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포티>. 작가의 욕망과 윤리적 경계. <티파니에서 아침을> 작가 트루먼 카포티 이야기. 줄거리. 결말. 감상
<카포티>, <Capote>,2006
-감독: 베넷 밀러
-러닝타임: 114분
-장르: 전기, 드라마
-주연: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트루먼 카포티 역)
-조연: 캐서린 키너 (넬 하퍼 리 역) 클리프튼 콜린스 주니어 (페리 스미스), 크리스 쿠퍼 (앨빈 듀이)
#1
베넷 밀러 감독의 영화 <카포티>는 올해 초에 본 영화지만, 지금까지 리뷰를 쓸지 말지 망설였던 작품임을 고백합니다. 이 영화는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와 매력적인 스토리, 그리고 특히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놀라운 연기로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의 연기는 단순한 연기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뛰어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영화를 리뷰하기 망설였던 이유는, 트루먼 카포티라는 인물과 영화가 던지는 여러 질문들에 대해 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트루먼 카포티는 오드리 헵번 주연의 동명 영화로 더 잘 알려진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쓴 작가입니다. 영화 <카포티>는 이후 미국 캔자스 홀컴 마을에서 벌어진 실제 살인 사건을 수년간 조사한 끝에 완성해낸 그의 마지막 역작 <인 콜드 블러드>가 어떻게 집필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한국어로 냉혈한이라고 번역된 <인 콜드 블러드>는 논픽션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획기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영화는 1959년 11월 15일이라는 문장으로 시작됩니다. 이 문장은 영화의 특별함을 더욱 느끼게 했는데요, 그 이유는 바로 그 날짜가 제 생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날은 카포티가 신문을 통해 자신이 이후 수년 동안 집착하며 빠져들게 될 매력적이면서도 파괴적인 사건에 대해 처음 알게 된 날이기도 합니다.
#2
1959년 11월 15일, 미국 캔자스주의 한 농장에서 일가족 4명이 두 남자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신문 1면을 장식합니다. 당시 뉴요커 잡지 소속 작가였던 트루먼 카포티의 관심을 단번에 사로잡았습니다. 신문에 실린 "부유 농민과 가족 3명 살해. H.W 클러터, 부인과 자녀 캔자스 자택에서 사망. 죽은 채로 발견."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그에게 특별한 영감을 주었고, 그는 곧 작가 넬 하퍼 리(앵무새 죽이기의 저자)에게 캔자스로 동행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카포티는 캔자스에 도착해 수사국의 형사 앨빈 듀이를 만나며, 자신은 범인을 잡는 데 관심이 없으며, 클러터 가족 살인 사건이 마을 주민들에게 미친 영향을 기록하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듀이의 아내가 카포티의 소설 팬이었던 덕에, 그는 듀이 가족의 집에 초대받아 사건에 더 깊이 접근할 기회를 얻습니다. 카포티는 특유의 유머와 매력으로 듀이 부부와 가까워졌고, 마을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사건의 피해자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캔자스에서 체류하는 동안, 넬 하퍼 리는 자신의 소설 앵무새 죽이기가 출판될 예정이라는 기쁜 소식을 전했고, 카포티는 이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카포티는 사건에 집착하며 크리스마스조차 뉴욕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그의 연인 잭 던피는 이에 크게 실망합니다.
1960년 1월 6일, 두 명의 살인 용의자 페리 에드워드 스미스와 리처드 유진 히콕이 체포됩니다. 이들은 1급 살인 혐의로 기소되었고 유죄 판결과 함께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카포티는 이 중 페리 스미스에게 특별히 관심을 가졌습니다. 페리의 고독과 복잡한 심리 상태가 훌륭한 소재가 될 것이라 판단한 카포티는 그와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는 페리를 방문자 리스트에 자신을 올려달라고 부탁하고, 항소를 위해 변호사를 선임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카포티는 페리와의 대화를 통해 그의 불우한 어린 시절과 심리적 상처를 들으며 작품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페리와의 관계에서 점점 더 복잡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그는 페리를 돕는 척했지만, 궁극적으로 자신의 책을 완성하기 위해 그를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도 괴로워했습니다.
페리가 살인 당일의 일을 고백하지 않으면 책을 완성할 수 없었던 카포티는 압박감을 느꼈고, 재판의 최종 결과가 나와야 마지막 부분을 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항소가 반복되며 사건의 결말은 계속 미뤄졌고, 카포티는 점점 지쳐갔습니다. 이 와중에 친구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는 영화화되어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는 이를 기쁘게 축하해주지 못했습니다.
#3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편 카포티의 새 책의 이름이 냉혈한이라는 뜻을 담은 <인 콜드 블러드>이라는 것이 페리의 귀에도 들어가고 그는 이에 분노합니다. 카포티는 책 제목을 자신이 정한 것이 아니며, 홍보를 위해서 회사에서 선정적인 제목 선택한 것이라고 거짓말합니다. 그리고 카포티는 페리의 누나가 페리를 그리워 하고 있다고 말을 꾸며내기도하며, 그에게 지속적으로 감정적인 접근을 시도합니다.
드디어 페리는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서 입을 엽니다. 캔사스 홀컴 마을의 집에 만 달라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집에 침입했으나, 그릇된 정보임을 깨달았으며, 그렇게 기대했던 돈을 얻지 못하게 되면서 상황이 불안해졌고 이로 인해 두 사람은 강도를 넘어선 극단적인 행동으로 치닫게 되었다는 것을요.
1965년, 4월 14일. 페리와 히콕의 사형 날짜가 최종적으로 확정되었고, 마지막까지 페리를 찾아갈까 말까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그는 페리로부터 전보를 받고 교도서로 무거운 걸음으로 찾아갑니다. 그렇게 카포티는 페리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사형 집행의 증인으로써 그의 마지막을 지켜봅니다.
'냉혈한' 으로 트루먼 카포티는 미국의 최고 유명 작가가 되었다. 이후로는 책을 내지 않았다. 마지막 미완성 작품의 '에니그라프에 쓰기를: "응답을 못 받은 기도보다 받은 기도에 더 많은 눈물을 흘린다" 그는 1984년 알코올 중독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4
저는 앞서 이 영화를 굉장히 흥미롭게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카포티에 대한 평가를 속단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심사숙고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카포티가 자신의 글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페리가 죽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결국 그가 세상에서 사라져야만 자신의 작품을 마무리할 수 있는 상황에 괴로워했으리라 충분히 이해합니다. 물론, 카포티가 논픽션 범죄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며 많은 찬사를 받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카포티는 음식을 끊고 자살을 시도하던 페리에게 음식을 먹이며 그의 이야기를 짜내려 했습니다. 그는 페리가 빨리 죽지 않기를 바라며 변호사를 선임해 주었지만, 어느 정도 작품이 완성되고 결말만 남은 상태가 되자 점점 불안해졌습니다. 그는 페리에게 가까운 우정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페리의 죽음을 원하게 되었습니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굉장히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저를 괴롭혔던 질문은 "경험하지 못하면 쓸 수 없는 것인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카포티는 페리와의 수많은 대화를 통해 그의 인생을 이해했고, 그가 어떻게 그런 끔찍한 사건을 저지르게 되었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자신의 책을 마무리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작가들의 작품이 자전적인 요소를 띠는 것은 어느 정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경험하지 않은 것을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는 것도 작가의 능력이라고 믿습니다. 그런 점에서, 카포티처럼 취재 중인 인물의 마지막이 도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소설을 마무리하지 못한 것은 그가 진정한 작가였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했습니다.
그러나 영화를 한 차례 더 보고 나서는, 카포티가 페리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신의 책을 마무리할 수 없었던 이유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페리가 살아 있는 동안 냉혈한이라는 제목의 책이 출간되었다면, 이 소식은 반드시 페리의 귀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페리는 카포티에게 가혹하게 '이용 당했다' 라고 느꼈을지도 모르며, 카포티는 이런 상황을 피하고 싶어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카포티는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도덕적 갈등과, 자신의 작품이 페리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죄책감 사이에서 괴로워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4년 동안 붙잡고 있었던 책을 세상에 내놓고 싶다는 열망과, 그 책으로 인해 각광받을 것이라는 기대 역시 카포티를 사로잡았을 겠지요. 저는 이러한 추론을 통해서 카포티가 자신이 '경험하거나 보고 듣지 않은 것을 쓸 수 없다' 라는 단순한 이유로 책의 마무리를 짓는 것을 미룬 것이 아니었다고 결론 내리게 되었습니다.
#5
결국, 냉혈한은 페리였을까요? 아니면 카포티였을까요?
트루먼 카포티는 페리 스미스와의 대화를 통해 그의 불우한 어린 시절과 심리적 상처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카포티는 자신 역시 불행한 유년기를 보냈음을 이야기하며, 두 사람 사이의 공통점을 발견합니다. 그는 페리와 자신의 관계를 비유하며, "우리는 같은 집에서 자랐지만, 나는 앞문으로, 그는 뒷문으로 나간 것 같다"고 말합니다. 이는 두 사람의 비극적인 출발점이 비슷했음을 시사하지만, 그들이 선택한 길과 처한 운명은 극적으로 달라졌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리처드가 감옥에서 카포티에게 "얘깃거리가 절박한가 봐요. 여기까지 왕림하시다니"라고 비꼬듯 말하거나, 형사 앨빈 듀이가 "범인이 냉혈한인지, 범인과 이야기하는 당신이 냉혈한인지 모르겠네요"라고 말한 대사는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이는 카포티가 글쓰기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자신마저 냉혈한처럼 변해버렸음을 보여주지요. 그래서, 결국에 냉혈한은 누구일까요? 여러분들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겼으나, 이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카포티는 심리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고, 이후 더 이상 완성된 작품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영화 <카포티>는 이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그가 겪은 내적 갈등과 주변 인물들과의 갈등을 세밀하게 그려냅니다. 배우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은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에서 카포티의 모습이 계속해서 오버랩되어 보입니다. 마치 이 영화가 호프만의 전기 영화라도 되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것은 아마도 그의 뛰어난 연기력 때문이겠죠.
11월도 이제 마무리를 향해 가고, 다음 주면 벌써 12월입니다. 날씨가 추워지는 요즘 같은 날, <카포티>처럼 조금 무거운 영화를 보며 사색에 잠겨보는 것도 좋은 선택일 듯합니다. 이번 주도 여러분에게 좋은 영화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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