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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빨강> 오르한 파묵.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궁정 세밀화가들의 이야기. 역사 추리소설. 줄거리. 결말. 해석. 감상. 정보

by evelyn_ 2024.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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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빨강 1, 2> <Benim Adım Kırmızı > 
저자 : 오르한 파묵 / 번역 : 이난아 
출판 : 민음사 / 발행 : 2019.01.30 


#1
 
<내 이름은 빨강>은 언제나 읽고 싶었던 책이었어요. 중학생 때 그룹 영어 과외를 하러 가던 선생님 집에서 이 책을 처음 봤었어요. 그때 봤던 책들 중에 특히 <내 이름은 빨강>은 제목에서부터 강렬했고, 이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언젠가는 정복하고 싶은 매혹적인 책으로 제게 남아있었지요. 
 
 하지만 이 책이 장편소설이기도하고, 오르한 파묵의 작풍이 어떤지 모르니 혹시나 흥미를 덜 느껴서 제가 끝까지 읽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렵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책에 대한 기대가 컸기에 혹시나 실망하지 않을까 봐 미리 걱정을 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작년에 오르한 파묵의 짧은 소설을 먼저 읽어보기로 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얀 성>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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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성> 오르한 파묵의 대표 작품. 노벨 문학상 수상자 . 줄거리. 감상. 정보.

저자 : 오르한 파묵 / 번역 : 이난아 출판 : 민음사 / 발행 : 2011.04.29 작가 오르한 파묵의 작품들을 언제 알게 되었던지는 명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중고 서점이었었나, 아니면 아르바이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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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베네치아인이 나폴리로 가던 도중에 튀르키예 해적에 포로로 잡힌 후 그가 이스탄불에서 40년을 보낸 이야기를 담고 있는 <하얀 성>은 그로테스크하고 기이한 측면도 있긴 했으나, 파묵이라는 작가의 실험적인 아이디어가 돋보이던 매우 독특한 작품이었습니다. 그렇게 파묵의 작품을 처음 접했던 저는 용기를 내어 <내 이름은 빨강>을 구매하게 됩니다. 당시 블로그 리뷰에서도, <하얀 성>을 읽고 나서 괜찮다면 파묵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겠노라고 다짐했었기도 해요. 
 
 오르한 파묵은 튀르키예 문학사상 최초로 200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입니다. 그의 작품 중 <내 이름은 빨강> 은 전 세계적으로 그의 작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하게 만들어준 작품이라고 불린다네요.  <내 이름은 빨강>은 16세기 오스만 제국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범인을 추적합니다. 그 살인 사건의 배경에는 당시 신이 세상을 보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던 세밀화가와, 원근법을 사용하여 인간이 보는 방식대로 그림을 그렸던 서양 화가들의 양식과 관점의 충돌이 있습니다.
 


 
#2
 
베네치아인들은 이전에 한 번도 그려지지 않은 주제와 기법을 발견하는 것으로 화가의 역량을 측정했습니다만, (즉,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것을 선호했지요.) 세밀화가 들은 기존에 그렸던 방식으로 그려야 했습니다. 세밀화가들은 무엇을 보지 않아도 그들은 그릴 수 있었습니다. 기억으로 그림을 그리기 때문이었어요. 그들은 자신이 그렸던 것을 또 그리고 또 그렸습니다. 서양화가들과 다르게 세밀화가들은 자신들의 특이한 화풍이 겉으로 드러나게해서는 안되었습니다.
 
 한편, 서양화가들은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아 인간을 자신들의 세상의 중심에 놓았지요. 인간을 독특하고, 유일한 존재로 사실적이게 묘사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신 중심적인 ‘투시법’으로 그림을 그리는 이슬람 세밀화가들에게 신격모독이나 다름없었지요. 신에 대항해서 인간이 위대하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요. 일부 세밀화가들은 인간을 그린 그림이 벽에 걸리게 되면 나중에 사람들은 인간을 숭배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매우 의외이게도 이슬람 국가의 통치자인 술탄은 서양화풍으로 그려진 자신의 그림을 보고싶다고 하고, 베네치아 파견을 다녀온 이니시테에게 이를 제작할 것을 명령합니다. 그 책은 이후 베네치아 총독에게 선물이 될 계획이었습니다. 술탄의 명령을 받은 에니시테는 남몰래 세밀화가들을 동원해서 작업에 착수합니다. 술탄은 자신들은 서양화풍도 그릴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을 것이지요. 그리고 동시에 자신이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고 싶기도 했을 것입니다. 
 
 주인공 카라는 에니시테가 술탄의 명령에 의해 제작될 그림들에 걸맞은 이야기를 그림의 맞은편 페이지에 써 넣는 것이었습니다. 그 그림의 절반은 베네치아 화풍이고, 나머지 절반은 페르시아 화풍이었지요. 카라는 위험한 작업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숙부인 이니시테의 딸 세큐레를 사랑했고 (즉, 카라와 세큐레는 사촌 지간인 것이지요), 그녀를 손에 얹기 위해서는 이니시테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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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1세기에서는 감히 상상도 하기 힘든 이야기들을 마주치게 되니 매우 새롭기도 하면서 동시에 흥미롭습니다. 그 중에서 세밀화가들이 평생 신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한 결과로 자연스럽게 장님이 되는 것을 자랑스럽고 명예롭게 여겼다는 것이 제게 가장 충격적이었습니다.
 
 세밀화가 들은 눈이 머는 것은 재앙이 아니라 신의 아름다움을 그려 내는 데 일생을 바친 화가들에게 신께서 주시는 마지막 행복이라고 여겼다고 합니다. 왜냐면 그들에게 그림이란 신이 세상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찾아내는 작업이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리고 신이 세상을 어떻게 보았는지는 장님 화가들의 기억 속에서만 알 수 있는 것이죠. 그렇게 그들은 보이지 않아도 그릴 수 있는 경지에 이르는 것을 바라며 평생 손을 연습했습니다. 서양의 통치자들이 그들의 화풍을 강요하면 옛 장인들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과감하게 바늘로 눈을 찔러 스스로 장님이 되기도 했다고 해요.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촛불 아래에서 그림 그리는 것을 장님이 되기 위한 행복한 준비로 받아들이며, 그들은 일부러 하루 빨리 장님이 되기 위해서 굉장히 정교하게 그리기를 반복했었다니.. 그리고 장님이 된 것처럼 연기를 하기도 했다고 해요. 지금으로서는 감히 상상도 하기 힘든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이야기들이 매우 매혹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저뿐일까요? 그들을 통해 사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강력한지에 대해서 놀라다가, 그들이 지키려고 했던 신념에 대해서 경외감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4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세밀화가인 올리브는 서양화 기법에 대해서 관대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으나, 금박 세공사인 엘레강스가 서양의 화풍을 수용하는 책의 제작에 관여한 화가들의 비밀을 폭로하겠다고 하자 그를 살해 합니다. 엘레강스가 입을 열면 가져올 파장에 대해서 그는 두려웠기 때문이었을 테지요.
 
 그럼에도 올리브는 앞으로는 서양화풍이 대세를 이룰 것이며, 세밀화가들응 유럽인들을 모방할 것이나 끝내 그들만의 고유한 화풍도 가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그는 에니시테가 그림을 완성하고 이를 베네치아 총독에게 보내면, 그들은 오스만 제국은 오스만 제국이기를 포기했다고 말할 것이고 그때부터는 자신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동시에 자신은 굉장한 재주를 가지고 있으나 자신의 훌륭함이 빛날 수 없는 세밀화가의 인생에 대해서도 회의를 느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인도로 가서 진정한 그림을 그리려고 하지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올리브는 카라와 에니시테의 딸인 아름다운 셰큐레 사이의 관계에 대해 불안과 질투를 느꼈었고 결국 이니시테까지 살해하기에 이르르죠. 이렇듯 소설은 개인의 욕망, 예술에 대한 열정, 그리고 전통과 혁신 사이의 갈등들을 풍부하게 담고있습니다.


 
 
#5
 
한편 이 소설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을 듯 합니다. 우리들이 흔하게 접하지 못했을 시대 역사적인 배경들이 생소하기 때문일 것이에요. 그리고 소설 앞표지에 지도를 보고나면, 이 소설이 얼마나 방대한 이야기를 그리려고 이런 지도까지 친절하게 제공하는 걸까라고 겁을 먹을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겁내하지 않아도 됩니다. 파묵은 독자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설명하기 때문이예요. 저는 파묵이 섬세하게 독자들이 끝까지 이 소설을 완주하도록 소설 곳곳에 이해를 돕는 장치들을 끊임없이 마련하였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는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다시 소설 첫머리에 파묵이 한국의 독자들에게 남긴 문장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파묵은 서양의 예술 및 문화의 강한 영향으로 인해 우리의 전통적인 시각 예술과 청각 예술, 창작 기법은 물론 감성까지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 독자들도 이러한 슬픔을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하지요.
그제야 파묵의 안타까워했던 사라진 동양 문화들에 대해서 돌아볼 수 있게 합니다. 그의 그 아쉬운 마음들이 이 소설에 담겨있었고, 그렇게 이 책이 더욱 서정적으로 다가오기도 하였습니다. 

"나는 빨강이어서 행복하다! 나는 뜨겁고 강하다. 나는 눈에 띈다. 그리고 당신들은 나를 거부하지 못한다."

 
 소설을 다 읽은 후에도 남는 여운은 정말 강렬합니다. 세부묘사들이 많아서 머릿속이 바쁘게 움직였다가, 그리고 또 풍부한 이야기들에 흠뻑 빠지기도 했다가, 어떻게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라며 파묵의 배경지식과 스토리텔링에 감탄하다가,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로 지루 할 틈 없이 정말 생동감 있게 읽은 소설이었습니다.
 
 좋은 소설을 읽는 것은 매우 행복한 경험이지만, 그 소설 안의 세상에서 빠져나와 현실로 돌아가는 것이 버겁기도 합니다. 다채로운 색깔로 가득하던 그 세계에 다시 흠뻑 빠져보고 싶은 마음이 들면서 벌써 마음이 아련해집니다. 꿈을 꾸는 것 같았던 소설. 그렇게 며칠 더 저는 이 소설이 주는 여운을 느껴보려 합니다. 
 
 중학생이었던 저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소설의 제목 <내 이름의 빨강>에서 '빨강'의 의미를 이제서야 생각해봅니다. 빨강은 소설 안의 열정적인 사랑에 대해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가도, 또한 그 안에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묘사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찾아보니 '세밀화'는 이슬람 회화의 대표적 화법. 한자문명권에서 세밀화라고 하는 미니아튀르(miniature)의 어원은 라틴어 ‘miniare’인데, 그 뜻은 ‘붉게 칠하다’라고 합니다. 매우 흥미롭지 않은가요?  이 소설은 그 자체로 '빨강'이고 ‘빨강’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분들에게 '빨강'이 강렬하고 두려운 느낌보다는, 매혹적이고 고혹적인 느낌으로 다가오기를.. 그렇게 이 책을 결국에는 읽게 되어보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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