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것, 이 세상을 업신여기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를 미뤄하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와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탄하는 마음과 외경심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것, 오직 이것만이 중요할 뿐이야.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는 석가모니 전설과는 어떻게 다를까 가 궁금하여, 이전에도 소개하였던 채사장의 <열한 계단> 책상의 세 번째 계단으로 소개된 '불교'파트의 도움을 받아 석가모니 전설을 다시 기억 해내 보았다.
석가모니의 전설에 따르면 기원전 6세기에 히말라야 산기슭의 작은 나라 샤키아족의 왕자로 태어난 붓다의 이름이 고타마 싯다르타였다. 헤르만 헤세는 부처 석가모니의 전설에서의 부처의 이름인 싯다르타를 따와, 줄거리와 세세한 부분, 그리고 해탈 과정까지 그대로 자신의 소설 <싯다르타>에 재현시켰으나, 그 이후에 깨달음의 구체적인 내용은 실제 부처의 전설과는 다르다.
전설에서의 싯다르타, 즉 붓다는 고정된 세계관과 고정된 자아관을 버리라고 이야기한다. 세상은 고정되지 않으며, 불변하는 영혼은 존재하지 않음을 받아들여야지만 집착과 욕망이 소멸되고 고통이 사라지고, 그렇게 윤회의 고리가 끊어지고 깨달음에 이를 수 있으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정진해야 한다고 말이다. 앞서 이야기한 소설 <싯다르타> 속의 세계 단일성, 동시성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책 후반부의 '작품 소개'를 통해서 소설 속 싯다르타가 이야기한 내부와 외부가 신비적으로 합일되는 '단일성'이라는 개념은, 신적인 총체성 속으로 몰입하여 그 속에 안정을 얻는 서구적인 사유와 일치하는 것인 점을 알게 되었다. ("인간의 모든 노력과 목표는 주 하나님 안에서의 영원한 안정")
그렇기에 이 소설은 "예수와 부처의 종합"이라고 불리기도 한다는데, 작품 소개에서는 <싯다르타>에서 그려내고 있는 것은 어느 종파에도 속하지 않는 극히 개인적인 헤세 자신의 독자적 신앙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실제 헤세는 스스로의 체험이 없이는 계속해서 <싯다르타>를 집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끼고, 1년 반의 자기 체험 시간을 거친 후, 소설을 다시 쓰기 시작하여 1922년에 출간을 하였다고 한다.
"진리는 가르칠 수 없다는 것. 이 깨달음을 나는 일생에 꼭 한 번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했다. 그 시도가 바로 <싯다르타>다. - 헤르만 헤세
실은 소설 <싯다르타>가 석가모니의 전설과 어떻게 다른지를 알아본다거나, <싯다르타>가 어떻게 기독교적인 색채를 담고 있는지에 대해서 탐구해본다던가와는 별개로 <싯다르타>는 단순하게 '읽는 즐거움'이 있는 책이다.
진지한 자세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출가하는 싯다르타의 뒤를 쫓아 그가 겪는 여정을 따라가 보자. 이것이 바로 소설을 읽는 즐거움이구나 라는 것을 깨달을 수도 있다. 게다가 소설 속에 실제의 싯다르타의 대사들을 읽으면 그 묘사가 무척이나 신비로워서 자연스럽게 내용에 빠져들게 된다. 실은 이 경험들만으로도 소설을 읽는다는 충분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아마도 분명히 또 <싯다르타>를 읽게 될 것인데, 그 이유가 대단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단지 흥미로운 싯다르타의 여정을 다시 따라가 보고 싶고, 그 안의 마치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유려한 문장들을 다시 마주하고 싶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어디론가 잠시 떠나서 머리를 식히려고 하는 분이나, 성취감을 찾으시려는 분들, 아니면 단순히 그냥 제목에 이끌리신 분들이게 <싯다르타>가 좋은 친구가 되어주기를 바라본다. 나에게 <싯다르타>가 그러하였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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