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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피그> . 돼지를 잃은 남자의 이야기.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 줄거리. 보러가기. 해석. 정보. 결말.

evelyn_ 2025. 3. 22. 18:00


 

<피그> <Pig>, 2021
-감독: 마이클 사르노스키
-주연: 니콜라스 케이지, 알렉스 울프, 아담 아킨
-러닝타임: 92분
-장르: 드라마, 미스터리
-연령:  12세 이상 관람가 

 


#1

 

사실 저는 니콜라스 케이지라는 배우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외모는 매력적이라 생각했지만, 지금껏 그가 주로 출연해 온 액션 영화들이나, 다소 기이하고 다혈질적인 캐릭터들이 저와는 결이 맞지 않았거든요. 평범함보다는 과장된 연기를 많이 하는 배우라는 인상도 있었고요. 그래서인지 그의 연기를 깊이 있게 들여다볼 기회도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굉장히 다양한 장르에 꾸준히 출연해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정말 많은 작품을 통해 쉼 없이 연기해 온 배우라는 점에서, 어쩌면 제가 오히려 그를 너무 단편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 리뷰를 쓰는 블로거로서 그의 영화를 아직도 많이 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문득 회의감도 들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영화 <피그>는 전환점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니콜라스 케이지를 정말 좋아하는 제 영어 튜터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소개해준 영화였고, 처음엔 솔직히 큰 기대 없이 보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니콜라스 케이지 자신도 인터뷰에서 자신이 출연한 영화 중 가장 애정하는 작품이라고 밝힌 적이 있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보게 된 <피그>,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이 영화가 주는 감정적인 여운은 예상보다 훨씬 깊었습니다.

 


 

#2 

 

깊은 숲속 외딴 오두막. 그곳에서 홀로 살아가는 남자 롭(니콜라스 케이지)은 과거의 삶과 철저히 단절된 채, 자신의 돼지와 함께 오직 송로버섯인 트러플을 채취하는 일에만 집중하며 지냅니다. 

가끔씩 그를 찾는 유일한 사람은 트러플을 사러 오는 젊은 상인 아미르뿐입니다. 그 외에는 누구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고요한 삶이 이어지던 어느 날, 롭의 오두막에 정체불명의 괴한이 들이닥치고, 그 소중한 돼지가 납치당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롭은 돼지를 되찾기 위해 오랜 침묵을 깨고 아미르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떠났던 도시 포틀랜드로 돌아가게 됩니다. 

 

알고 보니, 롭은 단순하게 숲속에숲 속에 은둔하여 트러플을 채취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한때 포틀랜드에서 가장 존경받는 전설적인 셰프였지만, 아내를 잃은 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숲 속에 들어가 고립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 밝혀집니다. 그의 진짜 이름은 '로빈 펠트'였습니다. 

 

놀랍게도, 돼지를 훔쳐간 사람은 다름 아닌 아미르의 아버지, 데리우스였습니다.데리우스는 고급 레스토랑 사업의 중심에서 트러플 공급망을 독점하고 싶어 했는데, 자신의 아들이 그런 자신의 야망에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던 것이지요. 데리우스는 롭이 돼지 없이는 자신의 아들인 아미르가 트러플을 구입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돼지를 훔치도록 지시했던 것이지요. 

 

롭은 안타깝게도 자신의 돼지를 되찾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그 슬픔을 딛고 다시 삶을 향해 걸어 나아갑니다. 도망치거나 분노하지 않고, 되찾기 위한 싸움을 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자신의 상처와 마주하고, 살아갑니다. 

 


 

 

#3

 

자신의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포틀랜드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던 셰프의 자리를 내려두고, 숲으로 가게 된 롭의 결정을 보면 그가 얼마나 상심이 컸을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 삶에서 그에게 돼지란 아내의 빈자리를 말없이 채워주던 존재였습니다. 그가 도시를 벗어난 지도, 아내를 잃은 지도 15년이나 지났지만 그는 자신의 와이프의 음성이 담긴 테이프를 무거운 마음으로 겨우 플레이할 뿐이었습니다.

반전은, 롭은 애초부터 돼지 없이도 트러플을 채취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영화 초반, 그가 숲에서 정성스럽게 버섯을 캐고, 그 재료로 소박한 시골식 타르트를 만드는 장면부터, 그는 단순한 생계형 채취자가 아닌, 재료를 깊이 이해하고 감각적으로 다룰 줄 아는 인물임이 암시되었지요.

결국 이 영화에서 돼지는 트러플을 찾는 수단이 아니라, 롭이 잃어버린 인간관계와 감정을 대신해 주는 존재였습니다. 고요하고 외로운 숲 속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나누는 생명체, 말없이 그의 곁에 있어주는 존재였던 돼지를 잃는다는 건, 단순히 트러플 채취의 어려움이 아닌 정서적 붕괴를 의미했습니다.

롭은 데리우스로부터 돼지를 돌려받기 위해, 과거 데리우스와 그의 아내가 함께 먹었던 특별한 요리를 기억해내어 그것을 직접 만들어 그에게 대접합니다. 음식에 담긴 추억과 감정은 데리우스의 마음을 움직였고, 결국 그는 돼지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털어놓습니다. 그 순간, 롭에게는 폭풍 같은 감정이 몰아치고, 그는 또 한 번 깊은 상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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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또한 인상적인 것은 아미르의 변화입니다. 영화 초반, 아미르는 롭을 귀찮은 존재로 여깁니다. 그는 돼지를 “망나니”라고 표현하며 무시했고, 허세에 찬 젊은 부자의 이미지 그대로였습니다. 롭이 자신에게 트러플을 공급해 주는 사람이라는 사실조차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지요. 그러나 아미르는 점차 롭이 과거에 포틀랜드에서 전설적인 셰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가 돼지를 잃고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진심으로 연민을 느끼게 됩니다. 자신도 다치는 걸 감수하면서까지 롭을 도와 그의 돼지를 찾고자 하는 모습은 큰 감정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알고 보니, 아미르의 어머니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데리우스는 빈틈 없고 목표가 분명한 사람이었으며, '포틀랜드가 배출한 희귀 식재왕'이라 불릴 만큼 뛰어난 사업가였지만, 아미르에게 따뜻한 관심이나 칭찬을 건넨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아미르는 그런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언젠가 그를 뛰어넘고 싶다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지요.

 


데리우스와 롭, 두 사람은 모두 아내를 잃은 경험이 있지만 그 이후 나아간 방향은 정반대였습니다. 데리우스는 자신의 야망과 통제욕 속에서 아들의 성공을 억누르기까지 하며, 결국 돼지를 훔치는 결정을 내립니다. 이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때로는 가장 무서운 존재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아미르는 롭의 여정을 함께 하며 자신이 겪었던 아픔과 마주하게 되고, 사람과 생명체가 얼마나 소중하고 고귀한 존재인지 깨닫게 됩니다. 번지르르한 고급 요리의 세계 이면에 감춰진 위선, 그리고 그 뒤에 숨어 있는 인간의 이기심과 폭력성 또한 목격하게 되지요. 그는 롭과의 시간을 통해 비로소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삶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가며, 처음으로 누군가를 진심으로 돕고자 하는 마음을 품게 됩니다.

 


 

#5

 

영화 <피그>는 니콜라스 케이지라는 배우를 다시 보게 만든 영화였습니다. 그의 과장된 이미지에 가려졌던 섬세한 감정선과 진중한 내면을 깊이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대사는 롭이 과거 함께 일했던 셰프를 찾아가 건네는 말입니다. 영화는 도시와 자연, 야망과 포기, 고급 레스토랑과 소박한 식사처럼 극명한 대비를 통해 삶의 본질에 대해 묻지요. 

 

"이것들은 진짜가 아니야. 어느 것도 진짜가 아니야. 평론가도, 고객도, 자네 자신도. 왜냐면 이게 진짜가 아니니까. 자네도 진짜가 아니고. 왜 이 사람들한테 신경을 쓰지? 이들은 자네를 염두에 두지도 않는데. 자네가 누군지 알지도 못하잖아. 자네가 보여주질 않으니까. 매일 잠에서 깰 때마다 자네는 점점 없어지고 있어. 자네는 그들을 위해 살고 있는데, 그들은 자네를 보지도 못해. 자네조차도 자네를 보지 못하고 있으니까. 진정으로 소중한 것은 쉽게 얻어지지 않아."

 

 

짧은 러닝타임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 상실과 치유, 슬픔과 사랑, 그리고 인간다움에 대해 말없이 이야기하는 영화였습니다. 3월도 끝을 향해가고 있네요. 1분기의 마무리를 위해 조용하고 깊은 여운이 남는 영화 한 편 어떠실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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