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Stoner>
저자 : 존 윌리엄스 / 번역 : 김승욱
출판 : 알에이치코리아 / 발행 : 2015.01.02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 는 평론가 이동진 님의 추천을 하여서 알게 된 책이었다. 이동진 작가님의 추천작인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와 최근에 읽은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를 의미있게 읽은 후, 그가 추천한 다른 책들도 탐색해 보기로 하면서 결국에 <스토너>를 읽게 되었다.
이 책은 2월 말, 태국 치앙마이 여행 중 나의 동반자였다. 여행을 하게 되면 생각보다 중간중간에 예상하지 못했던 대기시간이 생길 때가 많지 않은가. 소위 '죽은 시간(dead time)'이라고 부르는, 특별히 생산적이지 않거나 활용하지 않는 시간들. 여행 중간중간에 발생되는 그 죽은 시간을 <스토너>가 의미 있게 채워주었다. 심지어는 책에 빠져들어 여행 간에 일부러 독서 시간을 만들기도 했다. 여행 자체도 일상에서의 도피인데, 여행 안의 독서는 더 강렬하고 환상적인 탈출이 되어주었다.
<스토너>는 1891년 미주리주 작은 농장에서 태어나서, 1910년에 미주리 대학에 입학 후, 8년 후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의 강사가 되어 1956년까지 강단에 섰었던 '윌리엄 스토너'라는 가상의 인물의 이야기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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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세계에 빠진 가난한 농가 가정의 아들. 스토너
가난한 농가 가정에서 태어난 스토너는 부모님들의 바람대로 농사에 대해 배우기 위해 미주리 농과 대학에 입학하게 되지만, 영문학 기초 수업에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접하고 이후 문학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이후 스토너는 2학년 때부터 농과대 커리큘럼을 따르지 않고 철학, 인문학, 영문학 수업에 열중했고, 결국 문학과 사랑에 빠진 스토너의 모습을 본 아처 슬론 교수의 권유에 따라 결국 학과를 바꾸게 된다. 하지만 스토너는 이 사실을 부모님에게 바로 말하지 못했다. 아들이 졸업 후 자신들과 함께 농사일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을 부모님들을 낙담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스토너가 학사학위를 받고 2주 후 프란시스 페르디난드 대공이 사라예보에서 암살당하고, 많은 청년들이 미국이 그 전쟁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될지에 대해서 궁금해하며 기대했지만, 스토너는 그들과 달랐다. 그에게는 문학에 대한 생각밖에 없었다. 가끔 부모님들을 만나러 갔지만, 자신이 그들처럼 농부의 길을 걷지 않기로 결심한 그가 부모에게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들이 낯선 타인들처럼 변해 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이런 상실감 때문에 사랑이 더 커졌음을 느꼈다. "
스토너는 미주리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시작하면서 신입생들을 위한 강좌를 맡게되었고, 자신이 배우고 느낀 것들로 학생들에게 활기와 의욕을 불어넣게 되기를 고대했다. 이후 전쟁이 선포되었고, 많은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렸지만, 스토너는 전쟁에 무관심했다. 그의 친구인 핀치와 매스터스는 스토너에게 참전을 권유하기도 했지만, 그는 거부했다. 이후 스토너는 1918년 6월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행복할 줄 알았던 결혼생활의 시작
스토너는 좋은 가정에서 최고의 학교를 다니며 자란 부잣집 아가씨 이디스 엘레인 보스트윅에게 첫눈에 반해 결혼한다. 이디스는 스토너에게 좋은 아내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겠다는 말을 하며, 그들의 결혼 생활은 행복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서로에 대해서 많이 알지 못하고, 깊은 이해 없이 결혼한 것이 화근이었다. 스토너가 내성적이고 문학과 학문에 깊은 관심을 가진 반면, 이디스는 보다 사회적이고 외부 세계에 관심을 두는 경향이 있었고, 결국 스토너는 결혼하지 한 달 도 안되어서 자신의 결혼이 실패작임을 깨달았다. 이디스와 자신이 맞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은 스토너는 더욱 학문 연구에 매달렸고, 그들의 사이는 더욱 침묵으로 채워지며 단절되어 갔다. 3년 후, 이대로 지낼 수 없다고 생각한 이디스는 아기를 갖자고 제안했고, 이로 인해서 그 둘 사이에 변화가 생기기를 기대했다.
그렇게 예쁜 딸 그레이스가 태어났고, 스토너는 이디스에게 줄 수 없는 사랑을 딸에게 줄 수 있었다. 출산 후 체력을 회복해야했던 이디스를 뒤로하고 자기가 살림을 하면서, 이디스를 돌보고 동시에 육아까지 했다. 일까지 병행하기 위해 그의 하루는 매우 바빴다. 그럼에도 스토너와 그레이스 사이는 예전과 다를 바 없었다.
이어지는 시련. 장애물. 실패.
스토너가 부모님을 잃고, 이디스의 아버지가 투자 실패 후 파산하며 자살하는 등 인생의 피할 수 없는 슬픈 순간들을 겪을 때, 그의 딸 그레이스와의 교감은 그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그 안정감도 잠시, 이디스는 그레이스가 자신의 남편의 서재에서만 틀어박혀있는 것을 참지 못하고 그에게서 떨어뜨려 놓는다. 그렇게 딸과도 어색한 사이가 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서로에게 거리를 지키며 이 정도면 괜찮다며 생각하며 삶을 살아갔다.
어느 날. 로맥스 교수가 미주리 대학의 영문학과에 새롭게 합류하게 되는데, 그는 신체적 장애를 가지고 있었고, 이에 어렸을 때부터 고립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자신의 신체적인 한계로 도망치기 위해서 책을 읽다가 점차 자유로움을 느끼게 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스토너는 친근감을 느낀다.
하지만 스토너는 대학원에 입학하고자 하는 찰스 워커라는 학생이 학문적 능력에 있어 명백한 결함이 있다고 판단하였으나, 로맥스는 반대로 그를 편파적으로 지지하며 둘 사이에 긴장이 흐르게 된다. 로맥스는 워커가 자신과 비슷하게 신체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학생이었기에 편들어주기를 한 것이었는데, 결국에 찰스워커는 영문과 대학원 과정에 들어오게 되었고 스토너는 자신의 실패를 알게 되었다. 로맥스는 자신이 스토너가 연민으로 워커를 대하지 않았다고 비난하고, 이후 맥스의 영향력 하에 스토너는 신입생들을 위한 필수적이고 기초적인 수업만 맡게되고, 좋은 강의시간표도 얻지 못해 자신의 연구와 가르침에 집중할 시간이 줄어들게 된다. 그렇게 그는 학과 내에서 고립되며, 열정이 고갈되게 되었고, 자신이 가치 있게 여기는 학문적 업적과 성취를 이루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게 되었다.
인생의 환기. 하지만 그마저도 잠시었을 뿐.
스토너가 자신의 삶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을 때, '캐서린 드리스콜'이 등장한다. 그녀는 이전에 스토너의 세미나를 수강했던 학생으로 찰스 워커로 인해서 로맥스와 벌어졌던 갈등에 대해 오랫동안 안타까운 마음을 품고 있었는데, 스토너에게 논문을 봐달라고 부탁하고 그들은 자신이 애정하는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그녀와 정서적으로 깊게 교감하기 시작한다. 그 둘은 남들이 자신들의 관계에 대해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이디스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은 대학에도 소문이 퍼지며 둘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고, 드레이퍼가 대학과 스토너를 떠나면서 그들의 관계는 종료된다.
한편 그레이스는 불행한 집을 벗어나기 위해서 충동적으로 어떤 남자의 아이를 갖게 되고 집을 나서지만, 그의 남편은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고, 그녀는 알콜에 의존하며 생활한다. 이후 스토너는 드레이퍼가 쓴 책에서 자신의 이니셜을 발견하고 감정이 북받치기도 한다.
어느 날. 통증을 느끼던 스토너의 몸에 큰 종양이 발견되고, 그는 명예 교수로 대학을 떠나고, 자신의 집에서 생을 마감한다.
평범 속의 깊은 여운: 스토너와 나의 반영
이 평범할 수 있을 수 있는 한 남자의 인생이 여운을 남기는 이유는 무엇일까를 오랫동안 생각을 했었다. 그 이유를 딱히 꼬집어 이야기할 수 없었지만, 마음을 아련하고 아릿하게 했기 때문이다.
우선 스토너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는 그다지 특별한 사람으로 기억되지 않았는데, 이것 자체가 인생의 허무함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했다.
생각해 보면 웬만하게 위대한 업적을 이루지 않고서야, 후대 사람들이 기억해 주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지 않은가. 보통 사람들은 그저 그렇게 잊히고 지워지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그 사실에서 허무함과 아쉬움의 감정이 뒤따라 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토너의 따뜻한 시선이 좋았다. 자신의 부모를 바라보고, 문학을 바라보고, 그리고 자신의 딸 그레이스의 어린 시절을 함께했을 때의 따뜻한 시선이 그 사람 자체를 선한 사람이라고 느끼게했다. 물론 그가 전쟁에 무관심했고, 결혼생활에 성공하지 못했고, 화목한 가정도 이루지 못했으며, 심지어 불륜도 저질렀다. 전반적으로 그가 인생을 대했던 방식은 소극적이어서 답답하다고 느끼곤 했지만, 동시에 나 자신의 과거를 돌아볼 때 많은 후회가 따라오므로, 무작정 스토너의 인생을 나쁘다라고 평가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가 문학에 보인 순수한 열정과 사랑은 경이로웠으며, 특히 내성적이며 소극적인 줄만 알았지만, 로맥스와 겪었던 갈등은 의외였다. 그렇듯 어느 면에서는 자신의 마음이 가지 않는 곳에는 무관심하다가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정의롭게 살고자 했던 스토너의 일부 모습들에서 그를 연민했던 것 같다. 나는 스토너의 인생을 통해서, 인생 자체가 다양한 모습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그는 온전한 순수성, 성실성을 꿈꿨다. 하지만 타협하는 방법을 찾아냈으며, 몰려드는 시시한 일들에 정신을 빼앗겼다.
인생의 여러 색깔: 스토너와 이반 일리치를 통해 본 삶과 죽음의 의미
스토너는 삶의 말년에 자신의 선택과 삶의 의미에 대해 성찰한다. 그는 자신의 인생이 실패했다고 생각했었다가,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인생은 가치있었다.
완벽한 인생은 있을 수 없다. 아니, 그것보다 '완벽함'이 규정되려면 어떤 조건이 만족되어야 하는가? '완벽함'이라는 개념부터가 사람마다 달라질 수 있는 것이지 않은가. 그렇기에 우리는 완벽하지 않았던, 평범했고, 불행하기도 행복하기도 했던, 성공도 실패도 있었던 스토너의 인생을 나의 인생을 비추어보게 된다. 그가 사람들에게 기억되지 않더라도, 그의 인생 그 자체로는 의미있었음을.. 하루하루 인생을 충실히 살아가려고 하며 고뇌하는 인간임을 느끼게 된다.
"그는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남들 눈에 틀림없이 실패작으로 보일 자신의 삶을 관조했다."
이제 나이를 먹은 그는 압도적일 정도로 단순해서 대처할 수단이 전혀 없는 문제가 점점 강렬해지는 순간에 도달했다. 자신의 생이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과연 그랬던 적이 있기는 한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기도 모르게 떠오르곤 했다. 모든 사람이 어느 시기에 직면하게 되는 의문인 것 같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의문이 이토록 비정하게 다가오는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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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모든 것이, 심지어 그에게 이런 지식을 알려준 배움까지도 무익하고 공허하며, 궁극적으로는 배움으로도 변하지 않는 무로 졸아드는 것 같다는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기쁨 같은 것이 몰려왔다. 여름의 산들바람에 실려온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실패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런 것이 무슨 문제가 된다고. 이제는 그런 생각이 하잘것없어 보였다. 그의 인생과 비교하면 가치 없는 생각이었다.
최근에 읽었던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보인 죽음을 앞둔 주인공과는 굉장히 다른 삶의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 흥미롭다. 이반 일리치는 자신이 굉장히 대단하고 의미 있던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병에 걸리게 된 것을 불운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어했다. 그러다가 정말 삶의 끝자락에 이르러 자신의 생각 자체가 오만이었음을 깨달았고, 자신의 삶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으며 그리고 자신 때문에 가족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런 면에서 자신의 인생이 실패했다고 생각하며 삶을 관조하기 시작하는 스토너하고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나는 훗날 어떻게 나의 지난 삶을 바라볼까?
작가 존 윌리엄스는 여러 독자들이 스토너에 대해 슬픈 감정을 느낄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고 하며, 자신은 스토너를 진짜 영웅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여러분들에게 스토너는 어떠한 인물로 기억되는가? 물론 스토너에 대한 감상은 각자에게 있으며, 그 다양한 의견마저도 '인생'그 자체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든 단 하나의 의견으로 기억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모든 인생들이 각자의 의미가 있을 수 있음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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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장 : 영화와 책 속에서>에서는 좋은 영화와 책을 소개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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