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Wuthering Heights>, 1992
-감독 : 피터 코스민스키
-주연 : 줄리엣 비노쉬, 랄프 파인즈, 소피 워드, 자넷 맥티어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러닝타임 : 106년
#1
요즘 저는 랄프 파인즈의 영화를 계속해서 보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하나하나 섭렵해 가는 즐거움과 뿌듯함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지요.
그의 데뷔작인 1993년 개봉 영화 <폭풍의 언덕>은 사실 처음에는 크게 관심이 가던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커뮤니티 글에서 랄프 파인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이 작품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글쓴이는 랄프 파인즈가 여러 작품에서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여전히 폭풍의 언덕 속의 ‘히스클리프’로 남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과연 그 영화에서 어떤 연기를 보여줬기에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깊은 인상을 남겼는지 궁금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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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청소년용으로 맞게 각색된 소설은 제 본가 책장에 분명히 있었고, 저는 6학년 때 이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다 커버린 지금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았고, 성인이 된 후에도 그 작품의 영화나 드라마를 제대로 보지 않았습니다. 한 1년 전쯤 카야 스코델라리오가 주연으로 출연한 <폭퐁의 언덕>,2012를 시도해 봤던 적이 있는데, 초반 몇 분을 보고는 화면이 너무 어둡고 카메라 움직임이 정신없어서 끝까지 보지 못하고 포기했었죠.
그래서 사실 1992년 개봉한 <폭풍의 언덕>을 보기 전에 약간 걱정이 되었지만, 랄프 파인즈가 출연한 영화는 언제든 볼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게다가 줄리엣 비노쉬도 출연했으니 더욱 기대가 되었습니다.
#2
영국 요크셔 지방의 황량한 황무지. 캐시의 아버지는 리버풀 길거리에 버려져 있던 꼬마를 '폭풍의 언덕'으로 데려옵니다. 캐시의 아버지인 언쇼는 그를 가족처럼 여기고 사이좋게 지내라고 합니다. 그렇게 캐시에게는 오빠가, 캐시의 친오빠였던 힌들리에게는 동생이 생기게 됩니다.
히스클리프는 조용하고 냉정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원래부터 조용한 성격이라기보다는, 힌들리가 히스클리프를 심하게 구박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부분도 있습니다. 한편 캐시는 이러한 소년에게 끌립니다. 두 사람은 자연을 사랑하며 함께 지냅니다. 그러나 캐시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상황은 달라집니다.
난 언제나 돌아올 거야. 그걸 몰라? 히스클리프..
힌들리는 히스클리프를 더욱 심하게 구박하고, 그를 마구간으로 내쫓습니다. 히스클리프와 캐시 사이에는 신분의 벽이 있었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했습니다. 어느 날 캐시와 히스클리프는 계곡 깊숙이 있는 린튼가의 집을 호기심에 엿보다가, 캐시는 그 집에 머무르게 되며 대지주의 아들 에드가에게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3
힌들리의 아내 프랜시스는 헤어튼 언쇼를 낳던 산고 중에 숨을 거두었고, 힌들리는 크나큰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아내와 함께 모든 의미를 잃게 됩니다. 상중에서도 캐시는 에드가와 이사벨라가 집에 온다고 하니 상복도 갈아입고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캐시는 점차 히스클리프에게서 마음이 멀어지고, 히스클리프를 누구보다도 사랑하지 히스클리프와 결혼하면 천해진다는 말을 듣고 상처받은 히스클리프는 집을 떠납니다. 히스클리프가 떠난 후, 캐시는 자신이 진정으로 그를 사랑했음을 깨닫지만 에드가와 결혼하고 폭풍의 언덕을 떠나고 그레인지로 옮겨 행복한 생활을 보냅니다.
영혼과 마음속으로는 틀렸다는 걸 알지만 오빠가 히스클리프를 천대하지 않았다면, 히스클리스와 결혼하면 나까지 천해져. 내가 얼마나 그를 사랑하는지 몰라. 히스클리프를 사랑하는 건 변함없는 나우와 같아. 없어서는 안 될 기쁨의 원천이지.
#4
히스클리프를 기다리다가 그가 돌아 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쯤, 2년 후 군에 입대해 복무하며 큰돈을 번 히스클리프는 폭풍의 언덕으로 돌아와 힌들리의 빚을 모두 갚아주며 재산을 빼앗습니다. 힌들리는 노름빚을 갚느라 재상을 저당 잡혔던 상태였습니다. 그렇게 그는 특별히 애착이 있는 '폭풍의 언덕'의 주인이 됩니다.
돌아온 히스클리프는 캐시의 마음을 돌리려다 뜻대로 되지 않자, 그는 복수심에 에드가의 여동생 이사벨라와 결혼해 에드가의 재산을 차지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안타깝게도 캐시는 딸 캐서린을 낳고 세상을 떠납니다. 히스클리프는 이에 슬픔에 빠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캐시가 히스클리프 때문에 자신이 죽음에 이르렀다고 이야기했기에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그렇게 캐시를 증오하면 캐시가 이승을 머물면서 자신의 옆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캐시가 세상을 떠나고 오래 지나지 않아, 그녀의 오빠 힌들리도 술로 인해 세상을 떠나고. 그의 아들이자 상속자인 헤어튼만 남게 됩니다. 히스클리프는 그를 아들로 받아들입니다.
18년 이후. 캐시와 에드거의 딸 캐서린 린튼은 그레인지 내에서 아버지의 비호 속에 자랐습니다.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을 그녀의 사촌이자 자신의 아들 린튼과 강제로 결혼시키고, 에드가의 재산의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듭니다.
하지만 죽기 직전, 그 모든 것이 헛된 짓임을 깨닫고 참회하게 됩니다. 철저한 복수심에 사로잡혔던 히스클리프는 작가의 손길에 이끌려 영혼이 빛 가운데로 인도되며 눈을 감습니다.
#5
저는 히스클리프라는 캐릭터를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굉장히 복잡한 캐릭터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의 성격은 매우 집착적이고, 예민하며 까칠했습니다. 저는 그가 진정으로 캐시를 사랑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단지 그녀를 소유하려는 듯한 모습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어린 시절의 학대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상실로 인해 그의 복수심이 폭발하여 히스클리프 자신을 완전히 지배해 버렸다는 것도요.
히스클리프는 캐시를 누구보다 사랑했지만, 동시에 그녀를 증오했습니다. 캐시는 오빠가 자신을 천대했을 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자신마저 천해질까 두려워 돈 많은 대지주인 에드거와의 결혼을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신분의 벽이 얼마나 컸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캐시는 히스클리프를 포기한 셈이라고 생각합니다. 소극적으로 뒤로 물러선 상태에서요. 히스클리프는 그런 캐시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이해하려는 갈등 속에서 혼란스러워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아내인 이사벨라를 사랑으로 대해주지 않았고, 이사벨라 또한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절망하여 스스로를 학대하기에 이릅니다.
저는 캐서린이 캐시와 너무나 닮았기에 히스클리프가 그녀에게는 다르게 대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 예상은 계속 빗나갔습니다. 히스클리프는 예측하기 어려운 캐릭터였습니다. 그의 주변 모든 것은 비극으로 치달았습니다. 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미워하는 자를 무너뜨리는 사람이었죠.
#6
제가 보는 히스클리프의 사랑은 매우 폭력적이었습니다. 그는 캐시를 소유하고 빼앗기 위해 집착했으며, 에드가와의 결혼 생활을 파국으로 몰아갔습니다. 에드가는 아내 캐시를 보듬어주기보다는, 히스클리프와 얽혀 있는 그녀의 존재를 멀리하려 했고, 그로 인해 캐시는 임신 중에도 남편의 충분한 관심과 케어를 받지 못했습니다. 캐시는 히스클리프가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말합니다. 신분 차이에서 비롯된 비극은 안타깝지만,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놓아줄 수도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오늘날이라면 '데이트 폭력'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겠지요. 시간을 되돌릴 수 없으니 우리는 때로 포기해야 하는 것들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며, 그것이 인생일지도 모릅니다.
전체적으로 모든 캐릭터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고, 음산한 분위기, 그리고 특이하고 복잡한 캐릭터들. 그래서 저는 폭풍의 언덕이 취향을 많이 타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의 복잡한 캐릭터에 매료되었습니다. 캐시조차 히스클리프를 사납고 음흉하고 냉혹한 사람이라고 묘사했다는 점에서 놀랐습니다. 히스클리프 스스로도 자신을 악당, 불한당이라고 불렀습니다.
에밀리 브론테는 잉글랜드의 소설가로, 폭풍의 언덕은 그녀의 대표작이자 유일한 소설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영국 문학의 고전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발표 당시에는 비평가들로부터 비윤리적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 서머셋 몸 등의 재평가를 통해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7
저는 폭풍의 언덕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더 보고, 동시에 소설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음산한 증오와 비통함이 가득한 소설의 매력에 신기하게 빠져버린 것이죠. 리뷰 초반에 언급했던 분의 글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왜 그분에게 히스클리프의 랄프 파인즈가 강렬하게 남아 있는지를요. 선과 악을 넘나드는 연기를 모두 소화하는 랄프 파인즈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다른 영화 속에서 그의 존재감이 조금 옅어진 듯한 느낌도 듭니다. 이 영화를 보신다면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하실 겁니다.
히스클리프: 왜 스스로를 속였지? 캐시. 날 사랑했잖아. 무슨 권리로 날 떠난거야? 린튼에 대한 가련한 호기심? 신도 악마도 우릴 갈라놓을 수 없었는데. 네 스스로 그렇게 하다니. 네 가슴을 찢은 건 내가 아니라 너야. 동시에 내 가슴도 찢어놓았지.
캐시 : 내가 잘못했다면 마땅히 죽을 거야. 오빠도 날 떠났잖아 하지만 난 용서할게. 오빠도 날 용서해 줘.
히스클리프 : 그건 너무 어려워... 그 거짓들을 용서하기란. 그래 네가 한 짓을 용서할게. 날 죽인 널 사랑해. 하지나 널 죽인 자들은? 어떻게 용서하지? 내가 어떻게?
히스클리프는 어린 시절의 학대와 사랑의 상실로 인해 복수심에 사로잡혔지만, 결국 그가 추구했던 모든 것이 헛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지쳐버린 그는 자신의 사랑 캐시 옆으로 가고자 합니다. 그렇게 그는 캐시에게 마치 용서받은 듯, 그렇게 그녀의 손을 잡고 세상을 떠납니다.
우리도 언젠가 모든 것이 허망했음을 깨닫게 될까요?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조금만 마음을 달리 한다면 소중히 기억될 추억들이 생길까요? 이 점을 회고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아, 그리고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류이치 사카모토'가 작곡했습니다. 그의 섬세한 음악이 이 영화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줍니다. 사카모토를 좋아하는 분들께도 이 영화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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