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족> <Shoplifters>, 2018
-감독 : 고레에다 히로카즈
-주연 : 릴리 프랭키 (오사무 시바타 역), 안도 사쿠라 (노부요 시바타 역),
마츠오카 마유 (아키 시바타 역), 키키 키린 (하츠에 시바타 역),
죠 카이리 (쇼타 시바타 역), 사사미 미유 (유리 역)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러닝타임 : 121분
# 1
영화 <어느 가족>은 자신의 꿈을 '영화감독'이라고 이야기하는 한 미국인 튜터와의 수업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그 튜터의 추천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평생 보지 못했을 영화이지 않을까 싶네요. 왜냐면 너무나 평범한 제목이었기에 말이에요. 아무리 유명한 감독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이라고 한들, 보고 싶은 영화들은 계속해서 쌓여가니 굳이 볼 생각을 하지는 않고 있었습미다. 물론 그의 작품 중 <파비안느의 진실>을 의미있게 보았었지만, 그렇다고 엄청난 임팩트를 남겼던 것은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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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정말 순전히 튜터의 추천으로 인해서 보게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관심 없었던 영화를 보고 이야기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저의 취향과 가치관을 확장하는, 일종의 ‘자기계발’과 다름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또한 제가 구독하고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에 이 영화가 있었기에 더욱 부담이 없기도 하고요.
# 2
영화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일용직 노동자 오사무, 세탁업체에서 일하는 그의 아내 노부요, 호스티스 바에서 일하는 아가씨 아키, 남자아이 쇼타, 집주인이자 연금으로 살아가는 노부인 하츠에가 그들입니다.
쇼타와 그의 아빠인 오사무는 그날도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훔치고 고로케를 먹으며 집으로 돌아오다가, 우연히 집 밖에서 겁먹은 채 떨고 있는 '유리'라는 이름의 한 소녀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오게 됩니다. 가족들은 유리의 온몸에 있던 상처를 통해 유리가 어떤 가정에서 지냈는지 대충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혹시나 유괴를 한 것 처럼 오해를 받게 될까 봐 집에 다시 보내주려고 했지만, 유리의 집에서 벌어지는 격한 부부싸움을 들은 노부요와 오사무는 유리와 함께 당분간 생활하기로 합니다.
행방불명 후 2개월이 지나고 나서 유리의 부모가 실종신고를 하고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지만, 유리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유리는 쇼타를 오빠라고 부르고, 쇼타도 유리를 여동생으로 받아들입니다. 노부요는 유리에게 사랑을 주고, 그들은 서로가 행복한 추억들을 쌓으며 생활합니다.
"선택 받은건가, 우리가?"
"보통은 부모를 선택할 순 없으니까"
"근데, 스스로 선택하는 쪽이 더 강하지 않겠어? 유대.. 정 같은 거 "
노부요는 한 직장동료와 함께 해고에 당할 위기에 처합니다. 회사에서는 두 직원끼리 서로 이야기하여 한 명을 추려달라고 부탁합니다. 노부요가 유리를 데리고 다니는 것을 본 직장동료는 이를 약점으로 잡고, 노부요가 직장을 그만두게끔 단념시킵니다.
한편 할머니 하츠에는 죽은 전 남편이 다른 여자와의 불륜으로 낳은 아들의 집을 정기적으로 찾아갑니다. 그곳에서 하츠에는 그 가족이 건네는 돈을 사양하지 않고 받아오지요. 실은 그 집의 큰 딸이 노부요네와 함께 살며 호스티스 바에서 일하는 아키인데, 부모는 아키가 호주에서 살고 있는 줄만 알고 있습니다.
# 3
가족들 모두가 바다에 놀러가서 행복한 추억을 만들고, 집에 돌아온 하츠에는 잠자다가 세상을 떠납니다. 이후 오사무와 노부요는 하츠에의 죽음을 신고하지 않은 채 시신을 집에다 묻고 계속해서 연금을 받기로 합니다.
이후 쇼타는 슈퍼에서 유리가 물건 훔치는 것을 발각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 본인이 주의를 끌고 도망치다가 부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가게 되면서, 가족의 모든 것이 관객들에게 밝혀지게 됩니다.
오사무와 노부요가 노부요의 전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했었습니다. 오사무는 이 일로 인해서 전과가 남게 되지요. 이 사건은 물론 종결됐다고한들, 이번 사건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있을 것입니다.
노부요는 자신이 직접 땅을 파고 하츠에를 묻었다고 이야기하고 자신이 모든 것을 뒤집어씁니다. 아키는 이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고, 할머니 하츠에가 자신의 부모의 집으로 주기적으로 찾아가서 돈을 받았다는 사실에도 크게 실망합니다. 유리는 친부모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쇼타는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보호시설에 맡겨집니다.
감옥에 들어간 노부요는 자신이 부모가 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쇼타에게 쇼타를 주운 곳은 마츠도에 있는 파칭코 주차장이었다고 이야기하며, 원하면 친부모님을 찾을 수도 있다고 말해 줍니다.
시간이 흘러 쇼타는 오사무는 오랜만에 만납니다. 쇼타는 묻습니다. 정말 그 때 자신을 버리고 도주하려고 했었냐고. 오사무는 솔직하게 그랬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아빠가 되기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인정한듯이 자신은 '아저씨'로 돌아가겠다고 이야기합니다.
다음 날, 쇼타가 보호시설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실은 파칭코에서 자신이 일부러 붙잡혔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때 마침 버스는 도착하고 오사무는 아쉬운 마음으로 쇼타를 부르며 달리지만 버스는 멈추지 않습니다. 쇼타는 오사무에게 닿지 않는 작은 목소리로 '아빠'라고 그를 부릅니다.
# 4
영화를 다시보면서 제일 먼저 서로가 서로를 어떤 호칭으로 불렀는지에 대해서 귀를 기울여보게 됩니다. 실은 영화를 볼 때는 당연히 서로가 서로를 아빠, 엄마라고 불렀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두 번째 보면서 깨닫게 됩니다. 별 대수롭지 않게 쇼타에게 오사무가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라고 했을 때 거부했던 것도 그냥 저는 사춘기 소년의 반항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아키가 돈을 버는 방식에 대해서도 가족들이 아무런 잔소리를 하지 않는 것에서도 굉장히 현대적인 가정의 모습 인가 싶었어요. 가난하면 누가 어떤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가에 대해서는 크게 관여하지 않고, 그저 돈을 벌기면 하는구나..라고 씁쓸해했죠. 하지만 그들이 피로 이어지지 않은, 즉 생물학적인 가족 관계가 아니라는 것은 나중에 돼서야 알았습니다.
오사무와 노부요는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노부요는 특히 그래서 더욱 유리를 아껴했던 것이죠. 쇼타도 그런 마음으로 파칭코 주차장에서 데려왔을 것입니다. 부모를 선택할 수는 없지만, 만약 내가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어느 가족>의 노부요 가족은 분명 전통적인 가족의 모습을 벗어나있습니다. 하츠에의 시신을 집에 묻어버리는 행위를 보면 그들이 하츠에의 연금이 목표였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만, 가족의 모습으로 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물론 그렇다고 그들의 행위가 정당화 될수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낳으면 다 엄마가 됩니까?"
"하지만 안 낳으면 엄마가 될 수 없죠."
결국에 유리는 어른들의 손에 의해서 자신의 불행한 가족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린 유리에게는 힘이 없었겠죠. 그저 친부모 가정으로 돌아가면, 세상은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유리가 바닷가에 노부요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설득적이지 못하죠. 그런데 정말 유리가 오롯이 자신의 의지대로 가족을 선택할 수 있었다고 하면, 어느 가족을 선택했을까요? 새옷을 사주고 때리는 자신의 진짜 엄마 아빠였을까요, 아니면 사랑한다니까 때린다고 하는 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려준 노부요였을까요?
# 5
노부요 가족들은 쉽게 연민하고 동정하는 마음이 여린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오사무는 도둑질 말고는 가르칠 것이 없었으며, 그 가족구성원들 모두가 어린 아이가 옳지 못한 행동을 하는 것을 눈감아 주었습니다. 생계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지요. 진짜 부모가 아니었기에, 학교에 보낼 수 없었고 따라서 집에서 공부할 수 없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라고 하며, 쇼타를 어쩔 수 없이 좁은 세상에 놔뒀어야 했어요. 그러던 쇼타가 점점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아 갑니다.
노부요와 가족들은 쇼타가 병원에 입원하고나서 자신들의 신변이 발각될 위기에 처하자, 간밤에 도망치려고 합니다. 하지만 경찰에게 붙잡힌 그들은 결국에 유리를 유괴한 범인들로 지목되고, 쇼타는 자신이 차 안에서만 살고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가족들이 자신을 버리고 짐을 싸서 도망치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충격을 받습니다. 이런 것들이 그 가족이 가지고 있던 한계점이겠지요. 아무리 행복하다 하더라도, 우리는 한 사회에 속해있는 사람이니 사회의 규범에게 완전히 자유로울 수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마지막 쇼타가 자신이 노부요와 오사무에게 자신이 ‘일부러 붙잡혔다’는 이야기는 마음을 찡하게합니다. 그것은 바로 쇼타가 노부요와 오사무를 선택한 것이나 다름 없다는 이야기이니까요. 노부요가 쇼타를 '주어온' 곳을 알려줌에도 쇼타는 자신의 친부모를 찾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겠지요. 본인이 노부요와 오사무의 손에 붙잡혀지기를 바랐으니까요. 쇼타는 분명 불행한 가족들에게 벗어나고 싶었던 것일테지만, 그 선택이 무조선 옳지많은 않았습니다. 쇼타는 누구보다도 노부요와 오사무가 자신을 '아들'이라고 여겨주기를, 정말 쇼타가 좋아서 데려온 것이라고 강한 확신을 가지고 말해주기를 바랬을 것입니다.
영화를 통해 우리들은 어느 인간이라도 태어날 가족을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반대로 내가 어느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이 마냥 좋으리만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가족'의 정의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합니다.
# 6
영화 <어느 가족>의 일본어 원제는 <万引き家族> (만빈키 가조쿠)입니다. 이는 직역하면 "만빈키"는 '절도', 특히 '상점 도둑질'을 의미하고, "가조쿠"는 '가족'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상점 도둑질하는 가족"이라는 뜻으로 번역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영어 제목 또한 '좀도둑들'이라는 의미를 가진 <Shoplifters>로 개봉 되었습니다.
앞서 말했듯 한글 타이틀인 <어느 가족> 만을 놓고 보았을 때, 지극히 평범하고 화목한 가정의 모습을 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서 큰 흥미를 느끼지 않았던 저로써는, 다른 제목으로 개봉이 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좀도둑 가족' 이었으면 어땠을까요?)
아, 노부요를 연기한 안도 사쿠라의 연기에 대해서 이야기 안 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팍팍한 삶때문에 지쳐 삶에 무관심한 듯하고 달관한 듯한 말투와 표정. 하지만 동시에 한없이 여리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그녀에게서 희미하지만 아름다운 빛을 느꼈습니다. 특히, 그녀가 경찰에게 유괴사건에 대한 취조 당하면서 아이들이 자신을 무엇이라고 불었던지에 대해서 회상하면서 복잡한 심정으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정말 현실적이어서 마치 연기가 아닌 것 처럼 느껴졌어요. 정말 두고두고 생각날 명연기, 명장면이지 않을까 합니다.
저는 이제서야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다른 영화들을 보고 싶어졌습니다. 아무래도 그 튜터의 말을 듣기 잘한 것 같아요. 왜 사람들이 이 감독을 좋아하는지 이제야 좀 알 것 같네요. 그런데 몇몇 선정적인 장면을 고려 할 때 15세 이상 관람가로 개봉한 것이 놀랍기는 합니다. 혹시 영화 제목에 낚여 (?) 자녀들과 극장에 갔었다면 민망한 상황이 벌어졌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물론 너무나도 좋은 영화이지만 15세라면 초등학교 5학년인데.. 아니면 제가 너무 보수적인 것일까요?
여러 '가족'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들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 샬롯 램플링 주연의 <아이 오브 더 스톰>,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더 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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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장 : 영화와 책 속에서>에서는 좋은 영화와 책을 소개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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