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춤><The King Is Dancing>, 2001.
-감독 : 제라드 코르비오
-주연: 브누아 마지멜, 보리스 테랄
-장르 :드라마, 뮤지컬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 113분
#1
가끔 시대 영화들이 굉장히 끌릴 때가 있습니다. 마치 '갈증'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로 강렬한 갈망을 느끼게 되죠. 제게 그런 갈증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삶이 버겁다고 느껴질 때 다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면, 그 순간만큼은 현실을 도피하여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왕의 춤>은 그런 이유로 제가 보게 된 영화입니다. 아무런 역사적, 인물적 배경 지식이 없어도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소개드릴 <왕의 춤>은 배경 지식을 조금 알고 보면 더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는 루이 14세와 그의 궁정에서 활동했던 작곡가 장 바티스트 륄리, 그리고 극작가 몰리에르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루이 14세는 우리가 한 번쯤 들어봤을 바로 그 '태양왕'입니다. 그는 왕권신수설을 믿었고, 국왕의 권력은 신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라는 사상을 지지하며 강력한 중앙집권 정치를 펼쳤던 인물입니다.
이 영화는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와 그의 궁정에서 활동했던 유명한 작곡가 장 바티스트 륄리, 그리고 극작가 몰리에르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영화는 특히 음악, 예술, 권력의 관계를 다루며, 17세기 프랑스 궁정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바탕으로 합니다.
#2
이태리 출신의 음악가 장 바티스트 륄리는 지휘를 하던 중 발을 다치는 사고를 당합니다. 그는 발을 절단하지 않으면 죽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발레를 출 수 없게 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이를 거부합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륄리에게 다가오던 그 순간, 그는 자신의 과거를 회상합니다.
1653년 2월 23일, 14살의 루이는 륄리가 작곡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춥니다. 륄리는 루이가 무대에서 더 돋보이도록 특별한 신발을 선물하며, 그 신발을 신고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친다면 자신을 이탈리아인이 아닌 진정한 프랑스인으로 인정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나 루이는 왕의 타이틀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권은 그의 어머니와 재상 마자랭에게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권력을 되찾은 후에야 그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답합니다. 루이는 자신을 위해 작곡하고 자신의 춤을 돋보이게 해주는 륄리의 음악에 매료됩니다. 륄리 또한 혼신을 다해 작곡한 음악과 열렬한 사랑을 왕에게 바칩니다.
"내게 주어진 것은 춤과 음악 뿐이지"
#3
그리고 8년 후인 1661년 3월 10일, 마자랭이 사망하자 루이는 대신들 앞에서 앞으로는 재상의 도움 없이 직접 통치하겠다고 말합니다. 모후는 아직 어린 아들이 직접 정치를 하겠다는 결정을 격노하며 반대하지만, 루이 14세는 이미 결심을 굳힌 상태였습니다.
"전 성인입니다. 이 나라의 왕이예요."
한편, 몰리에르는 프랑스의 극작가로, 루이 14세는 그에게 음악가 륄리와 함께 재미있는 작품들을 창작해볼 것을 명령합니다. 특히 사람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들도록 요구합니다. 륄리는 자신만이 왕의 총애를 받길 원했기에 몰리에르와의 협업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특히 한쪽에서 노래하고 다른 쪽에서 대사를 하는 방식에 불만을 가졌죠. 륄리는 발레를 가장 아름다운 예술 행위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풍자라는 요소는 륄리에게는 조심스러운 부분이었습니다. 반면 몰리에르는 이를 아주 직설적으로 풍자하였습니다.
1664년 5월 8일, 몰리에르와 륄리는 무대에서 음악과 연극을 합한 희극을 통해 사회적 풍자를 선보입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모후를 포함한 궁정 귀족들과 성직자들이 불쾌해하며 몰리에르와 륄리를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이들을 모욕적이고 파렴치하다고 비난했지만, 루이 14세는 이 작품이 단순히 모두를 웃게 하려는 익살극일 뿐이라고 변호합니다. 그러나 종교가 희극의 소재가 될 수 없다는 성직자들과 모후의 압력에 결국 루이 14세는 몰리에르와 륄리의 희극 공연을 금지시킵니다. 그들은 루이의 전권이 더 강해지면 공연을 다시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게 됩니다.
#4
륄리는 마들렌이라는 아름다운 연인과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륄리는 왕을 위한 음악을 만들기 위해 집착하느라 아내가 출산할 때조차 옆에 있어주지 못합니다. 기니에는 마들렌의 옛 연인이었으며, 그녀를 잃은 것에 대한 분노로 륄리를 모함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기니에는 륄리가 동성애를 즐긴다는 사실을 이용해 그를 소년을 살해한 혐의로 몰아넣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동성애는 중대한 금기였고, 왕의 궁정에서 이런 일이 드러난다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기에 륄리는 도망쳐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루이 14세의 곁을 떠나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루이14세의 귀에 륄리의 이야기가 들어가고, 결국 륄리는 왕의 신뢰를 잃고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모후는 병으로 죽어가는 와중에도 자신의 아들 루이 14세에게 대신들을 포섭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그들을 잃으면 끝이라고 마지막 당부를 남깁니다. 그러나 루이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고 싶지 않다고 답합니다. 그는 어머니가 자신에 대해 항상 부정적인 말만 하고, 신하들을 교묘하게 조종하며 자신을 비난했다고 불만을 털어놓습니다. 애정을 받지 못하고 자란 과거에 대한 아쉬움과 분노를 드러낸 루이의 말에 모후는 절망 속에서 마지막을 맞이합니다.
1667년, 루이 14세가 나간 전투에서 그의 모습이 더 위엄 있게 보이도록 륄리는 배경 음악을 연주하며, 심지어 루이가 애인과 함께 있을 때에도 음악을 연주합니다.
#5
1670년, 몰리에르는 폐병으로 쇠약해지기 시작합니다. 루이 14세는 공연 중 동작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며 그의 위엄이 점점 쇠퇴하게 됩니다. 루이 14세의 공연은 성공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륄리도 큰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절망한 루이는 더 이상 발레 공연에 오르지 않겠다고 결심합니다. 몰리에르의 대본으로 성공적인 무대를 만들었지만, 발레 음악이 중단되고 루이 14세가 더 이상 무대에 오르지 않는 점이 륄리에게는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몰리에르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오페라 형식을 프랑스어로 공연해보자고 제안합니다. 하지만 발레 음악을 지속하고 싶었던 륄리에게 오페라는 이질적인 형식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마들렌의 동생이 기니에와 함께 프랑스 최초의 오페라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이에 자극받은 륄리는 몰리에르와 함께 오페라를 하기로 결심합니다.
한편 몰리에르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오페라 형식을 따와서 프랑스 언어로 공연을 만들어보자고 합니다. 하지만 발레 음악을 계속하고 싶은 륄리에게는 오페라는 잡종의 형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와중에 자신을 흠모하던 마들렌의 동생이 기니에와 함께 프랑스 최초의 오페라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자, 결국 륄리는 자신 또한 몰리에르와 함께 오페라를 하기로 합니다.
#6
륄리는 루이 14세에게 자신이 음악을 통해 그의 영광을 높여 왔으니, 오페라를 독점적으로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모두가 루이를 숭배하게 만들겠다고 설득합니다. 고민 끝에 루이 14세는 이를 허락합니다. 이후 륄리는 몰리에르 없이 혼자 오페라를 제작하며, 몰리에르와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을 자신의 작품으로 인정받았다고 선언합니다. 그는 몰리에르와의 희극 작업에서 느꼈던 괴로움과 왕의 사랑을 독차지하지 못한 과거를 벗어나고자 합니다.
"친구보단 사랑을 택할 수밖에 없었어. 폐하를 향한 내 애정은 영원하니까 그는 내 전부야"
1673년 2월 17일, 륄리는 자신이 만든 오페라를 루이 14세에게 선보입니다. 하지만 반응은 차갑기만 했습니다. 결국 륄리는 루이 14세의 신임을 얻으려다 외롭게 생을 마감합니다.
"더이상 쓸모가 없으니까 . 내 음악을 원치 않치."
륄리가 사망한 후에도 루이 14세는 그의 죽음을 알지 못한 듯, "오늘은 왜 음악이 없지?"라고 말하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7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너무나 쉽게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 지금 시대에서는 흔한 음악이 한때는 특권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게다가 당시 음악은 권력과 결합하여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륄리는 루이 14세를 진정으로 사랑했고, 그의 위상을 자신의 음악으로 높이고 싶어 했습니다. 실제로 그의 음악은 루이 14세의 권력과 절대왕정을 과시하는 도구가 되어 그 위상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으레 큰 신분차이를 극복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니 만큼, 륄리와 루이 사이에 금이 생기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거리가 생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륄리가 루이의 관심과 총애를 받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흠모하는 마음은 그의 창작 열정과 원동력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륄리에게 루이 14세는 축복이었을까요? 아니면 만나지 말았어야 할 악연이었을까요? 륄리에게 루이 14세가 없었다면 훌륭한 음악들도 탄생하지 못했겠지만, 륄리는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살았을 수도 있습니다.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집착을 버리고 오롯이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가정을 보살피는 가장이 되었을 수도 있지요.
륄리와 루이 14세의 대화는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특히 륄리가 "폐하의 친구라고 생각한다"고 말할 때 루이가 "자신은 친구가 없다"라고 냉담하게 답변한 것에서 륄리의 찢어지는 마음이 느껴지는 듯했고, 이후 륄리가 루이에게 오페라를 부탁하면서 "제 사랑은 오직 한 분뿐입니다. 또한 폐하처럼 친구도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장면에서 륄리의 진심 어린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제가 이 작품을 진지하게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륄리 역을 맡은 배우 보리스 테랄의 눈빛과 몸짓에서 그 열정과 헌신이 생생하게 전달되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 눈빛에 담긴 열정은 화면 밖에서도 느껴졌을 만큼 강렬했기에, 리뷰를 쓰는 순간에도 그 눈빛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의 표현력 덕분에 륄리의 감정, 특히 루이를 향한 애정과 절망이 더 깊이 다가왔습니다.
#8
루이는 절대왕정의 상징으로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륄리의 음악을 필요로 했지만, 개인적인 친분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왕권신수설을 믿고, 자신이 신의 대리자라고 여겼던 루이에게는 음악가와 친구가 되는 것이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겠죠. 결국 륄리는 왕의 총애를 받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루이가 자신을 알아채지도 못한 채 홀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 장면은 권력의 냉혹함과 그에 희생된 예술가의 운명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남깁니다.
륄리 정말 권력의 도구로 희생된 것일까요? 아니면 스스로 그 관계에 만족하며 모든 것을 바친 걸까요? 그 답은 관객의 해석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가 남기는 씁쓸하고 쓸쓸한 여운이 점점 추워지는 요즘 날씨와 참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화려한 왕실 생활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었고, 오늘날 우리가 얼마나 쉽게 음악을 즐길 수 있는지 감사함도 느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다가오는 한 주도 행복한 일들이 가득하고, 좋은 영화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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