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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오브 시베리아>, <The Barber of Siberia> 1998
감독: 니키타 미할코프
주연: 올렉 멘시코프, 줄리아 오몬드
조연: 리처드 해리스, 블라디미르 일린
러닝타임: 135분
연령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로맨스, 드라마
#1
저는 이 영화를 <안나 카레니나>를 본 후에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안나 카레니나>를 2022년 1월쯤 보았으니, 약 2년 전의 일입니다. 저는 <안나 카레니나>의 여운에서 한동안 벗어나지 못했는데, 그 여운을 대신할 만한 영화를 찾던 중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러브 오브 시베리아>를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약 1/4 정도 본 후, <안나 카레니나>와는 사뭇 다른 코미디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설정들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해 더 이상 시청하지 않았습니다.
<안나 카레니나> 영화 리뷰 <Anna Karenina> 톨스토이 원작. 키이라 나이틀리, 주드로, 애런 존슨 주연
-감독 : 조 라이트 -주연 : 키이라 나이틀리 (안나 카레니나 역), 주드로 (알렉시 카레닌 역), 애런 존슨 (브론스키 역) -음악 : 다리오 마리아넬리 -러닝타임 :130분 ★★★★★ 줄거리 1984년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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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년 후, 이상하게도 따뜻한 나라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원래 살던 곳에 겨울이 오는 시즌이 되면 차가운 풍광을 담은 영화들이 그리워지곤 합니다. 그렇게 차가운 영화에 대한 갈증을 느끼던 중, 예전에 끝까지 보지 못했던 <러브 오브 시베리아>를 다시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본 지 2년이나 흘렀기에 줄거리가 어느 정도 기억났지만, 처음부터 다시 영화를 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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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영화는 제인이 러시아 정부에 벌목 기계를 판매하기 위해 로비스트로 고용되어 시카고를 떠나 모스크바로 향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 과정에서 러시아 황제 사관학교의 생도인 안드레이 톨스토이를 만나게 됩니다. 남편을 전쟁으로 잃은 미망인 제인은 톨스토이에게 끌리게 되고, 순수하고 열정적인 젊은 톨스토이 역시 제인에게 빠져듭니다.
제인의 배후에는 미국의 기술자이자 사업가인 더글라스 맥클라켄이 있습니다. 그는 제인을 자신의 딸로 위장시켜 러시아 귀족 사회에 진입하게 했고, 제인은 사관학교 교장이자 황제의 기술 발명회 부위원장인 래들로프 중장과 가까워지려 합니다. 맥클라켄의 벌목 기계가 완성되려면 황태자의 보조금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로비스트로서의 임무를 수행 중인 제인은 이 사실을 톨스토이에게 솔직히 밝히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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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들로프 중장은 제인의 활발한 성격과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벌목 기계 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하지만, 제인의 의도를 모르는 톨스토이는 제인과 래들로프 중장이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며 절망에 빠집니다. 결국 래들로프 중장도 톨스토이가 제인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톨스토이를 벌주기 위해 그가 제인의 부채를 훔쳤다는 누명을 씌웁니다. 톨스토이는 자퇴를 고민하지만, 제인은 그를 설득하며 사관학교에 남도록 만류합니다. 또한 톨스토이는 뛰어난 오페라 실력으로 황제가 참석하는 공연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기에, 공연의 성공을 위해서도 그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3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공연 당일, 톨스토이는 성공적으로 1부를 마친 뒤 우연히 제인과 래들로프 중장의 대화를 엿듣습니다. 제인이 톨스토이를 겨우 20살짜리 철없는 젊은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들은 톨스토이는 큰 상처를 받고, 결국 2부 공연 도중 관객석으로 난입해 래들로프 중장을 공격합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톨스토이는 감옥에 갇히고, 제인과는 이별하게 됩니다. 이후 톨스토이는 7년 간의 중노동을 하고, 5년 간 시베리아로 유배됩니다.
제인은 맥클라켄과 결혼해 다시 러시아로 돌아옵니다. 제인은 수소문 끝에 톨스토이의 위치를 알아내고 그를 찾으러 가지만, 톨스토이는 이미 하녀였던 두냐사와 가정을 꾸리고 있었습니다. 제인은 큰 상심 속에 돌아가며, 톨스토이는 그녀를 바라보기만 할 뿐 붙잡지 않습니다.
1905년, 미국에서 제인은 자신의 아들 앤드류가 있는 육군 훈련소로 편지를 보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제인의 아들 앤드류가 바로 제인과 톨스토이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었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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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영화는 1905년 미국에서 편지를 쓰는 제인의 시점, 그 편지를 받는 남자의 삶, 그리고 제인이 거쳐간 1885년 러시아의 시간을 교차시켜 보여줍니다. 제인의 사랑과 톨스토이의 헌신은 러시아 귀족 사회의 화려함과 함께 인간의 순수함, 맹목적인 열정, 그리고 광기를 생생히 그립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결국 마음속 화염을 견디지 못한 인물들이 만들어낸 거대한 비극으로 이어집니다. 이 영화는 1999년 칸 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작품입니다. 영화는 귀족 사회와 사관생도들을 낭만적으로 묘사하면서, 동시에 국책영화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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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육군 훈련소의 군인으로 등장하는 제인의 아들 앤드류는 교관을 상대로 "모차르트는 위대한 음악가"라고 고집스럽게 이야기합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해 어느 누구의 협박이나 겁박에도 굴하지 않는 그의 대쪽 같은 성격은, 아버지 안드레이 톨스토이를 떠올리게 합니다.
앤드류가 모차르트를 특별히 대단하다고 여긴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제인이 모차르트에 대한 애정을 꾸준히 보여줬기 때문이 아닐까요? 제인이 모스크바로 향하는 기차에서 톨스토이를 처음 만났을 때, 톨스토이는 자신이 오페라 동아리에서 연습 중인 작품이 모차르트가 작곡한 피가로의 결혼이라고 소개합니다. 또한, 톨스토이가 래들로프 장군을 공격한 사건도 바로 그 오페라 공연 도중에 발생했죠. 제인에게 모차르트는 단순한 음악가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그녀의 삶과 깊이 연결된 소중한 작곡가였을 것입니다.
#5
이 영화의 원제는 제가 생각했던 'Love of Siberia'가 아니라 'The Barber of Siberia'였습니다. '시베리아의 이발사'라는 뜻이지요. <러브 오브 시베리아>와는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만약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 개봉했을 때 "시베리아의 이발사"로 번역되었다면 어땠을까요? 로맨틱한 느낌은 사라졌겠지만, 동시에 더 흥미롭고 독특하게 다가왔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시베리아의 이발사'는 맥클라켄이 만든 벌목 기계의 이름으로, 그 이름에서 느껴지는 무자비함은 마치 제인과 톨스토이의 격렬하고 파괴적인 사랑을 떠올리게 합니다.
톨스토이는 자신이 제인에게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고 느끼며 큰 상처를 받습니다. 그 절망감이 극에 달해 결국 무대에서 래들로프 장군을 바이올린 채로 공격하는 비극적인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이 장면은 톨스토이의 순수함과 열정이 상처받아 통제할 수 없는 감정으로 폭발하는 순간을 강렬하게 보여줍니다.
#6
모스크바로 향하던 기차에서 톨스토이를 처음 만났을 때, 제인이 읽고 있던 책은 바로 <안나 카레니나>였습니다. 그 순간부터 이 영화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할 것이라는 예감을 했어야 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단지 이 영화가 제가 좋아하는 <안나 카레니나>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에만 집중했네요. 결국 <러브 오브 시베리아>의 결말은 제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비극적이었고, 그 잔상은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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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은 자신으로 인해 톨스토이가 오해하고 질투심에 휩싸이게 되었음을 깨닫고, 오랫동안 그 일을 곱씹으며 후회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톨스토이는 자신의 충동적 행동을 후회했을까요? 아니면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행동에 대해 한 점 부끄러움이 없었을까요? 만약 톨스토이가 질투심을 가라앉히고 좀 더 차분하게 대처했다면, 제인과 사랑을 이룰 수 있었을까요? 이 영화가 깊은 여운을 남기는 이유는 톨스토이의 내면이 충분히 묘사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답답하면서도 궁금함을 자아내며, 이로 인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새해가 밝았지만, 작년 연말에 발생한 여러 대내적 사건들로 인해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좋은 영화가 잠시나마 여러분의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번 주에도 여러분에게 좋은 영화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2025년에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평안하고 행복으로 가득한 한 해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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