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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전시후기] <이매진 존 레논 전 > 나에겐 존 레논과 오노 요코 였던 전시

by evelyn_ 2019.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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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진 존레논 전 @ 한가람 미술관 2018.12.06~2019.03.10
 




작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통해 잘 알지 못했었던 “프레디 머큐리”라는 사람과 “퀸”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른 가수들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고 그렇게 해서 애정하게 된 가수들을 더욱 깊이 알게되는 경험들을 중요시했다. (그 가수의 앨범을 산다던가 공연을 간다던가 등등) 하지만 <보헤미안 랩소디>는 내게 이와 반대의 경험을 선사했다. “퀸”이라는 가수는 단지 아빠가 좋아했던 가수였고 내가 좋아하는 가수는 아니었다. 아빠에게 추억 여행 시켜줄 겸 나도 보자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보게된 것인데, 그 영화를 통해 “프레디 머큐리”라는 사람의 인생을 알게되고 그가 활동했던 “퀸”이라는 그룹을 알게되고, 결론적으로 그들의 노래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어떤 노래가 좋아지는 것으로 시작하여 그 노래를 부른 가수를 좋아하게 됐었던 이전의 순서에서 벗어나, 특정 가수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을 알게 된 이후에 그가 부른 노래들을 알게되어도 좋구나. 라는 깨달음을 그 영화로 부터 얻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찰나에 한가람 미술관에서 존 레논 전시를 한다고 하여서 존 레논은 어떤 사람이었으며 그는 어떤 노래들을 불렀을까? 그를 알게되면 그와 그의 음악을 좋아할 수 있을까? 라는 호기심으로 이 전시를 관람을 하게 되었다. 

 


전시는 존 레논의 어린시절부터 총격으로 살해당할 때까지의 다양한 사건들을 다룬다. 사람들마다 관람 하면서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부분들이 다를 것인데, 나는 그 중 존 레논이 뉴욕으로 넘어와서 요코 오노를 만나면서부터의 이야기들이 가장 큰 여운으로 남았다. 존 레논은 5살 어린 나이에 부모의 이혼을 겪고, 어머니와 아버지 둘 중 선택을 해야하는 기로에서 어머니를 선택했음에도 결국 이모와 살아야했고, 뿐만 아니라 그 이른 나이에 어머니와 이모부의 죽음을 겪으면서 심리적으로 방황기를 거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존 앞에 백인 남성이 지배하는 서양 국가에서 동양계 여성 이주민으로 자립한 요코는 불안정한 어린시절을 보낸 그에게 정말 큰 의미로 다가왔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실제로 존 레논보다 일곱 살 연상이었던 요코는, 평소 존 레논이 갈구했던 ‘연인이자 어머니’에 어울리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존 레논은 리버풀의 가부장적 사고방식과 음악에 대한 열정때문에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었지만 요코를 만나고부터 변하게 된다. 그는 그의 이름을 존 오노 레논으로 개명할 뿐만 아니라 더이상 가부장적 사고에 갇혀 있지 않고, 성차별 및 불평등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의 바탕에는 요코가 존에게 정신적 위로가 되며 존의 사고를 확장시켜주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이해하고나니 그제서야 존 레논과 오노 요코가 촬영한 롤링스톤지 창간호 사진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사진작가는 존 레논에게 요코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표현해봐요라고 요청했고, 존 레논은 그 자리에서 모든 옷을 벗고 태아의 모양으로 요코를 안고 키스를 하는 사진인데, 요코를 정말로 연인이자 어머니로 생각했었던 존 레논을 느낄 수 있었다. 존 레논의 <Woman> 가사에서도 이와 비슷한 감정이 기록되어있다. “여인이여 그대 이해하겠지요. 남자 속에 웅크린 작은 아이의 모습을. 나의 삶은 그대 두 손에 있다는 걸 기억해 줘요.”  안타까운 것은 이 사진이 존 레논 피살 5시간 전에 촬영한 마지막 공식사진이었다는 점이다. 

“1940년 출생, 1966년 요코를 만남” 존 레논 의 인생 한줄정리 -존 레논-

 인상깊었던 부분은 단지 요코와의 이야기 뿐만은 아니었다. 존 레논은 반전 영화 <우리는 어떻게 전쟁을 이겼을까> 에서 배역을 위해 머리를 자르고 할머니 안경으로 알려진 ‘grammy glass’를 쓰게 되는데, 이 할머니 안경은 영국의 건강보험 기관에서 저소득층에게 처방과 함께 지원해주었던 안경이었다고 한다.  이 안경은 촌스럽고 구식이었지만 오히려 존 레논은 이 안경이 가난함을 대변한다는 것을 맘에들어했고 계속해서 동그란 테의 안경을 썼고 결국 그의 독보적인 이미지가 되게된다. 반전 영화에 출연한 것도 인상깊지만 안경을 통해 가난함라는 것을 대변하고 위로하고 싶어했던 그의 행동들이 남들보다 여리고 착하고 그리고 동시에 공감능력이 뛰어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싶다. 





 또한 1960년 미국에서는 심각한 인종차별이 문제되고 있었는데, 유엔이 1960년 12월 모든 형태의 인종 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 협약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악화되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65년에 비틀즈 공연을 담당했던 기획사는 백인전용 구역과 흑인전용 구역을 분리하여 관람하도록 했는데, 이에 비틀즈는 “분리된 청중에 대해서는 연주할 의무가 없음” 을 선언하고 공연을 취소하겠다고 통보했다고 한다. 결국 기획사는 분리구역을 폐지해야했고, 백인과 흑인 등 모든 인종이 같은 구역에서 공연을 관람하게 되었었다고 하는데 비틀즈가 그 당시에 전했을 메세지가  대단했을 것이라고 느껴진다. 뿐만 아니라 1969년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항의 표시로 1965년 엘리자베스 여왕에게서 수여받은 훈장을 반납했던 일도 기억에 남았는데, 보수적인 영국에서 대중음악인이 대영 제국 훈장을 받는 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만큼 대단한 훈장이었음에도 존 레논이 보여준 이 용감한 평화적인 메세지가 매우 인상깊었다. 

 


존 레논에 대해서 잘 몰랐던 나였지만 실은 ‘뮤지션’으로의 존 레논을 기대하고 갔었으나, 그를 한 명의 ‘뮤지션’으로만 평가하는 것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 전시였다. 전시에 흐르는 그의 음악과 가사들도 하나같이 좋았지만, 그는 ‘뮤지션’이었을 뿐만 아니라 20세기 중 가장 격동적이었고 사회 변혁에 대한 갈망에 사로 잡혀있던 60-70년대를 관통하는 전위적 평화 운동가였음을 이 전시를 통해 알게된 것은 물론, 
<imagine>노래에서 그가 말하자고 했던 평화의 메세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천국도, 지옥도 없으며, 국가도, 종교도 없는 모두가 하나가 되는 상상을 해보라는 그 노래의 후렴구. 어찌보면 정말로 손에 잡히지 않는 이상이라고 치부해버릴 수 있는 이 문장은, 실은 너무나 당연하게 모두가 이 가사처럼 상상을 한다면 그리고 모두가 원하는 마음이 있다면 실제로 이루어낼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은 아닐지 생각해보게 했다. 그는 너무나 아쉽게 피살되었지만 그가 전한 순수한 평화의 메세지는 정말로 소중하게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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