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오브 도그 <The Power Of the Dog>,2021
- 감독 : 제인 캠피온
- 출연 : 베네딕트 컴버배치, 커스틴 던스트, 제시 플레먼스, 크디 스밋 맥피
★★★★☆
짤막한 줄거리를 읽었으나, 그렇게 흥미로울 것 같지 않아서 실은 볼 생각은 없었던 영화였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가 선택한 2021년의 영화 중에도 포함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 그와 나의 영화 취향이 같고 다르고를 떠나서, 그저 말 그대로 궁금한 마음이 생겨 봐 보기로 결심했다. 보고 나서 되돌아보니 이 영화의 세부내용과 결말을 모르고 보았기 때문에, 더 영화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여러 상징적인 요소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으며, 충격적인 결말 또한 여운을 많이 남겼다.
https://www.netflix.com/tudum/articles/barack-obama-power-of-the-dog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난 엄마가 행복하기만 바랐다. 엄마를 돕지 않으면 난 사내도 아니지. 엄마를 구할 수밖에"
#1
1925년 미국 몬타나, 필 버뱅크 (베너딕트 컴버배치)과 그의 동생 조지 버뱅크 (제시 플리먼스). 그들은 "브롱코 헨리"라는 사람에게서 배운 목장 일 덕분에 성공하여 25년간 함께 거대한 목장을 운영하고 있다. 필과 조지는 그의 동료들과 로즈(키얼스틴 던스트) 가게에서 저녁식사를 하러 간다. 로즈는 남편을 잃고 혼자서 식당 겸 숙박시설을 운영하는데, 그의 아들 피터는 로즈의 식당일을 돕는다. 필은 로즈의 아들인 피터가 만든 종이꽃과 그의 말투를 조롱한다. 로즈와 피터는 필의 무례하고 강압적인 행동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그가 식사를 마치고 떠나간 자리에서 로즈는 눈물을 터트린다. 그 모습을 본 조지는 그녀를 위로한다.
#2
조지와 로즈는 결국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필은 로즈가 피터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 조지에게 수를 쓰는 것이라고 하며 그들의 만남을 반대한다. 필은 분노하는 것도 모자라서 자신의 부모에게 조지가 과부와 사랑에 빠졌으며, 그 여자는 모자란 아들이 있다는 것도 이야기한다. 하지만 조지는 로즈를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둘은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조용히 결혼을 한다.
#3
피터는 새아버지인 조지의 도움으로 의과대학에 입학한다. 한편 조지는 자신의 부모님과 주지사에게 로즈를 소개해주고 싶어 하며, 그들을 만나는 날 로즈가 피아노를 연주해주기를 바란다. 로즈는 극구 자신의 피아노 실력이 좋지 않으며, 곡 몇 개만 안다고 손사래 치지만, 그래도 나름 연습을 하긴 한다. 하지만 한숨만 나올 뿐. 필은 그런 그녀를 조롱한다.
다음 날, 필을 찾아온 조지. 필은 혹시나 자신이 로즈가 피아노 연습을 할 때 조롱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까 싶었지만, 조지가 꺼낸 이야기는 예상치 못 했던 것이었다. 부모님과 주지사가 집에 왔을 때, 냄새가 나지 않게 깨끗하게 씻으라는 것.
드디어 부모님, 그리고 주지사가 필과 조지의 집에 도착하는 날. 주지사 부부는 필이 예일대에서 고전학을 전공한 우등생이었다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그를 보고 싶어 하지만 필은 그들을 만나려 하지 않는다. 로즈는 그들과의 대화에 끼지 못 하고 어색해하고 그 어색함을 깨고자 조지는 자신의 아내 로즈에게 피아노 연주를 권유하지만, 로즈는 결국 연주를 하지 못 한다. 그리고 필은 뒤늦게 나타나서 로즈가 연주를 하지 못 한 것에 대해서 그녀에 수치감을 준다.
#4
여름 방학이 되자 피터는 자신의 아버지의 유품인 의학서적을 가득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로즈는 주지사가 왔다간 이후 계속 술독에 빠져서 비틀비틀 거리고 두통에 시달리며 산다. 한편 피터는 필의 비밀공간에서 남자들의 육체 사진들이 가득 담긴 브롱코 헨리 (필과 조지에게 목장 운영을 알려 주었던 사람)의 유품들을 발견하고, 이어 브롱코 헨리의 손수건(이니셜 BH가 쓰여 있다)을 목에 두르고 호수에서 몸을 씻는 필을 우연히 발견한다. 자신을 몰래 지켜보고 있던 피터를 발견한 필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피터를 내쫓는다.
#5
그리고 어색한 청바지를 입고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나타난 피터. 필은 로즈의 반응을 지켜보면서, 피터에게 밧줄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친절하게 다가간다. 그리고 그에게 말을 타는 법도 알려준다. 어느 날 피터는 혼자 말을 타고 멀리 나가 탄저병에 걸려 죽음을 당한 동물의 시체를 찾고 그것의 가죽을 벗긴다. 자신의 의과 공부에 활용하려는 목적이었을까?
로즈는 자신이 아들이 자신이 혐오하는 필과 계속 어울리니 걱정을 멈추지 못 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녀의 걱정을 알기라도 한 듯 계속해서 가까운 사이가 되어간다. 한편 로즈는 필이 가죽을 매우 소중히 생각하며, 그 가죽에 손을 대면 분노한다는 것을 알고 가죽들을 모두 인디언들에게 줘버린다. 필은 예상대로 분노한다. 가죽으로 밧줄을 만드려고 했던 그의 계획이 물거품이 될려던 차, 피터는 밧줄을 완성할 생가죽이 조금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가죽을 필에게 건네는 피터. 손에 부상을 입고 상처가 남아있는 와중에도 그는 맨손으로 피터가 준 생가죽으로 밧줄을 완성하려고 밤늦게까지 작업을 감행하고, 피터는 그런 그를 지켜본다. 그리고 피터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그 담배를 필에게 건넨다. 둘 사이에서 묘한 기류가 흐른다.
그다음날 필은 아침을 못 먹을 정도로 아프고, 완성한 밧줄을 피터에게 전달도 못 하고 병원에 가지만, 결국에는 죽음에 이른다. 의사는 조지에게 하루 이틀 뒤면 그의 죽음에 대한 결과가 나온다고 하면서, 다만 탄저병이 의심된다고 한다. 조지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이야기한다. "하지만 형은 동물 사체를 절대로 안 만졌는데요"
한 인간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겉으로 보기에 필은 조지와 확실히 대비된다. 필은 남성답고 거칠고 위압적인 성격으로 정연이 덜 된 것과 같은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의 피부색과 거친 손은 오랫동안 거친 야외 육체노동을 했을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그는 식당에서 시끄러운 사람들에게 조용히 하라며 소리를 지르며, 장갑도 끼지 않은 맨손으로 황소를 거세시키며, 노골적으로 로즈와 피터를 조롱한다.
반면에, 조지는 형인 필과 달리 유하고 차분하면서 가끔은 바보같이 표현된다. 자신의 형인 필이 자신을 무시하는 발언을 하여도 참고, 남편을 잃은 로즈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그녀의 아픔을 달래주려고 한다. 하지만, 조지는 로즈를 사랑하고 예쁘게 생각할 뿐, 그녀를 보호해주지는 못 했다. 조지는 서랍 속에 넣어두고 방치한 보석처럼 그녀를 대했다. 사랑하기는 했지만, 그는 로즈가 진심으로 경계하고 혐오하는 필에게서 로즈를 구출하지 못하였다.
주지사 부부가 그의 집에 도착했을 때, 조지는 로즈에게 피아노 연주를 떠민다. 로즈가 무엇을 하던 사랑스러워하는 그의 마음은 이해가 되나, 조지는 로즈를 억지로 수치감을 느끼게끔 등을 떠민 것이나 다름없다. 대놓고 노골적으로 로즈를 조롱하는 필과 다를 바가 무엇일까? 그날 이후로 로즈는 속히 "배우고 교양 있는 사람들"이라고 일컫는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는 벽을 느끼고, 오히려 집의 하인들과 있을 때 더 편안함을 느끼는 모습을 보여준다. 게다가 의지할 사람인 조지도 일 때문에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아지자, 그녀는 술에 의존하며 살게 된다. 조지는 자신의 형이 자신의 아내를 조롱하고 있는 것도 끊어내고 막아내지 못했다. 자신이 로즈를 사랑하고 있다는 마음만 중요할 뿐, 그 외에 로즈가 힘들어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거의 무관심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카우보이들과 피터 또한 크게 외적으로 대비된다. 피터는 집에서만 틀어박혀 있을 것처럼 흰 피부를 가지고 있고, 근육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깡마른 체구를 가지고 있다. 그의 행동과 말투 또한 남성적이라기보다는 여성적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엄마인 로즈가 식당을 운영할 때도 닭을 능숙하게 잡던 아이 었으며, 덫을 설치하여서 잡은 토끼를 외과 의사가 되기 위한 훈련이라고 하면서 해부실습에 사용한다. 토끼를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이라고는 한 톨도 없는 모습이다.
반면 오히려 섬세하고 예민한 것은 필이다. 자신의 동생자신의 동생이 과부와 만남을 이어가자, 자신의 부모님께 편지를 써서 그 사실을 고발한다. 마마보이같이 행동하는 것을 질색하였던 필 아니었나? 필은 "브롱코 헨리를 추모하며 1854년-1904년"이라는 문구가 적힌 말의 안장을 귀한 보물처럼 쓰다듬고, 숲 어딘가에 자신만이 아는 비밀 장소와도 작은 호수로 가서 시간을 보낸다. 그는 손이 많이 가는 가죽 밧줄을 만드는 것에도 유능하며, 기타도 잘 연주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우리는 필이 브롱코 헨리를 진심으로 사랑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듯 마초나 다름 없었던 그에게는 많은 의외의 모습이 숨어져 있다. 어떠한 감정적인 자극에도 끄덕 없을 것 같았던 필. 그러나 자신이 여성스럽다고 놀렸던 피터의 철저한 계획 안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결말의 충격이 길게 남았다.
어찌 됐던지 피터는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대로 엄마를 구했다. 필과 어울리는 것을 질색했던 로즈 또한 결국은 피터의치밀했던 계획으로 필로부터의 자유를 얻었다. "못 보면 없는 거랑 똑같아"라고 이야기하며, 성 정체성을 포함한 자신의 진짜 모습을 포장하여 남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았던 필. 그렇다. 못 보면 없는 것과 똑같겠지만, 중요한 건 "볼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는 점이다. 결국은 이 영화는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의 의미를 내포한다. 내가 숨기고 감추고 싶은 모습이 있을 수 있다. 하물며 나 또한 나를 잘 모르겠는데, 어떻게 몇가지 모습만으로 한 사람이 이렇다 저렇다를 판단할 수 있을까? 이렇듯 단편적인 모습으로 한 사람을 단정지을 수 없는 그 애매함 자체가 이 영화를 흥미롭게 만들어주며, 이 영화의 예상할 수 없는 결말을 만들었다. 다시 한번 상기해본다.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은 내 모습이 있다한들, 그 모습이 내 모습이 아닌 것은 아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습은 남이 알던 말던 "나"임인 것을. 하지만, 나 또한 내가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를 선별적으로 선택할 수 있음을. 다만,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눈을 피할 수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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