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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바바리안> 치로 구에라 감독. 조니 뎁 , 로버트 패틴슨, 마크 라이언스주연. 줄거리. 해석. 감상. 보러가기. 결말. 정보

by evelyn_ 2024. 9. 14.

 


<바바리안> <Waiting for the Barbarian>, 2021
-감독 : 치로 구에라
-주연 : 조니 뎁 , 로버트 패틴슨, 마크 라이언스
-장르 : 드라마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14분 


 
#1
 
치로 구에라는 저에게 생소한 감독이었습니다. 반면에 주연 배우들은 너무나 익숙하고 친숙했죠. 조니 뎁, 로버트 패틴슨, 마크 라이언스.. 이 낯설고 생소한 느낌이 저를 이 영화를 보게끔 이끌었습니다. 가끔 익숙하지 않은 조합에서 의외의 것을 발견하고 싶다는 기대 때문이겠죠.

이 영화는 콜롬비아 작가 J.M. 쿳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콜롬비아 작가의 작품을 콜롬비아 감독이 영어로 각색한 것이지요. 영화는 국경 치안관이 원주민과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었지만, 잔인한 부대가 들어와 원주민 말살 정책을 펼치면서 한순간에 마을의 평화가 사라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 <바바리안> 보러가기


 
#2
 
수도에서 온 졸 대령(조니뎁 분)은 반듯한 제복을 입고 선글라스를 끼고 국경 마을에 등장합니다. 그곳의 국경 치안관이자 판사(마크 라이언스)는 긴장된 표정으로 그를 맞이합니다. 
 
싸늘하고 차가운 태도로 변방을 바라보는 졸 대령에게, 치안 판사는 자신이 수도에서 이 변방으로 온 지 한참이 되었고, 그래서 자신이 수도로 돌아가게 되면 오히려 외부인처럼 느껴질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오랫동안 그곳에서 생활했던 치안 판사에게는 그곳이 마음의 고향이나 다름없었지요.

"휴가를 받았는데도 놀랍게도 그다지 내키지 않더군요. 이곳에 뿌리를 내린 탓이겠죠. 아마 수도로 돌아가면 제가 외부인처럼 느껴질 겁니다." 물론 수도도 많은 것이 변했을 테고요. 제가 떠난 이후로요."

 
하지만, 이 말을 들은 졸 대령은 뭔가 이상한 기운을 눈치채고 사찰을 더 서두르려고 합니다. 


 
 
#3
 
다음 날, 판사는 졸 대령을 감옥으로 에스코트합니다. 가는 길에도 판사는 경직된 분위기를 풀고자 졸 대령에게 이곳의 문화와 습성에 대해 계속해서 설명합니다. 감옥이라고 해봤자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감옥이 아니라는 것을요. 그리 많은 범죄가 일어나지 않을뿐더러, 형벌 또한 주로 벌금이나 강제 노동으로 끝난다는 것도 덧붙입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졸 대령은 심문을 하겠다고 합니다. 뜻밖의 진실을 알 수도 있다고 하면서요.
 
다음 날, 판사는 고문 끝에 목숨을 잃은 늙은 노인과 온몸에 큰 상처를 입은 젊은 남자를 보고 경악합니다. 그는 곧장 졸 대령에게 달려가서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묻지만, 졸 대령은 자신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다고 이야기합니다. 변방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찾았다고 하며, 부대를 끌고 밖으로 나가 제국을 위협하는 존재들을 찾을 것이라고 합니다. 판사는 위험하게 변방으로 떠나는 그를 막아보려고 하지만 헛수고입니다. 며칠 후, 졸 대령은 이방인들을 데려와 고문하고 심문합니다. 졸 대령은 판사에게 자신이 수도로 돌아간 후 변방이 절대 평안하지 않고, 잘 운영되고 있지 않다고 보고할 것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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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추운 겨울, 한 원주민 여성이 다친 몸을 이끌고 판사에게 찾아옵니다. 그녀는 일전에 졸 대령에 의해 고문을 당해 다리가 심하게 다쳐 제대로 걸을 수 없는 상태였고, 눈도 멀었습니다. 판사는 그녀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그녀를 자신의 마을에서 일하게 하며 정성껏 보살핍니다. 시간이 지나고 원주민 여성은 몸을 회복하긴 했지만, 얼굴은 늘 어두웠습니다.
 
 
이후 봄이 찾아옵니다. 날씨가 따뜻해지자, 판사는 여성의 뜻대로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여정을 떠납니다.
마지막까지 판사는 그녀의 마음을 되돌리고 함께 마을로 돌아갔으면 했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그렇게 그녀를 그녀가 살던 곳으로 보내준 후 아쉬운 마음을 안고 그는 자신의 국경 마을로 돌아옵니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판사가 떠나있었던 동안 마을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판사는 제국의 명령을 어기고 젊은 원주민 여자를 동행한 채 무단이탈을 했고, 원주민들과 협력한 것에 대한 의심을 받으며 체포되어 고문을 당합니다.그는 졸지에 반역자로 낙인찍힌 채 마을 청소를 하는 신세로 전락합니다.
 
한편 졸 대령과 원정군이 그들끼리 ‘야만인’이라고 부르는 적들을 섬멸하기 위해 떠난 지 한참 되었지만, 돌아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머리가 잘린 채 한 군인이 마을로 돌아오고, 그곳을 장악하고 있던 제국의 관리들은 이에 놀라 임시적인 수단으로 철수합니다. 그리고 마을은 혼란 속에 빠집니다. 야만인을 처단하기 위해서 떠났던 졸 대령은 넋이 나간 표정을 하고 등장합니다.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합니다. 그는 몇 남지 않은 대원들과 서둘러 줄행랑을 칩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는 수백만은 족히 되어보이는 원주민들이 말을 타고 모래 바람을 일으키며 제국의 영토로 쳐들어오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5
 
이 영화가 좋았던 점 중 하나는 느리고 차분한 템포였습니다. 영어를 잘하는 편이 아닌데도 많은 대화들이 빠르지 않고, 어려운 단어들을 사용하지 않아서 이해하기가 크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제 스스로가 영어를 생각보다 잘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했을 정도로요. <바바리안>은 치로 구에라가 만든 최초의 영어 영화라고 하던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영화를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런 영화를 구성해 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영화는 이해하기 쉽습니다. 복잡한 인간관계로 인해 머리가 어지럽히지 않고, 따라가기 쉬운 영화입니다. 단순한 플롯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두 번째로, 저는 이 영화가 특정 시대를 대변하지 않는 점이 좋았습니다. 명확한 시대적 배경이 없지만, 과거 어느 시점에서든 있었을 법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으니까요. 많은 시대를 대변하는 이 영화는 현시대에도 유효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죠. 그렇기에 더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변방에서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는 부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가령 졸 대령이 판사에게 아침을 일찍 준비하라고 하는 것은 뭔가 여유로운 변방의 삶에 대해서 현대적이지 않다고 생각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변방인들에게는 ‘선글라스’라는 것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이한 물건이었다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6
 

 
'바바리안'이란 단어는 원래는 문화권 국가에서 본국보다 문명이 떨어진 종족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국가마다 그 모습이 완성되고 문화를 교류해 가며 많은 부분에서 서로가 비슷해졌기 때문에 많이 쓰이지 않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원주민과 협력했다는 죄로 졸지에 자유인으로 전락해 버린 판사가 졸 대령의 부하에게 어찌 사람을 고문하고 음식을 어떻게 먹느냐는 질문을 던지는데 이 질문을 통해 진정한 ‘야만인’의 의미를 반추해 볼 수 있게 합니다. 

변방에 대한 경험이 많은 판사는 애초에 문제가 없었지만, 졸 대령의 개입으로 평화는 깨졌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우리는 우리대로, 그들은 그들대로 살았지만 모든 것이 변했다"라고 합니다. 제국의 사람들은 이 나라가 자신들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사막의 땅을 개간하고 작물을 심고 마을을 세웠다고 여기지만, 원주민들의 시각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외부인을 ‘손님’이자 ‘단기 체류자’로 규정하며, 사막을 이겨내지 못하고 떠날 것으로 생각하고 기다린다고요. 하지만 그들을 얕잡아 봐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원주민들은 그곳의 지리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협력하면 그 파워가 엄청날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있죠.


 
#7
 
영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원주민인 여인과 판사와의 관계는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요. 둘의 관계는 복잡한 감정의 혼란을 겪었을 것입니다. 판사는 비록 자신이 그녀의 부친과 그녀를 고문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원래 속해있었고, 현재에도 속하고 있는 제국의 한 사람으로부터 부상을 입은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물심양면으로 보살폈습니다. 하지만 그녀를 그 옆에 머무르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여인은 궁극적으로 자신이 속한 부족으로 돌아가는 결정을 내리게 되는데,  그녀에게 마지막까지 결정을 다시 한번 재고해 달라고 하는 판사 행동에서는, 처음엔 민주적이고, 원주민들의 자유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일 수 있겠지만, 결국에는 원주민 여자에게 자연스럽지 않은 것을 '강요'했다고 느껴집니다.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던 것일까요.

여름, 가을, 겨울, 봄—마치 사계절은 누가 강요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섭리인 것처럼, 제국의 말년은 언제나 그랬듯이 이러한 계절의 섭리와 함께 했을 것입니다. 판사는 이미 이러한 상황을 예견했을 것이며, 그가 수집하던 포푸리 나무의 메모들에서도 제국의 흥망성쇠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세대마다 변방에서 집단 광기 증상이 나타났다고 설명했죠. 제국이 안정되고 안락해지면 사람들은 좀이 쑤시게 되고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고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야만인에 대한 공포를 ‘의도적’으로 조장해야 하는 것이죠. 판사는 조용히 지나가기를 원했고, 그것이 그가 주장하는 '자연의 섭리'였지만, 반대로 그 평화로움은 인간의 역사에 있어,그리고 자연의 역사에서 오히려 더 예외적인 상황인 것 같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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