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와 맥주>
서머싯 몸 / 황소연 역
민음사 / 2021.09.10.
에드워드 노튼과 나오미 왓츠 주연의 영화 <페인티드 베일> 은 서머싯 몸의 대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인생의 베일>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실은 내가 작가 서머싯 몸에 대해 관심이 생기게 된 계기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부터였으니, 실제 1년도 채 되지 않은 것이긴 하다.
그렇게 영화를 인상 깊게 본 이후, 원작 소설인 <인생의 베일>을 읽어야지 하면서, 그의 작품들을 자연스럽게 살펴보다가 유난히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이 있었으니, 그 책이 바로 <케이크와 맥주>이다. 이 책 역시 민음사에서 번역 출판된지는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케이크와 맥주라니. 그 조화가 생경한 느낌을 들게하면서도, 또 나름 케이크의 달콤함과 맥주의 쌉쌀함이 묘하게 잘 어울릴 것도 같기도 했다. 게다가 그 무엇보다 도대체 이 소설이 무슨 이야기 일까라는 것이 궁금했고, 경쾌한 색깔로 가득한 책 표지에 마음이 저절로 이끌렸기도 하다.
<케이크와 맥주>는 그다지 길지도 않을 뿐더러 등장인물도 많지 않고 이야기가 복잡하지 않아 막힘없이 술술 가볍게 읽히는 소설이다. 특히나 중간을 지나가면서 읽는 것에 더 속도가 붙는다. 그렇게 순식간에 읽고났더니 약간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곧이어 이 소설이 이야기하는 바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이어졌다. 특히 제목 <케이크와 맥주>가 뜻하는 것이 도대체 뭘까 궁금했다. 그 단서는 소설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었다. 그런 의문과 호기심을 안고 작품 해설 파트를 이어서 읽었다. (작품 해설이 없었으면, 세계문학 전집 시리즈를 읽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너무나 좋아하는 파트이다. 이어지는 이야기들 또한 많은 부분에서 작품 해설의 도움을 받았음을 우선 밝힌다.)
소설은 유명한 작가의 생애를 이야기로 다루고 있는데, 토머스 하디와 휴 월폴이라는 실존 인물을 풍자적으로 그렸다는 것으로 추정되어 많은 파장을 일으켰었다고 한다. 휴 월폴이 <케이크와 맥주>를 받아 든 첫날.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하며, 서머싯 몸에게 편지를 보내서 이 책의 출판을 막으려고 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렇게 의미가 궁금했던, 그리고 내가 이 소설을 읽게 만들었던 결정적인 계기인 <케이크와 맥주>라는 제목은, 알고보니 셰익스피어의 희극 <십이야>에서 최초로 등장했던 관용구로 유희와 쾌락, 덧없음을 뜻한다고 한다. 실제 서머싯 몸은 쾌락의 가치가 경시되어 관념과 도덕에 치우치는 위험을 경계했다고 하며, 자신 또한 온갖 종류의 감각적 쾌락을 체험하려 노력했다고 전해진다. 실제 소설에는 정조 관념이 중시되었던 빅토리아시대에 ‘케이크와 맥주'에 충실한 삶을 살아갔던 로지 드리필드라는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가 어떤 캐릭터인지 알 수 있는 몇 문장을 덧붙여 본다.
"어차피 100년 후엔 우리 모두 죽을 텐데 뭐가 그리 심각해? 할 수 있을 때 우리 좋은 시간 보내자. "
"그녀는 아주 단순한 여자였어요. 건강하고 천진한 본능을 가진 여자 말입니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걸 좋아했죠. 사랑을 사랑했어요."
로지 드리필드는 결혼 전 술집에서 일하면서 유부남인 조지 켐프와 내연 관계를 맺고, 결혼한 이후에도 자유롭게 남자들과 잠자리를 하면서 여러 명의 애인을 뒀던 여성으로 그려진다. 해설에서는 그녀의 육체적 자유분방함은 인생을 관조하는 초연함과 이해, 관용에서 비롯된다고 하며, 따라서 그녀를 쾌락만을 쫓는 이기적인 인물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데, 나는 이런 로지에게서 일종의 허무주의가 느껴졌으나,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따랐다는 점에서 작품 해설에서 언급되어있듯 로지가 "초월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어느 정도 동의하긴 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초월적 세계관은 과연 옳을까? 아니면 내가 서머싯 몸이 경계했던 쾌락의 가치를 경시하고 관념과 도덕에 치우치는 위험을 저지르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에도 이르렀다. 하지만 결국은 나는 누구를 험담하거나, 미워하지는 않았고, 다만 천진하고 해맑았지만, 감정에 충실하려고 하는 로지의 모습이 화자의 시선에서 너무나 미화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이 소설을 읽으시는 분들에게 로지 드리필드는 어떤 인물일까가 궁금하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였던 순수했던 인물로 바라보는지, 짧은 인생의 덧없음을 이해하고 삶을 관조적인 자세로 초월하여 바라봤던 인물로 바라볼 것인지, 그저 죄책감과 수치심이 부족하고 사생활이 문란했었던 인물로 볼 것인지, 아니면 그저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볼지 등에 대해서 말이다. 물론 재미있었고, 실은 그것만으로도 소설로서의 의미가 충분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케이크의 달콤함보다는 맥주의 쌉쌀한 더 강하게 느껴지던 소설이었다. 하지만, 책의 흡입력은 다른 서머싯 몸의 소설도 읽고 싶게 하였고, 특히나 이 소설의 번역가인 황소연 번역가님의 번역 작품을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했는데, 이것은 내가 건진 값진 케이크처럼 달콤한 수확들인 것은 분명하다.
책 이어 보기
(+)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 시리즈 /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https://with-evelyn.tistory.com/143
(+) 서머싯 몸의 <인생의 베일>을 원작으로 한 영화 <페인티드 베일>
https://with-evelyn.tistory.com/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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