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를 판 남자> <The Man Who Sold His Skin>, 2021
-감독 : 카우타르 벤 하니야
-주연 : 야흐야 마하이니, 모니카 벨루치, 코엔 드 보우, 디아 리앤
-장르 : 드라마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 104분
<피부를 판 남자>는 정말 오랫동안 보고 싶었던 영화였어요. 그 제목에서 주는 호기심에 제가 몇 번이고 이 영화를 보려고 노력했던 지난날들이 떠오르네요. 정말 예상하지도 못했지만, 이 영화를 이 시점에 보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어요. 원래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가 제가 구독하고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에 업데이트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어요.
'피부'라는 소재는 뭔가 저를 자극하는 느낌이 있어요. <내가 사는 피부>도 그 제목이 주는 기이한 느낌, 묘한 느낌에 보았었지요. 그런데 저에게는 그렇게 좋은 느낌으로 남지 않아서, 그 세부 내용이 어땠는지는 기억하고 있지 않아요. 저를 불쾌하게 만드는 장면만 기억날 뿐이에요. 하지만 <피부를 판 남자>는 그 제목이 주는 자극적임을 중화라도 시키는 듯 부드러운 영화였달까요. 처음에는 포스터도 그렇고 겁을 먹었던 것이 사실이에요.
2011년 시리아. 주인공 사미 알리(이하 샘)는 아름다운 여인 아이셰 아미라는 서로를 사랑합니다. 샘은 충동적으로 아미라와 기차 안에서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을 참지 못하고 기사의 승객들에게 외칩니다. "여러분 혁명적인 순간입니다. 우리는 자유를 원해요. 그러니 자유로워 집시다. 결혼하고 싶어요. 주례 서 주실 셰이크 계세요? " 하지만 이 말이 화근이 됩니다.
당시 시리아는 내전이 시작되면서 매우 혼란스럽고 불안정했습니다. 그런데 샘이 기차에서 "혁명", "자유"에 대해서 이야기하니 연행되고 말았던 것이죠. 샘은 심문 중에 몰래 도망쳐 나와서 아미라의 집으로 찾아갑니다. 샘은 레바논으로 도망갈 계획을 세우고, 아미라에게 함께 도망가자고 권유하지만, 아미라는 가족의 주도에 의해 주벨기에 시리아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지야드와 결혼을 앞두고 있었죠. 내전으로 유혈 사태가 계속되어서 다들 탈출하기를 바랐으며, 아미라는 그렇게 결혼을 하고 나라를 탈출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샘은 실망을 뒤로하고 누나의 도움을 받아 레바논으로 도망칩니다.
1년 뒤 베이루트. 샘은 그곳에서 자신의 나라가 불타고 무너지는 것을 뉴스를 통해 접하면서 착잡해하죠. 아미라는 자야드와 결혼하고 벨기에로 가서 살고 있었는데, 난민이 되어버린 그는 그곳에 갈 수도 없었죠. 아이라는 벨기에에서 줄곳 시리아에서 갓 넘어온 사람들을 상대로 난신청 서류를 번역해 주는 일을 합니다. 샘은 전시장에 초대된 사람처럼 위장하여 진입하여 몰래 관람객들을 위해 제공된 음식을 먹으며 생계를 유지합니다.
그러다가 갤러리 매니저인 소라야와 벨기에 출신의 유명 예술가이자 가장 몸값이 비싼 제프리 고드프루아 눈에 띄게 됩니다. 시리아 난민이면서 식객인 그를 내쫓기는커녕, 왜 관심을 가지는 걸까요? 뜻밖에도 그들은 샘에게 등을 캔버스로 사용하자는 제안을 합니다. 그렇게 하면 비자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제안이었죠. 자유를 원했던 샘은 유럽으로 이주하기 위해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살아있는 예술작품과 소유주의 계약이 성사된 것이지요. 그렇게 샘의 등에는 타투가 새겨지게 됩니다.
"내가 줄 수 있어요. 어디든 갈 수 있는 마법 양탄자요"
샘의 등에 새겨진 타투는 '솅겐 비자'였어요. 솅겐 비자(Schengen Visa)는 솅겐 지역(27개의 유럽 국가) 전역을 여행할 수 있는 단기 체류 비자를 뜻합니다. 제프리는 물건이 사람보다 훨씬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현실을 이야기하며, 살아있는 인간을 상품 같은 형태로 탈바꿈하면 역설적으로 인간성과 자유를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싶었다고 합니다. 말 하나로 가치가 없는 것을 한순간에 가치가 있는 것으로 탈바꿈시키는 예술가였죠.
샘은 드디어 비자를 얻고 벨기에의 브뤼셀에 전시를 하기 위해 갑니다. 그는 당연히 그곳에서 아미라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들떠있죠. 하지만 지야드에게 발각되고 샘은 아미라를 만나지 못합니다. 아미라를 만나기 위해서 자신의 피부를 팔았는데도 아미라를 만날 수 없다니.. 절망적이죠.
시리아 난민 보호 단체 의장이 샘을 찾아와서 그를 구해주는 것에 힘쓰겠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시리아 난민을 착취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샘은 5성급 호텔에서 럭셔리한 생활을 하고 있는데, 무엇이 착취냐면서 내가 등을 팔던 엉덩이를 팔던 나의 자유라고 이야기하며 그를 내쫓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무엇이 잘못된 것 같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샘은 갈수록 사람들이 오로지 등에만 관심이 있는 것에 화가 납니다. 그의 얼굴을 알아주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자신의 존재가 무시당하는 느낌이었겠죠.
샘은 자신은 예술 작품 관리를 한다고만 아미라에게 이야기하고 자신의 몸에 문신을 새긴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결국에는 지야드가 그녀를 미술관으로 끌고 와서 그녀의 두 눈으로 그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보게끔 합니다. 지야드는 화를 참지 못하고, 1,100만 유로나 되는 예술 작품을 훼손하게 되는데, 이게 소송에 휘말리는데 아미라의 부탁으로 합의에 이르도록 도와줍니다.
5성급 호텔에서 샤워를 하면서 캐비어를 먹으면서 그 맛을 음미하지도, 즐기지도 않는 모습을 보면 우리는 무엇이 중요한 것일까라는 문제에 직면합니다. 자유를 얻고 싶었지만, 그는 자유를 얻지 못했습니다.
샘은 어느 갑부에게 100만 유로에 팔려나갑니다. 매번 각국 법에 막혀서 거래가 좌절되었지만, 나라마다 통상적으로 가지고 있는 인신매매나 성매매의 금지법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크리스천은 스위스인이고 법률면에서 나른 나라보다 훨씬 앞서 나가서 샘을 매입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지쳐갈수록 그는 가족들이 그리워집니다. 가족들에게 안부도 한번 묻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9개월 후 그는 한 경매 행사의 69번 작품으로 경매장에 출품됩니다. 500만에 낙찰되고 경매는 종료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술품 경매장에서 돌발행동으로 참가자들에게 겁을 줍니다. 이 일로 인해서 그는 연행되고 예술작품으로써의 삶에서 휴식을 얻은 그는 오히려 더 자유를 느낍니다. 그리고 그가 안전하게 석방될 수 있도록 변호사가 선임되고, 그의 통번역을 하기 위해 아미라가 동행합니다.
아미라는 이야기합니다. 자신은 남편에게서 도망쳐 나왔으며, 샘을 알아가고 싶다고 이야기합니다. 다행히 샘의 기소에는 적당한 이유가 없었으며 즉각 석방됩니다. 그리고 이미 비자가 만료가 되었어서 이틀 안에 출국해야 했습니다. 제프리의 도움을 받아 아미라와 샘은 시리아의 라카로 돌아갑니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샘의 가족들이 있는 곳이지만 테러단체들이 점령한 그곳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샘은 테러범들에게 붙잡혀 끔찍하게 목숨을 잃는 것이 녹화되어 전 세계로 퍼집니다. 그리고 샘의 처형 이후에 미국 미술품 암거래 시장에 그의 피부가 나오게 됩니다. 피부에서 샘 알리의 DNA가 검출이 되었고, 이것은 복제품이 아니라는 증거였지요.
알고 보니 제프리는 비밀스럽게 첨단 과학기술로 그의 등 피부를 배양시켰던 것이고, 그를 세상에서 사라진 것처럼 만들어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샘이 고향에서 그의 가족과 그리고 아미라와 행복한 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요.
제프리는 메피스토펠레스였나?
흥미로웠던 부분은 아무래도 '살아있는 예술작품'을 만들겠다는 야망으로 샘의 등을 간절히 원하던 제프리가 어느 순간 태도를 달리하고 샘이 고향으로 돌아가서 진정한 자유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로 변신한 점입니다.
샘에게 예술작품이 되어보지 않겠냐고 제안할 때는 정말 그의 말대로 '메피스토펠레스'와 다름없었거든요. 메피스토펠레스는 괴테의 유명작품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악마로서, 그는 인간의 약점을 이용하여 계약을 맺고 영혼을 빼앗으려 하거든요. 제프리야 말로 오도 갈 수 없는 샘의 상황을 파악하고 바로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고 하잖아요. 그야말로 현대판 메피스토펠레스 아닌가요?
메피스토펠레스 같다는 생각은 가끔 하죠. 내 영혼을 원해요? 나는 당신 등을 원해요.
하지만 제프리는 샘의 등에 난 뾰루지를 제거하려 병원에서 대기 중일 때 샘에게 의미심장하게 그리스 로마 신화 속에 등장하는 조각가 '피그말리온' 이야기를 꺼냅니다.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만든 조각상이 너무나 아름다워 결국 조각상을 사랑하게 되고, 아프로디테 여신에게 자신의 조각상이 살아 숨쉬기를 바라게 되는데요. 제프리는 이 '피그말리온'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와는 정반대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얘기는 완전 정반대예요"
아니, 제프리. 샘을 살아있는 예술작품으로 만든 건 당신인데, 당신이 '피그말리온'이라고 말하지 못할 망정, 자신의 이야기가 정반대라는 이야기는, 그 조각상이 살아 숨 쉬는 것은 싫다는 말인가요? 관객들은 제프리는 살아있는 예술작품이 가지고 있는 리스크, 그리고 유지보수 비용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 그는 대단히 실험적인 예술가로서, 새로운 기술과 과학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그러한 관심이 결국에 샘의 피부를 복제시키는 것에 성공시킬 수 있었던 일환이 되었을 수 있던 것 같습니다. 한 인간의 자유를 위해서, 자유를 빼앗았다가, 결국에 진정한 자유를 선사하는 제프리. 넓게 보면 생각보다 멋진 것 같기도 하네요.
영화 같은 현실? 현실 같은 영화?
또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영화 <피부를 파는 남자>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것입니다.
본 영화에 영감을 준 예술작품 '팀'은 빔 델보예가 문신을 새긴 작업으로 2008년에 개인 수집가에게 팔렸다.
빔 델보예는 벨기에 출신의 예술가로 2006년에 독일 출신의 팀 슈타이너(Tim Steiner)의 등을 캔버스로 사용하여 성모 마리아와 여러 상징적인 이미지를 포함한 타투를 새겼으며, 여러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전시했다고 합니다.
놀라운 것은 이에 그치지 않습니다. 계약내용에는 추가로 팀은 살아있는 동안에는 타투를 그의 등에 유지하지만, 팀이 사망한 후에는 피부를 벗겨내어 타투를 보존하게 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고 합니다. 정말 <피부를 판 남자>의 이야기와 묘하게 교차되는 점이 있지요. 저희는 대부분 '영화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다'라고 표현하잖아요? 이 영화는 반대로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요. '현실에서 일어났던 일이 영화로 각색됐다'. 어떨까요?
<피부를 판 남자는> 인간의 신체가 예술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며, 예술의 지나친 상업화, 난민 문제, 뿐만 아니라 인간의 진정한 자유에 대해서 고찰해보게 하는 독특하면서도 신선했던 영화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밖에 배우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마무리할까 합니다.
영화에서는 아름다운 중년 여배우 모니카 벨루치가 갤러리 관리인으로 등장합니다. 저는 <피부를 판 남자>가 그녀의 대표 작품 <말레아>를 떠올리게 했어요. 그 영화에서 저는 모니카 벨루치가 성적 대상, 구설의 아이콘으로서 사람들에게 소비되고, 동시에 소모되고 있다고 느꼈거든요. 샘과 말레아.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모니카 벨루치가 영화 속의 제프리 역을 맡았어도 좋았을 것 같아요. <말레아>의 역과도 이어지는 듯한 느낌으로요. 살아있는 예술품이 되면서 자유를 잃어버린 샘에게 진정한 자유를 찾아주는 역으로요. :)
주인공 샘을 맞은 야흐야 마하이니는 이 역할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고 합니다. 눈빛이 몽롱하면서도 슬픈 느낌을 주는 배우였어서 어디 작품에서 어떤 역을 맡던지 단번에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앞으로도 많은 작품에서 만나게 되기를 바라봅니다.
<사유와 성장 : 영화와 책 속에서>에서는 좋은 영화와 책을 소개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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