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치 수프><The Taste of Things>, 2024
-감독 : 트란 안 훙
-주연 : 줄리엣 비노쉬, 브누아 마지멜
-러닝타임 : 135분
-장르 : 드라마, 멜로/로맨스
-연령 : 12세 이상 관람가
#1
저는 이 영화를 이제야 본 걸까요? 제가 이용하는 스트리밍 서비스에 업데이트된 지도 꽤 됐고, 보지 못했어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는데 말이죠. 작년에 넷플릭스에서 <흑백 요리사>가 열풍을 일으켰을 때, 전 시리즈를 모두 보고 나서도 여운이 남아 있었어요. 평소 그렇게 좋아하지 않던 음식 관련 영화를 몇 편 찾아보기도 했는데, 그중에서도 묘하게 <프랜치 수프>는 빼놓고 본 거더라고요.
영화 <프랜치 수프>는 제가 좋아하는 베트남 출신 감독 트란 안 훙(Trần Anh Hùng)의 2023년 작품입니다. 저는 블로그에 그의 영화 <씨클로>와 <그린 파파야 향기>를 리뷰하기도 했습니다. <프랜치 수프>는 트란 안 훙의 최신작인데, 놀랍게도 줄리엣 비노쉬(Juliette Binoche)와 브누아 마지멜(Benoît Magimel)이 출연합니다. 저는 트란 안 훙 감독의 베트남을 배경으로 한 영화만 보았는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어떨까 궁금하였습니다.
두 주연 배우 모두 제가 애정해 마지않는 배우들입니다. 저는 줄리엣 비노쉬가 출연한 <폭풍의 언덕>과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을 리뷰했고, 브누아 마지멜은 비교적 최근에 <왕의 춤>을 보고 매력에 빠져 <악의 꽃>까지 리뷰했어요. 그런 두 배우가 한 영화에 함께 등장한다니요. 제가 지금까지 이 영화를 보지 않았던 건 너무 바빠서거나 무관심했거나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겠네요. 감독, 배우들의 이야기를 계속하다 보면 너무 길어질 것 같지만, 이 영화가 주는 저에게 의미가 크다는 의미를 설명하고 싶은 것이겠습니다. 이제 더 늦기 전에 영화 <프랜치 수프>로 넘어가야겠네요.
<프랜치 수프>는 19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요리에 대한 열정과 삶, 사랑을 담아낸 도댕 부팡(Dodin Bouffant)과 그의 동반자 위제니(Eugénie)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프랑스 대표 배우 줄리엣 비노쉬와 브누아 마지멜이 각각 천재적인 요리사 위제니와 그녀의 파트너이자 미식가 도댕으로 출연해요. 영화는 스위스 작가 마르셀 루프(Marcel Rouff)의 1924년 소설 도댕 부팡의 삶과 열정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되었고, 2023년에 제46회 밀 밸리 영화제(관객상-세계 영화), 제71회 산세바스티안 국제영화제(Culinary Zinema상), 제76회 칸 영화제(감독상)를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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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파파야 향기>_The Scent Of Green Papaya _1993 _베트남 호치민 배경 영화.베트남 영화
_The Scent Of Green Papaya _1993 -감독 : 트란 안 훙 -주연 : 트란 누 엔케 (무이, 20살역), 만 상 루 (무이, 10살 역) -등급: 12세 관람가 -러닝타임 :104분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줄거리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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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클로> 1990년대 베트남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그린 영화. 양조위, 트란 누 옌케, 르 반 록 주연.
, 1995 -감독 : 트란 안 홍 (Trần Anh Hùng) -주연 : 양조위 (Tony Leung Chiu Wai), 트란 누 옌케(Trần Nữ Yên Khê), 르 반 록 (Lê Văn Lộc) -장르 : 드라마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러닝타임 : 120분 언제 끝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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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영화의 첫 장면은 정말 놀라울 따름입니다. 생생한 요리 과정이 펼쳐지는데, 동작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연결돼 마치 예술작품이 탄생하는 과정을 보는 듯해요. 눈을 뗄 수가 없고, 보기만 해도 미소가 저절로 지어집니다. 위제니의 입가에 잔잔히 흐르는 미소와 여유, 그리고 중간중간 요리를 거드는 도댕. 그들은 놀라운 팀워크를 보여줍니다. 이를 진지하게 맛보고 즐기는 도댕과 그의 친구들을 보니, 저는 미식가가 아니지만 저렇게 음식을 잘 알고 즐기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군요.
저는 이 영화가 사운드트랙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에 충격을 받았어요. 동시에 그 덕분에 두 주연의 연기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듯한 현실감을 느낄 수 있어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음식 냄새가 제 코끝에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 섬세했어요. 배우들의 숨소리와 느릿한 시간 전개는 제가 그들과 같은 공간에 있는 듯한 환상을 불러일으켰고, 저도 모르게 숨소리를 죽이고 조그만 소리도 내지 않으려 조심하며 봤습니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사운드트랙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평점이 낮은 영화들 중 일부는 사운드트랙만 바뀌어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거라 믿거든요.
#3
20년간 최고의 요리를 함께 만들어온 위제니와 도댕. 그들의 요리에는 서로에 대한 존경과 배려, 그리고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도댕은 위제니를 끊임없이 갈망하지만, 위제니는 한여름과 자유를 사랑해요. 위제니는 요리를 사랑하고 도댕을 사랑하지만, ‘요리사’로 남고 싶었지 도댕의 아내로서의 타이틀은 원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들은 24시간 함께하며 사랑과 존경을 나누는 삶 자체에서 더 바랄 게 없었죠. 결국 몸 아픈 위제니를 위해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들어주는 도댕에게 감동한 위제니는 그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행복한 앞날을 꿈꿉니다. 하지만 건강 문제로 위제니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혼자 남겨진 도댕은 슬픔에 휩싸입니다. 위제니를 대신할 요리사를 찾지만 쉽지 않고 좌절합니다. 그러나 요리를 하며 슬픔을 극복해 나가고, 영화 마지막에 인상적인 음식을 맛본 뒤 그 요리사를 찾으러 집을 나서는 도댕의 뒷모습을 비추며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저는 이 영화가 끝난 뒤에도 여운에 젖어 있어야 했어요.
사실 저는 이 영화가 슬프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들이 계속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미소 짓는 모습을 보고 싶었거든요. 그들의 평온한 일상이 깨지는 건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평소와 달리 영화를 보다가 잠시 멈추고 중지 버튼을 누른 뒤, 혹시 “너무 슬프다”는 평이 있는지 찾아봤어요. 그런 코멘트가 없어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다시 재생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위제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큰 슬픔을 안겼습니다. 고요한 장례식 장면은 도댕과 그의 친구들이 느끼는 상실감과 슬픔에 깊이 공감하게 했어요.
#4
놀라운 사실 하나는 줄리엣 비노쉬와 브누아 마지멜이 과거 실제 연인이었다는 점입니다. 두 사람은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키스 (Les Enfants du Siècle, 1999)에서 만나 연인으로 발전했고, 2003년까지 함께 살았습니다. 그들 사이에는 딸 하나도 있어요. 당시 이미 대배우였던 줄리엣 비노쉬가 10살 연하의 신인 배우 브누아 마지멜의 연애 소식에 프랑스 전역이 들썩였다고 하네요. 물론 그 시점에 브누아 마지멜도 2001년 미카엘 하네케(Michael Haneke)의 <피아니스트>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였습니다. 그렇게 약 20년 전에 연인이었던 두 배우가 만나서, 20년 동안 요리사와 미식가로 서로에게 뮤즈가 되어주었던 관계를 연기한다는 것이 마치 이 영화가 그 둘을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생각까지 들게 합니다.
전 연인과의 20년 만의 재회에 대해 줄리엣 비노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트란 안 훙 감독이 브누아 마지멜에게 이 영화를 제안했을 때, 그가 나와 함께 작업하고 싶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에 다시 만났을 때 매우 놀랐다."라고요. 저는 보통 배우의 연기와 작품 속 이미지만으로 그들을 좋아하고, 개인사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으려 하지만, 이 영화는 두 사람이 과거 연인이었다는 사실을 알면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오랜 시간 유지해 온 서로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영화에 가득 담겨 있는 듯하고, 브누아 마지멜이 줄리엣 비노쉬의 눈에 빠져 NG를 냈다는 로맨틱한 후문을 들으면 이 영화가 더욱 사랑스러워지네요.
날씨가 조금 풀린 요즘, 여러분에게 따뜻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영화 <프랜치 수프>를 추천합니다. 이번 주에도 좋은 영화가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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