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 유숙자 옮김
민음사 / 2009.01.20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은 꽤나 예전에 구매했었다. 책에 찍힌 도장을 찾아보니, 2016년 10월이다.
날씨가 쌀쌀해질 때쯤에 이 책을 서점에서 설렘을 가지고 사 왔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이 어떤 이야기일까라는 호기심은 뒤로한 채 단지 이 책의 두께가 전달하는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느낌과, 책 제목과도 같이, 눈이 날리는 시골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책 표지의 그림에 매료되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름 당장이라고 읽어버릴 것같이 호기로운 마음으로 들고왔던 책이었는데,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너무나 함축적으로 배경을 묘사한 첫 장부터 나는 집중하지 못했고, 그렇게 몇 번을 시도했었으나 포기했었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 이후 이 책은 나의 본가 책장에서, 내 눈에 띌 때마다 오래 묵혀둔 숙원사업과 같이 은근한 부담을 주었는데, 동시에 나는 그 얄팍한 분량에서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읽을 수 있다'라고 꽤나 건방진 자세로 마주하던 책이 바로 이 <설국>이었다.
그러던 와중, 2022년에 한국 본가에 갔다오면서 '이제는 더는 묵히지 않으리라'라는 심정으로 <설국>을 가지고 왔고, 이제야 이 책을 두 번 완독 할 수 있었다. 두 번 완독하고 나니, 이 책의 뒤표지에 적혀있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단순히 줄거리만을 읽어내려한다면 그 깊이와 맛을 전혀 짐작할 수 없기에
그 어떤 작품보다 정독이 필요한 고전이 바로 <설국>이다.
이 책을 그저 단순하게 쭉 읽어내려가려 했던 나의 생각이 짧았음을 인정한다. 아, 다만 혼선이 있으면 안 되는 것은, 이 책이 단순히 어려워서 두 번 읽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앞서서 이야기했듯, 첫장이 쉬이 넘어가는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그 몇장만 천천하게 읽으며 그 장면을 상상해나가다보면, 순식간에 마지막 페이지로 다다를 수 있을 것임을 확신한다. (그러기에 혹시나 나처럼 포기했던 분들이 있으시다면, 다시 한 번 도전해보시기를. )
다만, 나같은 경우다시 한번 연이어 읽었던 이유는, 한번 읽고 났더니, 시마무라의 시선이 아닌 고마코의 시선으로 이 소설을 다시 읽고 싶어졌고, 또한 내가 음미하지 못한 문장들을 다시 마주하고 싶은 욕구가 일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두번을 읽다보니 책은 완전히 여러명에게서 여러번 읽힌 듯 말랑말랑해지고, 여러 페이지는 세모꼴로 접혀졌다. 다음에 또 이 책에 대한 갈증을 느낄 때, 나는 과연 모퉁이가 접힌 페이지들만 펴서 읽을지 아니면, 처음부터 다시 정독을 할까 궁금하다.
눈과 불의 대비
부모님이 물려준 유산으로 무위도식하며 여행을 하며, 서양무용에 대해 글 쓰는 것이 전부인 시마무라. 부족할 것 없는 그의 삶은 어떤 일이든 기를 쓰고 애쓰지 않아도 되니 축복이기도 할테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는 의욕이라고는 찾을 수 없다.
소설에서는 이러한 시마무라의 이미지와는 대비되게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시마무라를 사랑하는 매혹적인 게이샤 고마코와, 또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이 아프게 되자 성심 성의껏 간호하고, 그 사람이 목숨을 다한 다음에도 무덤 곁을 떠나지 않는 순수한 소녀 요코가 등장한다.
시마무라는 냉소적으로 고마코의 사랑을 모두 헛수고일 뿐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이미 고마코에게 마음을 이끌린 지 오래인 데다가, 그녀를 만나기 위해 그녀가 일하는 온천에 찾아간지도 벌써 세번째다. 손님 접대에 바쁜 와중에도 시간만 나면 시마무라에게 찾아가는 고마코. 시마무라는 이미 그들의 파국의 끝을 대충 짐작하고 있음에도, 냉정하게 밀어내지 않고 소시민적이고 무기력하게 고마코의 사랑을 방관하며, 발버둥을 치며 열심히 삶을 살아가는 그녀를 한편으로 가여워한다.
고마코 또한 잠깐 머물다가 도쿄로 돌아갈 여행자 신분인 시마무라와의 결말을 빤히 알기라도 한 듯,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이미 그를 많이 사랑한 후였고, 매번 그의 앞에서 무너지기 일수였다.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려고 해도 그게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은 똑 부러지게 잘하면서, 사랑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흩트러지는 고마코. 떠나버릴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순간순간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던 고마코의 마음이 애잔하게 다가왔다.
고마코의 애정은 그를 향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아름다운 헛수고인 양 생각하는 그 자신이 지닌 허무가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고마코의 살아가려는 생명력이 벌거벗은 맨살로 직접 와닿았다. 그는 고마코가 가여웠고 동시에 자신도 애처로워졌다. - P.110
고마코의 삶과 사랑을 향한 열정적인 태도 그리고 살아보려고 하는 생명력이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인 마을에 대비되어 더 강렬하게 느껴졌던 것이리라. 그렇기에 결말에 불에 타오르던 고치 창고가 무너져 내리는 장면은 겉잡을 수 없이 큰 허망함을 안겨주었다. 그 모습은 마치 고마코의 모습과 같았다. 한 철을 살다가 생을 마감하는 나방들처럼.
불이 타오르던 고치 창고를 뒤로 마무리된 열린 결말 또한 쓸쓸하고 허무한 감정을 더 극대화시켜주는 듯하다. 동시에 그렇게 허하고 아쉬운 기분은 다시 한번 이 책을 집게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설국>의 매력인지도.
가와바타 야스나리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1968년 일본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이는 타고르에 이어 동양에서는 두 번째 수상이었다. <설국>은 가와바타 문학의 절정이자, 일본 고전 문학이 추구하는 전통적 정서를 정통으로 계승했다고 여겨지며, 가와바타를 일본 현대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해 준 작품이라고 일컬어진다.
그러나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지 3년 6개월 만인 1972년 4월, 별장에서 가스관을 입에 물고 자살로 돌연 생을 마감했다. 향년 73세였다고 한다. 실제 그는 일찍이 부모를 잃고 15세 때 10년간 함께 살던 조부마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었다고 한다. 많은 아픔을 겪다 보면 그저 그것들에 초연해지게 되는 것일까. 그의 삶이 안쓰럽다.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01g0500a
가와바타 야스나리
1968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으며 우수에 젖은 서정성을 통해 고대 일본문학의 전통을 현대어로 되살려낸 작가이다. 문학적 원숙기에 씌어진 작품 대부분에 짙게 깔려 있는 고독과 죽음에
100.daum.net
독서의 즐거움
더운 나라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 <설국>이라는 소설에서 전해지던 차가웠던 감각은 이색적이면서 특별했다.
나는 책을 읽을 때 그 책 분위기에 맞는 음악들을 찾아서 같이 듣는 것을 좋아하는데, <설국>을 읽을 때 유튜브에서 '눈'과 관련한 ASMR들을 찾아서 들었다.
한국도 날씨가 쌀쌀해지고 있으니, 더운 나라로 떠나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꽤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만약 그 여행지에 책 한 권을 들고 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예정이라면, <설국>을 들고가는 것은 어떨지. 개인적으로 조심스레 권유해보고 싶다.
PS. 인터넷에서 영화 <설국>의 DVD를 구입할 수 있길래, 망설이지 않고 구매했다. 한국 본가에 도착하면, 다시 해외배송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르지만, 이 수고스러움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DVD (명작) 설국 (Snow Counrty Yukiguni)-히데오오바 가와바타야스나리 : 코코쇼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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