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e Sense of an Ending>,2017
-감독 : 리테쉬 바트라
-주연 : 짐 브로드 벤트 (안토니 웹스터 역), 샬롯 램플링 (베로니카 포드 역)
-조연 : 빌리 하울(어린 토니 역), 프레야 메이버 (어린 베로니카 역)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러닝타임 :108분
#1
런던에서 빈티지 카메라 상점을 운영하는 토니 웹스터. 그는 아내랑 이혼하고 혼자 생활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그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합니다. 그 안에는 잊고 지냈던 첫사랑 ‘베로니카 포드’의 어머니인 '사라 포드' 의 부고가 담겨있었고, 토니는 자신에게 남겨진 유품인 '일기장'을 받기 위해 유산집행인인 베로니카를 수소문하기 시작합니다.
토니는 베로니카에게 편지를 보내지만, 아직 일기장을 보여줄 수 없다는 답이 돌아오고 그 일기장은 알고 보니 사라포드가 쓴 것이 아니라 토니와 베로니카의 고교 동창이었던 '아드리안 핀'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하지만 토니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사유로 핀의 일기장이 사라 포드에게 전달이 되었을까요?
원래 토니와 베로니카는 연인 관계였지만 오래가지 못했고, 이후 아드리안 핀이 베로니카와 연인 사이가 되었었습니다. 토니는 그 사실을 아드리안의 편지를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그는 그들의 관계를 인정하며 자신을 신경 쓰지 말라고 쿨하게 답장을 보냈었지요. 그런데 이후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아드리안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었죠.
#2
토니와 베로니카는 40년의 세월이 지나 만나게 됩니다. 토니는 베로니카에게 사라가 남긴 일기장에 대해서 묻습니다. 하지만 베로니카는 태워버렸다고 합니다. 토니는 자신에게 남겨진 물건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고 언성이 높아집니다. 자신에게 남겨진 일기장이니 적어도 알 권리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을 불태워 버렸다니 황당한 것이었죠.
베로니카는 토니가 유언장에 따라 법적으로는 그 일기장에 대해서 알 권리가 있지만, 도덕적으로는 권리가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베로니카는 의미심장하게 또 다른 편지 한 통을 건네고 자리에서 사라집니다. 그 편지를 읽은 토니는 자신의 기억과 전혀 다른 과거를 마주하고 큰 혼란에 빠집니다.
앞서 말했듯 토니는 자신이 자신의 첫사랑인 베로니카와 고교 동창인 아드리안이 사귀는 것을 굉장히 쿨하게 인정하고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토니는 분노와 저주를 담은 편지를 아드리안에게 보냈었던 것이에요. 정말 끔찍한 편지였어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토니는 아드리안이 베로니카의 소개로 만났다고 기억하지만, 그의 친구들은 그렇게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토니가 직접 베로니카와 아드리안을 소개해줬다고 말하죠.
미안한 마음에 토니는 베로니카 주위를 서성이다가 그녀가 한 젊은 남자와 동행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젊은 남자는 약간의 장애가 있어서 보호시설의 도움을 받는 것 같았어요. 토니는 그를 미행하는데, 그의 이름이 '아드리안'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충격을 받습니다. 아드리안 핀과 베로니카 사이에서 예기치 않았던 아이가 생겼고, 이에 아드리안은 비관하여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미치기 되었기 때문이죠. 토니는 자기 자신이 저주 섞인 편지를 보내지 않았었다면 그렇게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았을 수 있었을 텐데.. 마음이 무거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밝혀진 사실이 더 충격적입니다. 아드리안은 베로니카와 아드리안 핀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아닌, 베로니카의 엄마인 사라와 아드리안 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었다는 것이죠. 즉, 그는 '아드리안 포드'였던 것입니다.
#3
영화 속에서는 베로니카가 자신의 가족과 겪었던 이야기들이 자세하게 비추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베로니카는 평범한 가족안에서 자랐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녀의 엄마인 사라가 특히 정신적으로 불안해 보였으며, 베로니카의 남자친구에게 '베로니카가 원하는 데로 다 들어주지 말라'는 일반적인 엄마라면 생각하지 못할 말들을 던집니다. 아마 딸을 질투했었던 것일까요?
영화 속에서 아드리안 핀이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부분은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하는 거의 모든 것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드리안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가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 이상 그가 직접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그가 자살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마치 아드리안이 이야기했듯 불완전한 기억과 불충분한 문서가 만나 '역사'가 생성된 것이나 다름없죠.
아드리안의 일기장에는 어떤 말들이 적혀있었을까요. 다가갈 수 없는 장막이 쳐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좀 더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도 있기도하죠.
"모르는 것을 알 수는 없습니다. 그건 철학적으로 자명한 사실이죠.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만을 알 뿐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다. 역사의 특정 시기를 온전히 서술할 방법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역사가들이 특정한 사건에 책임소재를 묻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역사가들은 이 사건 혹은 폭정에 대해 책임소재를 밝히려고 하지만, 그게 불가능한 경우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파트리크 라그랑주는 이렇게 말했죠. 역사는 불완전한 기억과 불충분한 문서가 만나는 순간에 생성된다."
"돕슨의 자살을 예로 들어보죠. 여자친구의 임신 통보에 자살한 것으로 들었습니다. 이건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요지는 돕슨의 진술 없인 아무것도 모른다는 겁니다. 사건의 진상을 알 수도 없고 지적 지식으로 진실을 대신할 순 없죠. 문제점이 보이십니까? "
자신의 인생 얘기를 얼마나 자주 하는가? 얼마나 자주 꾸미고 바꾸고 편집하는가? 자신도 모르게 기억에 덧칠을 하게 된다. 기억은 우리 입을 통해 그려지는 이야기다. 남들에게 하는 이야기라기보다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
#4
돌이켜보면 베로니카는 토니가 과거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것에도 굳이 그의 이해를 고쳐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면, 몇 번의 기회를 토니에게 주고 싶었었을 수도 있죠. 혹은 베로니카는 신중하고 싶었을 것이고, 또한 그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봤자 달라지는 것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토니가 얼마나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세탁'하다시피 했었는지에 대해서 깨닫고 나서는 어쩔 수 없이 그 편지를 전달해 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토니는 계속해서 일기장의 출처에 대해서 캐물었을테니까요. 베로니카는 그래도 최대한 그녀의 존엄성을 지키려고 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베로니카가 성숙한 인간으로 느껴지며, 그녀가 감내했었어야할 인생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감히 상상하기 어렵네요.
어쨌든 영화의 말미에서는 괴팍한 성격에 직언으로 상대방을 불편하게 했던 토니도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서 깨닫고 좀 더 겸손한 자세로 가족들을 대하려고 합니다. 이혼한 전 와이프와, 그리고 출산을 앞둔 자신의 딸에게도요. 자신의 딸이 결혼도 하지 않은 신분으로 혼자서 아기를 낳고 (마치 사라의 모습이 비춰지기도 합니다.) 그 곁을 토니가 지켜줍니다.
기억의 왜곡.. 섬뜩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있죠. 우리의 기억들은 모두 '선택적인 것'이라고. 저는 살다보니 이 말에 동의했고, 무의식 중에 그리고 의식적으로 사람은 기억하고 싶은 것만 선택하여서 기억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기억을 다르게 조작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죠. 제가 기억하고 있는 모든 것은 어쩌면 제 마음대로 왜곡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동시에 섬뜩함이 밀려옵니다.
어떻게 토니는 그렇게 끔찍한 저주를 담긴 편지를 썼으면서도 자신의 기억을 미화할 수 있었을까요? 인간은 생각보다 쉽게 믿고 싶은 것만 믿어버리게 타협을 하는 것 같습니다. 기억의 불완전함만을 핑계로 두기에는 나의 입맛대로 기억하려고 하는 기제가 더 크다고 해야겠습니다. 어떤 나쁜 일을 저지르고 나서, 그 불편함과 죄책감에서 해방되기 위해 제 자신을 속였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것이 정말 설득력이 있는 변명이 될까요?
우리 자신은 우리를 얼마나 많이 알고 있을까요. 우리는 어쩌면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아는 것에 가장 어려움을 겪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많은 매스컴에서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함을, 우리 자신과 대화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처럼요. 우리는 생각보다 우리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영화는 우리는 인간이 얼마나 흠이 있는 존재인지에 대해서, 또한 기억의 불완전함에 대해서 생각하게 합니다.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이자, 패자들의 자기기만이기도 하듯, 우리들의 기억 또한 그와 다를 바 없습니다.
#5
저는 이 영화를 통해 작가 '줄리언 반스'를 알게 되었습니다. 줄리언 반스는 영국 레스터 출신의 현재 영국 작가로 2011년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맨부커상을 수상했다고 해요. 이언 매큐언, 살만 루슈디, 움베르토 에코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영국의 대표작가인데 저는 이제야 그를 알게 된 것에 대해서 부끄럽기도 하면서 또 세상은 넓고 제가 모르는 건 정말 새삼스럽게 너무 많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에 5월 초에 한국을 가서도 책을 많이도 가져왔어요. 그중에서 정말 큰마음먹고 구매해서 가져온 책이 있는데 바로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 1001>이었는데요, 그 책에서도 아무튼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가 소개되어 있는 것을 보고 매우 반가웠어요. 맨부커상까지 수상한 대단한 작품이더라구요.
영화를 보고나니 원작을 읽어보고 싶습니다. 책의 분량도 매우 짧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마 분량으로 미루어 봤을 때 책에서도 각 인물뒤에 숨겨진 의도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 아드리안 핀이 역사의 해석이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것을 지적했듯, 우리는 그 주관성에 대해 인정하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통해서 이해해 보려는 '시도'는 할 수가 있겠죠.
#6
마지막으로 샬롯 램플링 배우에 대한 저의 애정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샬롯 램플링 배우가 너무 좋습니다. 어린시절 친언니의 자살, 그리고 두 번의 이혼 등으로 평탄치 않은 인생을 걸어온 그녀여서 그런지 그녀에게서 묘하게 슬프고 우울한 기운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그녀의 강인함과 우아한 태도를 볼 때 그녀가 안쓰럽기도 그리고 한편으로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그녀가 풍기는 압도적인 분위기는 어느 배우와도 대체불가한 것 같습니다.
<듄>을 보면서도 많은 사람들은 주연 배우들에게 주목했을테지만, 저에게 가장 떨림을 주었던 것은 바로 샬롯 램플링의 목소리 었습니다. 정말 그녀 자체가 '베네 레세리트 모히암 대모' 인 것 같았습니다. 중저음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중압감과 카리스마. 얼굴을 모두 드러내지 않는데도 독특한 목소리 하나로 관중을 사로잡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요즘 세대들은 샬롯 램플링의 존재를 잘 모르는 것 같고, 그녀에 대한 스포트 라이트가 아무래도 적은 것 같으니 아쉽긴 합니다만, 아직까지 은퇴 없이 작품활동을 이어가주는 것이 고맙고, 희망하건데 그녀가 건강하길 바랄 뿐입니다.
샬롯 램플링 출연 작품 중 제가 좋아하고 블로그에도 리뷰를 올렸던 몇 가지 작품들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대부분 그녀가 최근 작품이고, 저는 개인적으로 <스위밍 풀>에서의 샬롯을 통해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고, 아직까지도 <스위밍 풀>에서의 그녀가 가장 좋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의 추천하는 샬롯 램플링 출연작이 있으실까요? :)
https://with-evelyn.tistory.com/77
https://with-evelyn.tistory.com/117
https://with-evelyn.tistory.com/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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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장 : 영화와 책 속에서>에서는 좋은 영화와 책을 소개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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